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 시선
임도현이 옮긴 ≪이백 시선(李白詩選)≫
시인 이백의 관직 청탁시
현군을 모시고 공을 세운 뒤 옛 숲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뽑히지 못했다. 사력으로 관직을 청탁했으나 답은 없었다. 그가 달과 술만을 벗 삼았다고 알고 있었다면, 속았다.
천마
흰 구름은 푸른 하늘에 떠 있고
언덕은 먼데,
소금 수레가 우뚝 솟은 가파른 비탈을 오르니,
낑낑대며 억지로 가면서 날 저물까 두려워하네.
백락이 다듬고 쓰다듬었지만 중도에 버려졌으니
젊었을 때 힘을 다 쓰고는 늙어서 버림받았구나.
원컨대, 전자방을 만난다면
측은하게 여겨 나를 위해 슬퍼해 주련만,
비록 옥산의 나무벼가 있다 해도
고통스런 굶주림을 치유할 수 없구나.
白雲在靑天,
丘陵遠,
崔嵬鹽車上峻坂,
倒行逆施畏日晩.
伯樂翦拂中道遺,
少盡其力老棄之.
願逢田子方,
惻然爲我悲.
雖有玉山禾,
不能療苦飢.
≪이백 시선≫, 임도현 옮김, 221~223쪽
이것이 정말 이백의 시가 맞나?
그렇다.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천마에 비유하고, 자신을 이끌어 줄 사람을 찾는다. 이백의 대표적인 간알시(干謁詩)다.
간알시란 무엇인가?
관직 청탁을 위해 쓴 시다.
공부해서 과거에 합격해야지 왜 청탁을 하나?
당시에는 과거에 급제해도 바로 관직을 받을 수 없었다. 높은 사람의 추천을 받아야 했다. 때문에 간알이 매우 중요했다.
이백은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시인 아닌가?
‘남다른 존재’인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뛰어난 정치적 업적을 이뤄야 했다. “원컨대 현명한 임금님을 한번 보좌해 공을 이루고 옛 숲으로 돌아가려 했으니”와 같이 은일의 전제 조건은 공을 세우는 것이다. 정치적 공명을 이룩하기 전까지 그에게 진정한 은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의 간알은 성공했나?
실패했다. 한림공봉이었던 1년 정도를 빼고는 평생 공명을 이루지 못했다. 한림공봉이 되어서도 어용 문인으로 전락해 재능을 썩혔다. 그토록 원했던 패업을 실현하지도 못했으며 이름을 기린각에 올리지도 못했다.
그의 이런 모습을 믿어도 좋은가?
이백은 호방한 기풍 때문에 대중이 좋아하는 시인이 되었다. 세속의 영리와 권세를 뛰어넘어 아무런 격식에도 구애받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강조되었다. 그가 정치적 공명의 추구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은 소홀히 다루어졌다.
당신은 이 책을 어떻게 엮었나?
그가 정치적 공명을 추구한 양상을 잘 살필 수 있는 시를 중심으로 엮었다. 정치적 공명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잘 드러난 시, 이를 이룩하지 못해 슬퍼하는 마음을 읊은 시, 비참한 신세를 토로하는 시, 공명 추구를 위해 객지를 떠돌며 외로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를 모았다. 기존 시선집에서 간과했기에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시인의 모습을 보완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자기소개서인데 문학 가치가 있나?
간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문학적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이백은 168구나 되는 장편시로 문재(文才)를 과시하기도 하고, 연작시의 장법(章法)을 교묘히 운영하기도 했다. 대구와 비유를 활용하고 전고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운율을 엄정히 맞춰 문장력을 십분 발휘했다.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이백은 어떤 수사법을 동원했는가?
첫째는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의 감탄을 끌어낸다. 둘째는 현재의 궁핍한 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상대의 동정을 산다.
이백이 쓴 간알시의 특징은 무엇인가?
재능을 과시하려면 씩씩한 기상을 드러내야 한다. 궁핍한 처지를 표현하려면 애처로운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한 작품에서 이 둘을 잘 조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천마>는 이 둘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천마의 어떤 점이 그리 절묘한가?
우선 천마의 당당하고 힘찬 기상을 생동감 있고 자세하게 묘사해 자신의 혈기왕성하고 위풍당당한 기상을 유감없이 표현한다. 이어 힘찬 기개와는 달리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는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 소금 수레나 힘겹게 끄는 늙은 천마의 모습을 핍진하게 그린다. 앞쪽의 힘찬 모습과 극단적인 대비를 조성하는 것이다.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늙어 가는 자신의 모습과 처지를 생생하게 기탁한다. 앞뒤의 분위기와 기세가 극심한 대비를 이루어 강렬한 인상을 심는다.
이백이 자신의 비참한 처지만을 묘사한 작품도 있나?
<유 도사에게 드리다(贈劉都使)>를 보라. 집에 술빚이 많아서 갖옷이나 말이라도 내다 팔아야 될 것 같다고 한다. <오래도록 비 내리는 옥진공주의 별관에서 장 위위경님께 드리다 2수 제2수(玉眞公主別館苦雨, 贈衛尉張卿二首 其二)>에서는 “부엌에는 푸른 연기도 나지 않고, 도마에는 푸른 이끼만 자랍니다”라고 했다.
자신의 재능을 과시한 작품은 무엇인가?
<꿈에 천모산을 노닌 것을 읊고서 떠나다(夢遊天姥吟留別)>를 보라. “어찌 눈썹 낮추고 허리 굽히며 부귀 권세를 섬기느라 내 마음과 얼굴을 펴지 못하게 하겠는가?”라고 했다. 자신을 지나칠 정도로 과시하고 때로는 상대를 협박하기도 했다.
간알시에는 어떤 시체가 가장 적합한가?
근체시다.
근체시란 무엇인가?
고대 시가 형식을 고체시라 하고, 당나라 때 완성된 시 형식을 근체시라 한다. 형식이 자유로운 고체시에 비해 근체시는 격률이 엄정하다. 5언 절구, 7언 절구, 5언 율시, 7언 율시, 5언 배율, 7언 배율이 있다.
이백이 즐겨 쓴 것은 악부시나 고체시가 아닌가?
간알시를 쓸 때는 그도 근체시를 주로 사용했다. 고체시를 사용할 때는 주로 장편시나 연작시를 지었는데, 이런 특정한 형식을 통해서 상대방에 대한 공경심을 표현하고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과시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백의 간알시에서 천년 뒤의 우리가 무엇을 볼 수 있겠는가?
그는 ‘하늘’로 올라가려 하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현대인과 다르지 않다. 당시 사람들보다도 오히려 현대인들이 더 그에게 공감할 수 있고, 그의 비애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신선 이백이 아니라 인간 이백의 시문을 읽어 보라. 바랐던 일이 모두 실패해 눈물 흘리며 슬퍼하는 모습, 홀로 쓸쓸히 달밤을 거닐며 외로워하는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슬픔과 외로움을 호방한 기상으로 애써 삭이려는 시인의 태도를 통해 우리 역시 좌절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누군가?
임도현이다. 서울대학교와 중앙대학교에서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