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이상(李箱, 1910∼1937)의 시와 소설은 그가 활동했던 당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관심과 해석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의 시와 소설은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많은 비평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텍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상의 시와 소설에 대한 연구는 정본 텍스트 확정을 위한 노력을 비롯해서, 전기적 사실을 근거로 프로이트의 이론을 활용해 시인의 무의식을 정신 분석적으로 고찰하는 관점, 그 연장선에서 라캉과 들뢰즈·가타리 등의 이론을 활용해 텍스트의 무의식을 정신 분석적 혹은 분열 분석적으로 고찰하는 관점, 문예 사조적으로 고찰하는 관점, 시적 구조나 기법의 차원에서 기호론적·수사학적·문체적 고찰 등을 시도하는 관점, 수학·기하학·건축학 등의 매체적 특성을 고찰하는 관점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심층적으로 진행되어 많은 성과들을 축적했다. 이에 비해 이상의 수필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저조하지만, 꾸준히 진행되어 의미 있는 성과들을 도출해 왔다.
이상의 수필을 주제별로 분류하면, 대체로 세태 풍자, 자연 관찰, 자아 부정, 문학적 테마, 서신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이상 수필의 전체적 특성은 이상이 시나 소설에서 보여 준 애정 갈등, 자아 부정, 문학적 테마 등의 주제적 범주 이외에 특별히 세태 풍자, 자연 관찰, 서신 등의 주제적 범주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시나 소설과는 차별성을 가지는 수필 장르의 고유한 특성으로서,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요소와 맞물려, 당시 시대적 현실과 대면하면서 생겨나는 이상의 내면 의식이나 인식을 좀 더 직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00자평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세기의 천재 이상. 그의 수필에는 시대적 현실과 인정세태, 개인적 고뇌와 갈등, 문학관 등이 소설보다도 한층 더 진솔하게 드러난다. 병렬적 피카레스크 구성, 몽타주 기법, 연작 수필, 단상, 서신 등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의 시, 소설과 일맥상통하는 비극적 비전을 압축적이고 비약적인 문체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지은이
이상(李箱)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고 1910년 9월 23일 경성에서 부 김영창과 모 박세창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한다. 이상은 1913년 백부 김연필의 양자로 입적되어 그의 집에서 성장한다. 이후 그는 1921년 신명학교를 거쳐 1926년 동광학교(뒤에 보성고등보통학교에 병합)를 졸업하고,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다. 그해 학교의 추천으로 조선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技手)로 근무하면서 ‘조선 건축회’에 정회원으로 가입하고, 학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 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1930년 잡지 ≪조선≫ 국문판에 9회에 걸쳐 처녀작이자 장편 소설인 ≪12월 12일≫을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한다. 1931년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 <이상한 가역 반응>, <파편의 경치>, <▽의 유희>, <공복>, <삼차각 설계도> 등을 발표하는데, 폐결핵 감염을 진단받고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한다. 1932년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 시 <건축 무한 육면각체>를 발표하고, ≪조선≫에 단편 소설 <지도의 암실>을 발표한다. 1933년에는 각혈로 기수직을 사직하고 황해도 배천(白川) 온천에 요양을 간다. 이곳에서 알게 된 기생 금홍과 함께 종로 1가에 다방 ‘제비’를 개업하고 경영하면서 동거한다. 같은 해 8월에 구인회의 핵심 멤버인 이태준, 정지용, 박태원, 김기림 등과 교유하기 시작하고, 정지용의 주선으로 ≪가톨릭 청년≫에 국문 시 <꽃나무>, <이런 시(詩)>, <거울> 등을 발표한다.
1934년 이태준의 도움으로 ≪조선중앙일보≫에 시<오감도>를 연재하지만, 15편을 발표한 후 독자들의 항의로 연재가 중단되고, 같은 해 김유정, 김환태 등과 함께 구인회 동인으로 합류한다. 특히 박태원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一日)>에 삽화를 그려 주기도 한다. 같은 해 ≪월간 매신(月刊每申)≫에 시 <보통 기념>, 소설 <지팡이 역사(轢死)> 등을 발표하고, 6월에 수필 <혈서 삼태>, <산책의 가을> 등을 발표한다. 1935년 경영난으로 다방 ‘제비’를 폐업하고 금홍과 결별한다. 인사동의 카페 ‘쓰루(鶴)’와 다방 ‘69’를 개업 양도하고, 명동에서 다방 ‘무기(麥)’을 경영하다가 폐업한 후 성천, 인천 등지를 유랑한다. 9월에 수필 <산촌 여정>을 발표한다.
1936년 친구 구본웅의 부친이 운영하는 인쇄소 창문사에 근무하면서 구인회 동인지인 ≪시와 소설≫의 창간호를 편집 발간한다. 같은 해 단편 소설 <지주회시>, <날개>, <봉별기> 등을 발표하고, 시 <역단(易斷)>, <위독(危篤)>, <지비(紙碑)>, <가외가전> 등을 연재하며, 수필 <조춘 점묘>, <동생 옥희 보아라>, <추등 잡필>, <행복> 등을 발표한다. 6월 변동림과 결혼해 경성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10월 하순에 새로운 문학적 돌파구를 찾기 위해 일본 도쿄행을 감행한다. 도쿄에서 ≪삼사 문학≫ 동인인 신백수, 이시우, 정현웅, 조풍연 등과 교유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상상하던 바와 괴리를 경험하고 환멸과 소외감 및 절망감을 맛본다.
1937년 2월 사상 혐의로 도쿄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에 피검된 후 한 달 정도 조사를 받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도쿄제대 부속 병원으로 옮겨진다. 단편 소설 <동해(童孩)>, <종생기> 등을 발표하고, 수필 <공포의 기록>, <권태> 등을 발표하지만, 4월 17일 도쿄제대 부속병원에서 28세의 일기로 안타깝게 요절한다. 이상이 작고한 후 유고로서 시 <무제(無題)>, 소설 <환시기(幻視記)>, <실화(失花)>, 수필<실락원>, <병상 이후>, <최저 낙원>, <동경> 등이 발표된다.
엮은이
오형엽(吳瀅燁, Oh Hyung-Yup)은 1965년 2월 7일 부산에서 출생했다.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현대시≫ 신인상을 받고, 1996년 ≪서울신문≫ 신춘 문예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제3회 젊은평론가상, 제6회 애지문학상, 제21회 편운문학상, 제24회 김달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현대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연구서 ≪한국 근대시와 시론의 구조적 연구≫, ≪현대시의 지형과 맥락≫, ≪현대 문학의 구조와 계보≫, ≪문학과 수사학≫, ≪한국 모더니즘 시의 반복과 변주≫, 역서≪이성의 수사학≫ 등이 있고, 평론집 ≪신체와 문체≫, ≪주름과 기억≫, ≪환상과 실재≫ 등이 있다.
차례
血書 三態
散策의 가을
山村 餘情
早春 点描
幸福
倦怠
失樂園
病床 以後
最低 樂園
東京(遺稿)
恐怖의 記錄(서장)
文學을 버리고 文化를 想像할 수 업다
文學과 政治
동생 玉姬 보아라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煙氣로 하야 늘 내운 方向−거러가려 드는 성미−머믈느려 드는 성미−色色이 황홀하고 아예 記憶 못하게 하는 길이로소이다. 安全을 헐값에 파는 가가 모통이를 도라가야 最低 樂園의 浮浪한 막다른 골목이요 기실 뜰인 골목이요 기실은 막다른 골목이로소이다.
에나멜을 깨끗이 훔치는 리소ᐨ르 물 튀기는 山谷 소리 찾어보아도 없는지 있는지 疑心나는 머리끗까지의 詐欺로소이다. 禁斷의 허방이 있고 法規를 洗滌하는 유백의 石炭酸이오 또 失樂園의 號令이로소이다. 五月이 되면 그 뒷山에 잔듸가 게을는 대로 나날이 거벼워 가는 체중을 그 우에 내던지고 나날이 묵어워 가는 마음이 혼곤히 鄕愁하는 겹저고리로소이다. 或 달이 銀貨 같거나 銀貨가 달 같거나 도모지 豊盛한 三更에 졸이면 오늘 낮에 목매달아 죽은 동무를 울고 나서−煙氣 속에 망설거리는 B·C의 抗辯을 홧김에 房 안 그득이 吐해 놋는 것이로소이다.
<最低 樂園>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