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5일간
그해 유월, 5일의 기억
“10퍼센트의 작업량 증대는 해낼 수 있어요.” 로트루프 박사가 말했다. “우리 공장에는 작업량을 150퍼센트, 160퍼센트 성취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리고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비테가 말했다.
“모든 건 정치 및 이념 교육의 문제요.” 방가르츠가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당은 민중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고 그 선봉이오. 당신은 우리가 절뚝거리며 민중의 뒤를 쫓아가거나, 게으름을 피우고 논쟁을 피하기를 바라는 거요?”
≪6월의 5일간≫, 슈테판 하임 지음, 김충남 옮김, 8쪽
6월의 5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1953년 6월, 동독에서 사회주의 사회 최초의 파업이 일어났다.
≪6월의 5일간≫은 실화인가?
6월 17일 노동자 봉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6월 13일 14시부터 6월 17일 18시까지 일어난 사건을 묘사한다. 신문 기사나 당 보고서와 같은 실제 자료도 인용한다.
사건은 어떻게 촉발되었나?
1953년 5월 28일, 노동 기준량, 곧 규정 작업 시간을 10% 상향 조정한다는 당의 결정이 발표되었다. 이것이 노동자를 동요시켰다.
동요는 어디로 발전하는가?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노동자들은 언제나 착취의 대상이야. 이전부터 그랬어, 세계 어디서나, 앞으로도 그럴 거야,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아니면 자기가 생산하는 가치를 실제로 다시 돌려받는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노동자의 행동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국영기업 건설연맹이 앞선다. 시위는 확산된다. 요구 사항도 확대된다. 자유선거, 생활 조건의 향상, 사회주의통일당 정부의 퇴진을 주장한다.
사회주의 정권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소련군 2개 사단이 탱크를 몰고 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1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400명이 체포 구금되었다.
당대의 평가는?
동독에서는 파시스트들의 폭동, 제국주의적 음모로 비난받았다. 서독에서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찾기 위한 민중 봉기로 평가되었다.
이 작품은 언제 출간되었나?
1974년 서독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1989년 동독에서 출판되었다.
언제 쓴 것인가?
1956년 초고 ≪X-데이≫가 있었다. ‘검은 책’이라 불리며 출판사를 전전했지만 동독 당국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 작가는 기록문서와 허구의 줄거리를 결합해 개작했다. 이 역시 동독 지도부의 거부로 출판되지 못했다.
슈테판 하임은 누구인가?
1913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헬무트 플리크다. 반군국주의를 표현하다 나치스의 체포 위협을 느꼈다. 1933년 프라하로 도피하여 개명한다. 1935년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이주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종전 후 매카시 광풍이 불자 미국을 떠난다. 1953년 다시 동독으로 이주한다. 통일 독일에서 정치 활동을 하다 2001년 사망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충남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명예교수다.
2738호 | 2015년 9월 8일 발행
그해 유월, 5일의 기억
슈테판 하임(Stefan Heym)이 짓고 김충남이 옮긴 ≪6월의 5일간(5 Tage im Juni: Ro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