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연경세시기≫는 과거로부터 만청(晩淸)에 이르기까지 북경의 연중 세시 풍속과 명승지, 고적 등을 기록했으며 1906년 간행 이후 급속도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정월 원단부터 제석까지의 세시 풍속을 날짜별로 기술했는데 사계절의 풍취와 풍속 및 북경의 물산과 기예 등을 기존의 세시기를 본받아 선인(先人)들의 다양한 기록에 자신의 견문을 보태서 유람(遊覽)에 도움이 되도록 저술했다. 그러므로 ≪연경세시기≫는 중국 세시 풍속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저작 동기는 발문(跋文)에 따르면, “세시에 따라 유람해 기록했는데 전례에 속하지 않는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처의 볼거리는 대부분 기일이 정해져 있어 또한 세시와 서로 일치했다. 그 볼거리에서 정해진 기일이 없는 것은 대개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구별했다. 광서 26년 경자(庚子) 3월 16일에 돈숭 스스로 적다. 다시, 이 기록은 모두 사실을 따라 쓴 것이어서 자잘한 일들이 많아 번잡스럽고 거칠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주요 뜻을 살펴보면 풍속·유람·물산·기예 네 부분 아닌 것이 없을뿐더러 또한 ≪일하구문고≫의 대요(大要)다. 또 적는다” 했다.
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서술 체재는 세시에 따라 기술하되, 날짜가 정해진 것은 명확하게 밝히고 있으며 선인들의 기록을 인용했으나 오류를 바로잡고 작자의 견문도 보태어 창의성이 돋보인다. 저술 시기는 1900년이며 ≪일하구문고≫의 대요로 한 해의 세시 풍속을 월별로 다양하게 소개했다. 특히 청대 상업 경제의 발달을 반영하듯 각 달에 지내는 묘시(廟市)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상세하다.
≪연경세시기≫에 나타난 풍속·민간 신앙·제사·제수품(祭需品)·의복·장식품·기호품·절식(節食)·명승고적·잡기·유희·잡기·폭죽·장난감·벌레·새·화훼, 사람의 관심사 등은 모두 해당 절기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세시 풍속 행사는 주로 부녀자와 아이들이 주체가 되며 추구하는 바는 진경벽사·초복제액(招福除厄)·무병장수로 빈부귀천 모두 기복하고 액막이·액풀이에 목적을 둔다. 그러나 변화 발전 과정에서 점차 지역적 민족적 유대감을 형성하며 오락적 축제의 성격이 강조되는 한편 숭배신의 공능 또한 단일(單一)에서 만능(萬能)으로 확대된다.
200자평
청나라 시기 북경 지역의 세시 풍속을 월별로 정리한 책이다. 주요 내용은 풍속·유람·물산·기예, 묘시 등으로 음력 정월부터 12월까지 총 145조를 다루었다. 설과 단오는 물론, 봉숭아물 들이기, 제기 차기, 썰매 타기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풍속도 보인다. 한중 양국의 세시 풍속 비교 연구 발전에 초석이 될 작품이다.
지은이
부찰돈숭(富察敦崇, 1855∼1922)은 만주 귀족의 후예로 자는 예신(禮臣), 호는 철사도인(鐵獅道人)이다. 그는 대대로 돈혜백(敦惠伯)의 지위를 세습해 온 승간당공(承簡堂公)의 둘째 아들이며 만주 세가(世家)인 태부대학사(太傅大學士) 마문목공(馬文穆公)의 먼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났으나 족인(族人)으로 회피(廻避)당해 우도(牛刀)를 시험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후 관례에 따라 관직을 받아 동삼성(東三省)의 도원(都員)을 지냈다. 퇴청 후에는 서사(書史)를 읽으며 마음을 달래어 국조[國朝, 청조(淸朝)]의 옛 역사 제도의 전고(典故)에 관해 그 본원(本源)을 깊게 탐구했다. 일찍이 육군부낭중(陸軍部郞中)·광서사은부지부(廣西思恩府知府) 등을 거쳐 선통(宣統) 2년 조정의 명을 받들어 북경·찰합이(察哈爾)·하북(河北)·호북(湖北)·강소(江蘇)·절강(浙江) 등지의 군대·학교·공장 등을 조사하는 사무를 보았다. 이듬해 7월 병가를 얻어 북경으로 돌아와 혁명을 피해 두문불출했다. 그는 평생 문사를 좋아해 풍부한 저술을 남겼는데 ≪융유황태후대사기(隆裕皇太后大事記)≫·≪남행시초(南行詩草)≫·≪자등관시초(紫藤館詩草)≫·≪예창쇄기(藝窗瑣記)≫·≪화호집문초(畵虎集文抄)≫·≪(경자)도문기변삼십수절구[(庚子)都門紀變三十首絕句]≫·≪황실견문록(皇室見聞錄)≫·≪부찰유문록(富察遺聞錄)≫ 등이 전한다.
옮긴이
상기숙(尙基淑)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同) 교육대학원에서 <한국 현대문학과 Shamanism−동리(東里)·순원(順元) 작품을 중심으로>로 교육학석사 학위를 받고, 동 대학원에서 <한국(韓國) 무점(巫占)의 실태−문학성과 관련지어>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 사립원동대학(私立遠東大學)에서 <≪剪燈新話≫集證>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한서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저로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찬시문(贊詩文)≫, ≪제경세시기승(帝京歲時紀勝)≫ 등이 있으며, 중국의 민간 신앙, 중국 고전 소설 문학과 민속, 한중 양국의 문학 및 민속 문화 비교 등을 주제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연경세시기서(燕京歲時記序)
정월(正月)
원단(元旦)
팔보하포(八寶荷包)
제재신(祭財神)
파오(破五)
인일(人日)
순성(順星)
타춘(打春)
등절(燈節)
연구(筵九)
개인(開印)
타귀(打鬼)
전창(塡倉)
대종사(大鐘寺)
백운관(白雲觀)
조노공관아(曹老公觀兒)
창전아(廠甸兒)
동서묘(東西廟)
토지묘(土地廟)
화아시(花兒市)
소약왕묘(小藥王廟)·북약왕묘(北藥王廟)
사모자(耍耗子)·사후아(耍猴兒)·사구리자(耍苟利子)·포한선(跑旱船)
2월(二月)
태양고(太陽糕)
용대두(龍擡頭)
춘분(春分)
청명(淸明)
매소유계(賣小油雞)·소압자(小鴨子)
3월(三月)
삼월삼(三月三)
반도궁(蟠桃宮)
동악묘(東嶽廟)
담자사(潭柘寺)
계대(戒台)
천태산(天台山)
환계(換季)
황화어(黃花魚)·대두어(大頭魚)
4월(四月)
사연두(捨緣豆)
만수사(萬壽寺)
서정(西頂)
묘봉산(妙峯山)
아계산(髟丫髻山)
북정(北頂) 동정부(東頂附)
유전고(楡錢糕)
황리(黃鸝)
노순(蘆筍)·앵도(櫻桃)
양초면(凉炒麪)
매괴화(玫瑰花)·작약화(芍藥花)
5월(五月)
단양(端陽)
웅황주(雄黃酒)
천사부(天師符)
창포(菖蒲)·애자(艾子)
채사계호(綵絲繫虎)
전채위호로(剪綵爲葫蘆)
사갈(賜葛)
성황출순(城隍出巡)
과회(過會)
도성황묘(都城隍廟)
남정(南頂)
십리하(十里河)
요대(瑤台)
마도우(磨刀雨)
분룡병(分龍兵)
악월(惡月)
석류(石榴)·협죽도(夾竹桃)
5월 선아(五月先兒)
첨과(甛果)
염지갑(染指甲)
6월(六月)
유월육(六月六)
세상(洗象)
제마왕(祭馬王)
제관제(祭關帝)
사빙(賜冰)
환갈사(換葛紗)
중정(中頂)
십찰해(十刹海)
소청낭(掃晴娘)
빙호아(冰胡兒)
산매탕(酸梅湯)
서과(西瓜)
7월(七月)
주침(丢針)
작전교(鵲塡橋)
중원(中元)
하엽등·호자등·연화등(荷葉燈·蒿子燈·蓮花燈)
법선(法船)
우란회(盂蘭會)
방하등(放河燈)
강남 성황묘(江南城隍廟)
금종아(金鐘兒)
능각·계두(菱角·雞頭)
조아·포도(棗兒·葡萄)
8월(八月)
중추(中秋)
월광마아(月光馬兒)
구절우(九節藕)
연판서과(蓮瓣西瓜)
월병(月餠)
토아야 탄자(兎兒爺攤子)
조군묘(竈君廟)
9월(九月)
구월구(九月九)
조어대(釣魚臺)
화고(花糕)
구화산자(九花山子)
조해·양향주·압아광·시자·산리홍(糟蟹·良鄕酒·鴨兒廣·柿子·山裏紅)
재신묘(財神廟)
10월(十月)
시월일(十月一)
첨화(添火)
앙산와(仰山漥)
매헌서(賣憲書)
픙쟁·건아·유리 나팔·포포등·태평고·공종(風箏·毽兒·琉璃喇叭·咘咘噔·太平鼓·空鐘)
주마등(走馬燈)
척구(踢球)
곡곡아·괄괄아·유호로(蛐蛐兒·聒聒兒·油壺盧)
율자·백서·중과·남당·살제마·부용고·빙당호로·온박(栗子·白薯·中果·南糖·薩齊瑪·芙蓉糕·冰糖壺盧·溫朴)
수오타·내오타(水烏他·奶烏他)
적포아·투고낭·해당목과·구박(赤包兒·鬥姑娘·海棠木瓜·漚朴)
오동·교취·축정홍·노서아·연교아(梧桐·交嘴·祝頂紅·老西兒·燕巧兒)
동순·은어(冬筍·銀魚)
11월(十一月)
번괘자(翻褂子)
월당두(月當頭)
동지(冬至)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
타상(拖牀)
유빙혜(溜冰鞋)
타빙(打冰)
사초(賜貂)
12월(十二月)
납팔죽(臘八粥)
대백채(大白菜)
옹화궁 오죽(雍和宮熬粥)
포록상(麅鹿賞)
봉인(封印)
봉대(封臺)
방년학(放年學)
제조(祭竈)
춘련(春聯)
문신(門神)
화아붕자(畵兒棚子)
제석(除夕)
선세(跴歲)
연반(年飯)
당화(唐花)
장향(藏香)
요전수(搖錢樹)
압세전(壓歲錢)
홍표아(紅票兒)
괘천(掛千)
천지탁(天地桌)
사세(辭歲)
영희신(迎喜神)
발(跋)
부록
참고문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봉인(封印)
매년 12월이면 19·20·21·24일 안에 흠천감(欽天監)에서 길일(吉日)을 선택해 관례에 따라 봉인(封印)하고 천하에 반포하면 다른 관청에서 일체를 좇아서 행한다. 봉인을 하는 날 각 부(部)·원(院)에서 인장을 관장했던 관원은 반드시 동료를 초청해 즐겁게 모여 통쾌하게 술을 마시며 1년 동안의 노고에 보답한다. 그러므로 봉인을 이미 마치고 나면 수많은 말들이 일제히 출발해 전문(前門) 일대가 매우 혼잡하며 원(園)·관(館)·거(居)·루(樓)는 모두 발 디딜 틈이 없다. 봉인 이후 거지와 무뢰배들이 시장에서 조금도 거리낌 없이 돈을 낚아채 가니 대개 관리가 사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역시 나쁜 풍속이다.
每至十二月, 於十九·二十·二十一·二十二四日之內, 由欽天監選擇吉期, 照例封印, 頒示天下, 一體遵行. 封印之日, 各部院掌印司員必應邀請同僚歡聚暢飮, 以酬一歲之勞. 故每當封印已畢, 萬騎齊發, 前門一帶, 擁擠非常, 園館居樓, 均無隙地矣. 印封之後, 乞丐無賴攫貨於市肆之間, 毫無顧忌, 蓋謂官不辦事也. 亦惡俗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