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지한국희곡선집 편집자 후기
지만지한국희곡선집출간특집 3. 한국희곡100년을 어떻게 찾았나?
빠이나부루가 뭘까?
김영수의 ≪혈맥≫에 등장하는 원팔의 아내는 숨을 거둘 때까지 “빠이나부루”를 찾는다. 이것이 뭘까? 편집자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다. 알고 보니 깡통에 든 파인애플이었다.
당신이 담당 편집자인가?
지만지 희곡담당 서미랑이다.
이 선집은 초판본의 복원 출판인가?
그렇다. 1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정착하기 위한 출판 정책이다.
초판본 표기를 복원하는 작업은 어렵지 않나?
지난한 일이었다. 도서관에서 복사한 원본들은 인쇄 상태가 흐려 해독이 어려운 글자가 많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난제는 옛날식 구어 표현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어떤 표현인가?
함세덕의 <무의도 기행>에는 ‘고태꿀’이란 단어가 두 번 나온다. 낡아서 바닥이 헌 고깃배를 두고 ‘고태꿀이 빈다(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고태꿀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어떻게 밝혀 냈나?
지금의 서울 은평구에 ‘고태골’이라는 처형장이 있었다고 한다. 공동묘지도 있고. 그래서 ‘고태골로 간다’, ‘고태골 행이다’라는 말을 썼는데 곧 죽으러 간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골로 간다’는 말이 여기서 비롯된 것인가?
그렇다.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 ‘고태꼴’ 또는 ‘고태굴’이라고도 썼다.
그렇다면 ‘고태꿀이 빈다’는 무슨 뜻인가?
처형장 또는 공동묘지가 보인다는 뜻이니 죽으러 간다는 뜻 아니겠는가?
빠이나부루도 같은 얘기인가?
김영수의 <혈맥>에는 “빠이나부루”가 나온다. 원팔의 아내가 숨을 거둘 때까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빠이나부루”가 뭔지 알아내기 위해 고전했다. 통조림 ‘파인애플’이었다.
초판본을 지금 독자들이 읽을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 읽기에 무리가 없다.
작고한 작가들은 어떻게 섭외했나?
유가족을 찾는 일이 작가를 찾는 일보다 훨씬 어려웠다. 최근에 작가의 작품을 공연한 극단에 문의하거나 대부분 신문기사를 통해 가족 관계를 확인했다.
월북 작가는 어렵지 않았나?
월북 작가 작품은 남북경협을 통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김정일 사망 이후 남북 관계가 지속적으로 나빴던 탓에 적절한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 5월 개성공단이 가동을 멈춘 뒤로 관계는 더욱 나빠지기만 했다. 9월에 재가동 소식이 들리기까지 초조한 시간이었다.
원하는 작품은 모두 실었나?
싣지 못한 작품이 있다. 오태석의 <초분>, <태>, <백마강 달밤에>, 최인훈의 <둥둥 낙랑둥>, 장정일의 <어머니>다.
이유가 뭔가?
저작권을 해결하지 못했다. 타 출판사와 독점 계약된 경우도 있었고 작가가 고사하기도 했다.
편집 방향은 무엇이었나?
읽는 희곡과 공연 희곡 둘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공연 대본으로도 기능할 수 있는 디자인이 문제였다.
디자인에 성공했나?
메모할 수 있도록 여백을 넉넉하게 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니 시집처럼 들고 다니며 읽기에도 좋고 실제 현장에서도 볼 수 있는 책이 되었다. 문학성과 공연성이라는 희곡의 특징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기획부터 출간까지 얼마나 걸렸나?
준비 3년, 기획 3달, 편집 1년이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나?
철저한 사전 준비, 효율적인 편집 프로세스, 출간 과정의 집중력이 요구되었다.
철저한 사전 준비란 무얼 말하는가?
기획의 단순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기획이 얼마나 단순했나?
한국 희곡의 역사를 세운다. 기획편집위원은 세 명으로 한다. 모든 권한은 그들에게 위임한다. 안 되는 것은 빨리 포기한다.
편집 프로세스의 효율성이란 뭘 말하는가?
의견을 조율하고 작가를 선정하는 데 있어 쓸데없는 의견 충돌을 피하는 일이다. 최고의 기획위원들이므로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 출판사의 역할이었다.
수고가 많았다.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많은 분들에게 보여지고 읽혀지고 기억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