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학 소설선 초판본
지만지 사월의 신간 2/5. 왜는 위험하다
홍용희가 엮은 ≪초판본 장용학 소설선≫
우리가 이렇게 사는 이유
너는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는다. 주인공은 그것은 별로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유가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제 질문은 의심을 지나 불신이 되고 폭력이 된다.
裁判長은 넥타이의 매듭을 만지면서 十 年 징역을 言渡했다.
놀란 것은 檢事였다. 재판장이 노망했나 했다. 그는 無罪가 언도될 것을 짐작하고 위신상 上訴할 준비를 단단히 갖추고 있었던 터다.
그러나 재판장은 노망한 것은 아니었다. 아침에 夫婦 싸움을 했다. 마누라에게 멱살을 잡혀 두세 번 휘둘리었었다.
<현대의 야>, ≪초판본 장용학 소설선≫, 장용학 지음, 홍용희 엮음, 131쪽
이런 황당한 이야기가 있는가?
검사도 ‘증거가 부족하다. 잘하면 무죄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재판장은 구형대로 10년이나 언도한다.
어쩌다 이런 재판이 벌어졌는가?
주인공 현우는 ‘박만동’이란 이름으로 간첩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재판정에 섰다. 체포 후 고문, 무단 감금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어쨌건 법정에 섰다.
간첩인가?
서울시민으로 살다가 6·25전쟁 이후 월남자 박만동으로 신분을 바꿔 꾸미고 살았다. 이게 빌미가 돼 경찰에 끌려간다.
증거는 있는가?
의심을 받으면서 단순한 월급 통장도 활동 자금 통장으로 간주됐다.
검찰과 법원은 무엇을 하는가?
검찰로 넘어갔으나 검사도 자기 말을 안 들어 준다. 설상가상 선고일에 재판장의 기분까지 안 좋았다.
신분을 바꾼 이유가 뭔가?
이 질문에 현우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것은 별로 이유가 없읍니다.”
이유가 없는 이유가 뭔가?
그는 6·25 때 인민군의 시체 수습 부역에 동원됐다. 수백 구의 시체가 쌓인 구덩이에 떨어지기도 했다. 인민군의 비인간적 부조리에 충격도 받았다. 그는 전쟁 때 일을 잊고, ‘과거의 자신’과 단절코자 신분을 바꿨다.
대한민국은 ‘과거 단절자’를 어떻게 수사하는가?
검경(檢警)의 수사 방식은 ‘네가 간첩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이다. 인민군 못지않은 막장이다.
현우에게 세계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철저히 폭력적인 횡포다. 현우의 불우한 역정은 곧 불온한 현실 세계에 대한 극명한 고발과 부정이다.
이 책에는 어떤 작품이 실렸는가?
<현대의 야(野)> 말고도 <요한 시집(詩集)>, <상립신화(喪笠新話)>가 있다.
단편들인가?
분량으로는 중편소설들이다. 연구자에 따라 세 작품을 단편소설로 보는 경우도 있다. 모두 1950∼1960년대 당시 발표 지면의 표기를 그대로 따랐다.
<요한 시집>은 어떤 내용인가?
서(序), 상(上), 중(中), 하(下)의 4부로 돼 있다. 서는 토끼 우화, 상은 포로수용소에서 귀향한 동호의 내적 독백, 중은 동호와 누혜가 포로수용소에서 겪은 일의 회상, 하에서는 누혜의 유서를 중심으로 그의 자유의지와 실존의 의미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이 그렇게 읽기 힘들다는 그 소설인가?
과다한 한자 사용과 관념성에 기운 문장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예컨대 이런 문장이 있다. “한 줌의 평화도 없이 빗바람에 훑이고 씻긴 鎔岩의 殘骸. 寒流와 暖流가 부디쳐서 딩구는 現代史의 맷돌이었다. … 흘러 떨어지는 人間의 粉末. 人類史의 誤算이 피에 묻혀 맴도는 ‘카오쓰−’! 아― 그 바위틈에도 봄이 오면 푸른 싹은 움트던가.”
작가는 뭘 이야기하려는 것인가?
흔히 평가하기로는, ‘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한 소설이라고 한다. ‘인간의 실존적 깨달음’을 주제로 보면 된다.
<상립신화>는 어떤 이야기인가?
복막염 앓는 어머니를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한다. 무능한 한의사, 돈을 좇는 양의사, 서민 환자를 소홀히 하는 병원, 사이비 약장수 등등이 나온다.
무엇을 말하는가?
어머니를 돌보긴 하지만 간병 부담 때문에 어머니라는 존재가 밉기도 하다. 어머니가 죽자 그는 슬퍼하는 동시에 어머니 주검에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한다. 두 가지 성격이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다. 즉 본질적 자아와 타의적 자아의 분열이다.
어머니의 죽음은 무엇인가?
자아와 세계의 불협화음을 나타내는 소재다. 자아의 내적 분열상을 입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세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모두 6‧25와 직간접적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요한 시집>의 포로수용소, <현대의 야>에 나온 인민군과 대공 담당 공무원, <상립신화>에 나오는 전후(戰後) 서민의 삶이 그렇다.
6‧25가 장용학 문학의 출발점인가?
전쟁이 초래한 경제적 궁핍, 도덕적 타락, 정치적 혼란 등의 극한 상황이 그의 문학의 토대가 됐다. 존재론적 불안과 파탄의 극한에서 앞 세대와 뚜렷하게 변별되는 새로운 문학적 양식을 충격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의 문학은 어디로 갔는가?
전후에 일반화된 불신감의 팽배, 이념의 증오, 역사적 허무 의식 등은 인간의 현존재에 대한 재인식을 꾀했다. 그 결과 장용학의 문학은 실존주의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흘렀다.
당시 문단 상황은 어땠는가?
염상섭‧김동리 등은 반공‧분단 이데올로기를 다뤘다. 장용학은 손창섭‧김성한 등 전후 세대 작가와 함께 세대론적 부정 의식과 더불어 실존주의적 현실 모색을 집중적으로 추구했다.
장용학의 일생은 어떤 것이었나?
1921년 함북 출생으로 1942년 일본 와세다대에 유학했다. 1947년에 “공산주의가 싫고, 희곡을 쓰고 싶어서” 월남했다. 1949년 단편 <희화>를 시작으로 관념적인 소설을 많이 썼다. 생전에 한자 사용을 강조하며 한국어문교육연구회에서 활동했다. 1987년 이후 절필하다가 1999년, 간암으로 죽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홍용희다.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