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현덕 작품집
2468호 | 2015년 2월 27일 발행
현덕의 식민지 가계 분석
고봉준이 해설한 ≪초판본 현덕 작품집≫
그 집에는 아버지가 없었다.
식민지에는 왕이 없다.
있어도 가짜다.
노마의 집에도 아버지가 없다.
있어도 가짜다.
어머니는 문화의 남편과 경제의 남편 사이를 오간다.
노마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에게 반항한다.
“담벼락의 모래알을 뜨더내며 “아버지는 영 죽엇다” 하고 입 박게 내여 외여본다. 그리고 되도록 우름이 나오라고 슬픈 생각을 만든다. 허나 머리속에는 담배물뿌리를 찻노라 방바닥을 더듬는 아버지가 나타난다. 거미발 가튼 손가락이다. 창박게서 쿵쿵 발을 구르며 먼지를 터는 아버지가 나타난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얼굴은 형용을 잡을 수 업다. 그보다는 오늘 노마가 나무 올라가기에 성공한 그 장면이 똑똑이 나타나 덥는다. 갑작이 노마의 키가 자라나듯시픈 그만큼 보는 세상이 달러지는 감이다. 노마는 부지중 마음이 기뻐진다. 어쩔 수 업는 기쁨이다. 아아 그러나 이것은 아버지에게 죄스런 마음이다.”
<남생이>, ≪초판본 현덕 작품집≫, 현덕 지음, 고봉준 옮김, 78쪽
작품 제목 ‘남생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주인공 노마의 아버지가 가졌던 믿음의 대상이다. 심한 병에 걸렸지만 남생이가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아버지의 전근대적 미신의 대상이었다.
이 단편의 스토리라인은?
노마 가족은 시골에 살다가 인천 선창가로 이사 왔다. 아버지는 마름의 농간을 폭로했다가 땅을 뺏겼다. 이곳에서 힘든 노동으로 병을 얻어 일자리를 잃고 가정은 아내 손에 맡겨진다. 그녀는 선착장에서 웃음과 정조를 팔며 살아간다. 그러다 아버지가 죽는다.
그런데 노마는 왜 ‘아버지에게 죄스런 마음’인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낮에 올라갔던 양버드나무 꼭대기에서 느꼈던 기쁨의 순간만 떠오른다. 아버지에게 죄스런 것이다.
죄스런 데도 눈물이 나지 않는 이유는?
주검 앞에서 울라고 어머니가 시켰기 때문이다. 그녀는 병들고 무력한 아버지를 두고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는 인간이었다. 노마는 어머니에게 반항심을 갖고 있다. 눈물이 나지 않는다.
현덕의 소설에서 아버지는 무엇인가?
하나같이 몸과 마음이 병든 존재다. 권위를 잃고 아이들에게 혼란만 불러일으킨다.
아버지는 어떻게 권위를 잃는가?
<남생이>에서 노마는 한 방에 앉아 있는 두 남자를 본다. 한 사람은 노마의 아버지고 다른 한 사람은 어머니와 정을 통하는 털보 아저씨다. 가정 경제를 책임진 사회적 아버지는 털보다. 생물학적인 아버지는 생활 능력과 상징적 권위를 모두 잃었다.
노마는 무엇을 보는가?
<남생이>뿐만 아니라 <경칩>, <두꺼비가 먹은 돈>에서도 소년 노마가 등장한다. 현덕은 타락한 현실을 아이의 눈으로 기술한다. 노마는 현실을 진단하는 현덕의 창작 장치다.
아이의 눈은 무엇을 보는가?
현덕 소설의 평가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이 ‘어린아이’의 존재다. 일반적으로 소설에서 어린아이의 시선이 등장하는 경우 복잡한 현실을 지나치게 인상적으로 접근할 위험이 내재한다. 하지만 현덕 소설에서 노마의 시선은 정확하다.
정확한 눈으로 무엇을 봤는가?
속악한 어른의 세계다. 가족의 불행이 드러나고 아버지의 무능력과 무너진 가장의 위엄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노마 아버지의 무능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1930년대 후반, 식민지 현실이다. 농촌 공동체는 해체되고 농민은 도시의 변두리나 빈민촌으로 이주한다. 농민의 삶은 해체된다. 자본주의 등장이 농촌 사회를 파괴한 것이다.
무능의 본질은 결국 가난인가?
그렇다. 가난은 공동체를 해체하고 윤리 의식을 땅에 떨어뜨린다. 인간성은 위태로워진다. 병든 남편에게 노마의 어머니는 빨리 죽으라고 윽박지른다. 개인은 암울과 절망에 빠진다.
절망한 개인은 어떻게 되는가?
자기의 욕망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에 먼저 반응한다. 자신의 신체를 혹사한다. 병적 심리 상태에 빠진다. 공간 배경이 도시일 때 특히 그렇다.
자본제로의 이행기인데도 도시에 희망이 없다는 말인가?
현덕의 소설 가운데 도시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는 노마가 등장하지 않는다. <남생이>는 농촌과 도시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다. 여기서 아버지의 죽음과 노마의 성장은 교묘하게 교차한다. 아이들에게서 일말의 가능성을 읽으려는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도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는 이런 긍정성마저 찾기 어렵다. 농촌과 달리 도시 공간은 인간의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
현덕은 어떤 작가인가?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나 제일고보를 중퇴했고 192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해방 이후 적극적인 문단 활동을 벌이며 수필과 소설을 발표했다. 1950년에 월북해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62년 숙청되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고봉준이다.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