히메네스 시선
늦었지만 고맙다. 지만지 국내 최초 출간 고전 11. ≪히메네스 시선≫
처음으로 돌아가는 사물과 인간
그의 시는 사물을 다시 태어나게 한다. 일상의 말에서 역사성과 시간성을 휘발시킨다. 그러면 언어 자체가 드러나는데 이때 언어는 사물과 같다. 사물과 존재성을 나눈 언어는 다시 초역사성과 초시간성을 획득한다. 순수한 언어는 인간의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것이 시다. 전기순은 한국에는 낯선 히메네스의 시 세계 전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초기작부터 사후 발표작까지 골고루 선별했다. 스페인어가 우리말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생명감을 얻었다. 역자에게 물었다.
누구인가, 그는?
1956년 노벨문학상은 후안 라몬 히메네스를 이렇게 명명한다. 그는 “숭고한 정신과 예술적인 순수함의 본보기를 구상하는 스페인어 서정시”다. 스페인의 근대시파를 창시한 시인이다.
어느 정도인가?
로르카, 달리, 부뉴엘 등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스페인어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유럽에서는 그를 스페인의 생텍쥐페리라고 부른다.
왜 낯설까?
시집이 번역되지 않았다.
왜 번역하지 않았을까?
어렵기 때문이다. 과격하게 문법적 구조를 파괴하고, 은유와 이미지 구성이 전혀 논리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후기로 갈수록 더 난해해진다. 시도 어려운데 이런 시어들을 원래의 리듬을 살려 가며 번역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당신은 다른가?
히메네스를 빼고는 현대시를 이야기할 수 없다. 시는 난해하지만 평이한 언어가 도달할 수 없는 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히메네스 시는 무엇인가?
‘순수시’다. 순수시의 근본 개념은 시를 통해 사물을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지시물에 대한 기호 체계인 언표로부터 역사성과 시간성을 제외하는 시학을 말한다. ‘언어 자체가 그 사물이 되게 하는 시’가 히메네스가 실천하려는 순수시다.
순수시가 순수한 세상을 만들 수 있나?
시어는 문명과 일상 속에서 오염되었던 의미를 지우고 사물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주변적이고 장식적인 자질을 제거하고 지시물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가 시어다. 시의 기능은 언어를 초역사적이고 초시간적인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데 있다.
네루다와 비교하면?
파블로 네루다는 ‘세상을 반영’하려는 시를 썼다. 예를 들어 스무 살의 풋풋한 나이에는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같은 절절한 연애시에 몰두했다가, 세상에 대해 철이 들면서는 <지상의 거주지> 같은 초현실주의적인 시를 썼다. 조국인 칠레가 이데올로기 논쟁을 겪을 때는 ‘비순수시’를 주장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민중의 노래>를 발표했다. 이렇듯 네루다는 개인적 체험과 세상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개입하며 시를 썼다. 히메네스는 ‘시어로 세상을 창조’하려는 시를 썼다. 세상을 반영하고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작은 신’이 되어 자신이 주조한 언어를 가지고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를 생산하려 한다.
말로 세상을 만들 수 있나?
그의 시는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미지들의 공화국으로, 어떤 미지의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래서 그의 언어는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인은 시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독법을 알려 다오.
이해하려는 노력은 허사다. 소통하고 경험하려 애써라. 그것이 이런 유형의 시를 제대로 읽어 내는 방식이다. 시 전체가 주는 신비한 정서와 철학적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시의 선별 기준은?
한국의 독자가 시인의 다양한 시적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초기 작품에서부터 사후에 발표된 시까지 고르게 안배했다. 작품의 변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난해해지기 때문에 우리 독자들의 평균 수준을 고려해, 전반부의 감상적 시를 후기의 관념적 시보다 더 많이 골랐다.
오늘날 시는 무엇인가?
대중매체를 타는 대부분의 시는 ‘감상적 휴머니즘’으로 포장된 시다. 이런 시는 순수와 자연, 청량함과 심오함을 전경에 배치하지만 사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자극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시 역시 자극적인 방식으로 읽게 되고, 시어도 자극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지금 우리는 너무 감상적인 시에 길든 것은 아닐까? 이 시를 통해 시어가 다다를 수 있는 한계 지점과 시의 근원성이 무엇인지를 놓고 많은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꽃의 계절
꽃의 계절이 오면
누이는 나를 바라보면서 울곤 했다.
그렇게 울면서 나를 보면
누이에게 “울지 마” 하고 말하곤 했다.
꽃의 계절이 오면
누이는 다시 울면서 나를 바라보겠지,
누이가 그렇게 울면서 나를 바라보면,
나는 또 누이에게 말하겠지.
“울지 마.”
그렇게 말하면
내 마음은 얼마나 편안해지는지…
그때
누이는 땀에 젖은
내 이마를 어루만지고,
나는 홀로 고통을 느끼겠지.
누이는 나에게 말하겠지.
“무슨 일이니?”
나는 땅을 바라보고
누이는 다시 묻겠지.
“무슨 일이니?”
내가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 지으면
누이는 놀라워하겠지,
그러면 나는 누이에게 이렇게 말하겠지.
“누이, 아무 일도 아냐.”
≪히메네스 시선≫, 후안 라몬 히메네스 지음, 전기순 옮김, 43∼44쪽.선≫, 후안 라몬 히메네스 지음, 전기순 옮김, 43∼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