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우송(友松) 김태길(金泰吉)이 수필가로 처음 세상에 이름을 올린 것은 지난 1955년 ≪사상계≫에 <서리 맞은 화단>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사실 이 작품은 발표 2년 전에 이미 써 놓은 것이었고, 1954년 차주환(車主環)·장기근(張基槿) 등과 함께 수필 동인회를 조직, 서로 합평회(合評會)를 한 것 등을 떠올린다면 우송의 수필 작업은 아마도 1955년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할 것이다.
철학자이면서도 수필가로 산 삶이 무려 50여 년, 그가 처음 작품 활동을 하던 1950년대는 수필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매체는 거의 없었고, 고작 ≪새 세대≫·≪사상계≫ 정도가 수필을 실었을 뿐이다. 우송은 이 시기를 시작으로 1960년대 왕성한 창작열을 뿜어 댔다. 지금도 그의 명문(名文)을 꼽을라치면 이 시절의 작품을 빼놓을 수 없다는 평가가 정곡(正鵠)을 얻고 있다. 미국 유학(존스홉킨스대학) 후 귀국, 1961년 그의 첫 작품집 ≪웃는 갈대≫(동양출판사), 1964년 두 번째 수필집 ≪빛이 그리운 사람들≫(삼중당)과 1968년 세 번째 ≪검은 마음 흰 마음≫(민중서관)을 출간하며 우송의 문학은 전성기를 얻었다. 한국 현대 수필의 여명(黎明)을 연 이가 바로 우송이었다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터이다.
우송은 철학과 문학의 접점을 찾으면서 수필을 선택했고, 그가 창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바로 공감과 소통이었다. 우송의 수필은 단정하고 아담한 맛이 일품이다. 군더더기가 없는 그것은 언제고 깊은 공감과 소통의 문을 열어 놓는 신비가 있다. 우송 스스로도 “짧고 간결한 표현 속에 은근한 함축이 담긴 글을 사랑한다” 강조한 바가 있다. 그림으로 말한다면 심산유곡(深山幽谷)을 원경(遠景)으로 그린 우리의 한국화를 사랑했을 우송이었다. 허장성세(虛張聲勢)의 글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의 글이 독자를 공감과 소통으로 장으로 이끄는 것은 이러한 글의 풍미와 함께 구체적 일상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송 수필에서 격조(格調)와 일상성(日常性)은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
200자평
50년간 철학자이자 수필가로 살아온 우송 김태길. 그에게 수필은 철학을 독자와 나누는 통로였다. 그의 수필은 사회적 철학적 문제들을 담고 있지만 결코 무겁거나 어렵게 읽히지 않는다. 단정하고 깔끔한 문장은 철학을 일상으로 가져와 함께 소통하게 만든다.
지은이
우송(友松) 김태길(金泰吉)은 지난 1920년 11월 15일, 충북(忠北) 청주군(淸州郡) 이류면(利柳面) 두정리(豆井里) 이팔일(二八一)에서 안동 김씨(安東金氏) 성응(聲應)과 안동 권씨(安東權氏) 중순(重順) 사이의 사남매(四男妹)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김성응(金聲應) 선생은 민족 운동으로 십여 년의 옥고를 치른 독립투사였다. 부친의 독립운동으로 가세가 기울어 우송은 어린 시절 외가에서 자랐는데, 외가 또한 완고한 유가적 분위기였다. 우송의 동양적 사유의 흔적은 아마도 이 같은 집안 내력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문학 평론가이자 우송과 동향(同鄕)인 유종호의 증언에 따르면 우송은 충북 일원에서 이름난 수재였다고 한다. 충주공립보통학교(忠州公立普通學校)·청주공립고등보통학교(淸州公立高等普通學校, 5년제)를 졸업하고, 일본제3고등학교(日本第三高等學校)를 거쳐 1943년 일본 도쿄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당시 일본제3고등학교는 구제 고등학교(舊制高等學校)의 하나로 도쿄제국대학에 무시험으로 입학이 보장되는 최고의 수재 집단이었다. 해방을 맞아 우송은 경성대학(서울대) 철학과에 편입, 철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우송은 한 대담에서 본디 그는 종교학을 공부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것은 제3고등학교에서, 도쿄제국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나중에 종교학을 공부한 한 선생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다. 주위의 강권으로 법학을 전공했지만 다시 철학으로 돌아선 것을 보면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그의 기질은 청소년기에서부터 싹텄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47년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50년대부터 국내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다 미국으로 유학, 존스홉킨스대학에서 1960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철학자의 길을 가면서도 우송은 수많은 수필을 남겼다. 1961년에 처녀 수필집 ≪웃는 갈대≫를 비롯해, ≪빛이 그리운 생각들≫·≪검은 마음, 흰 마음≫을 거쳐 1974년의 장편 수필 ≪흐르지 않는 세월≫,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어진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멋없는 세상 멋있는 사람≫· ≪장관 대우≫·≪껍데기와 알맹이≫·≪마음의 그림자≫·≪꽃 떨어져도 봄은 그대로≫·≪초대≫ 등을 출간했다.
이러한 수필집 외에 우송이 한국 수필 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작품집만큼이나 높다. 1970년대 오직 혼자 전체 수필가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월간 ≪수필 문학≫(관동출판사)의 속간과 수필의 문학성 제고를 위한 수필가들의 전국적인 모임인 ‘한국 수필 문학 진흥회’의 창립 회장으로 헌신했는가 하면, 1981년 ‘수필 문우회’를 발족하고 또 그 창립 회장에, 다시 1995년 ≪계간 수필≫을 창간하고 그 발행인에 취임, 끝내 그 잡지의 발행인으로 임종했다 하니, 한국 현대 수필 문학의 제1세대가 저문 것이 못내 아쉽고 귀하다. 우송은 지난 2009년 5월 27일 후학들이 준비한 구순 송축연(九旬頌祝宴)을 보지 못하고 경기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 자택에서 영면(永眠)에 들었다.
엮은이
엮은이 유봉희는 인하대 대학원 한국학과에서 ≪사회 진화론과 신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진화론을 키워드로 동아시아 근대 정치 담론과 근대 문학의 상관성에 주목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바탕에서 동아시아 근대에 생성된 여러 담론들의 관계성에 주목한 연구에 몰두, 한국 근대 문학 연구의 폭을 넓히는 데 애를 쓰고 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국어교육연구소 선임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진화론과 근대 문학과 관련한 연구, 이를테면 <‘倫理學’을 통해 본 동아시아 전통 사상과 이해조의 사회진화론 수용>·<사회진화론과 신소설 작가, 이해조와 이인직>·<동아시아 사회진화론의 수용과 그 계보-신소설 작가들의 사회진화론 인식론에 대한 序說>·<애국 계몽기 이해조의 단체·언론 활동과 그 인적 관계망>·<이인직 연구에 대한 몇 가지 재 고찰>·<1910년대 한국 근대 소설이 보여 준 사회진화론과 근대 극복 의지의 한 양상, 양건식의 사상과 문학 세계 (1)>등 다수의 논문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최근에는 진화론과 동아시아 근대를 가로지른 입신출세주의·교양주의의 상보(相補)적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차례
1. 복덕방이 있는 거리
복덕방 있는 거리
落葉
서리 맞은 화단
三等席
隊列
競走
거울 앞에서
2. 봄 뜰의 나무들
복덕방
좋은 사람 싫은 사람
글을 쓴다는 것
暗夜의 落書
따뜻한 理智·조용한 情熱
情熱·孤獨·運命
새벽
3. 멋없는 세상 ·멋있는 사람
外道의 始末
멋없는 세상 멋있는 사람
작은 바보와 큰 바보
정열적과 이지적
아름다운 여자들
4. 꽃 떨어져도 봄은 그대로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어수선한 세상
꽃 떨어져도 봄은 그대로
수필과 그림
어떤 수필이 좋은 수필인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나뭇잎들은 싸우지 않는다. 거름 기운을 더 받으려고, 또는 햇볕을 더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지 않는다. 가을이 되면 미련 없이 떨어져서 ‘어머니 나무’를 위한 거름으로 썩는다.
나무에도 죽음이 있다. 그러나 개체(個體)의 죽음을 만사의 끝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죽은 자리에 또 나무가 난다. 나무는 죽어도 산은 죽지 않는다.
낙엽이다. 그러나 낙엽은 슬퍼하지 않는다. 낙엽을 보고 눈물을 머금는 것은 오직 개체만을 ‘나’라고 부르는 인간의 ‘너무나 인간적인’ 반응(反應)일 뿐이다.
<落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