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폴리스’, ‘통치’, ‘고고학’과 같은 표지의 어휘들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미셸 푸코의 사상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감시와 처벌은 근대 주체의 계보학이자 규율 권력의 해부학이다. 근대 학교 제도는 군대, 공장, 병원, 감옥과 함께 규율권력의 장치들에 해당하며, 근대 주체는 이 장치들을 통해 제조된다. 19세기 초에 성립한 근대적 형벌 제도로서 감옥은 역사적으로 학교 제도에서 가장 먼저 실천된 규율 테크놀로지를 기본 원리로 채용했다. “감옥과 학교는 닮았다”.
푸코는 근대 국가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제도의 외부로 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푸코가 착안한 것이 ‘통치’ 개념이었다. ‘통치성(gouvernementalité)’이라는 신조어도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시로즈 히로노부는 바로 이런 푸코의 통치성론의 영향 아래 폴리스로서의 교육을 구상했다. 근대폴리스론은 근대국가에 관한 푸코의 고고학적 분석 작업의 핵심적인 성과다. 시로즈 히로노부는 근대폴리스론의 언설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 성과를 책으로로 발표했다. 즉 이 책은 푸코의 고고학적 발굴 작업을 이어 받아 그 지층을 더 깊이 파 내려간 결과인 것이다.
‘폴리스(police)’는 통치성(gouvernementalité) 개념이 처음부터 연구자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조명을 받아 온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아왔다. 이 용어는 ‘내치’ 혹은 ‘내정’이라는 말로 번역되어 왔고 심지어 ‘경찰’로 번역되는 일도 있었다. 세 번째 경우는 명백한 오역이지만 앞의 두 역어는 그렇지 않다. 의미상 폴리스는 외치 혹은 외정에 대비되는 국내 행정 활동 전반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푸코의 사상에서 폴리스는 근대국가의 계보학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푸코가 발굴해 낸 일종의 고고학적 유물과도 같다. 그런 점에서 폴리스를 내치 혹은 내정이라는 말로 번역하는 것도 다소 적절하지 않다. 폴리스라는 개념이 가지는 특정한 역사적 지층 혹은 의미론적 맥락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식민지 시대에 이어서 해방 후 군부 통치가 끝날 때까지 20세기의 거의 전 기간에 걸쳐 폴리스적 통치가 지배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폴리스로서의 교육’이라는 관점은 한국 근대교육의 역사적 분석에 여러 유용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200자평
미셸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근거로 근대 공교육의 형성사를 실증한 책이다. 시로즈 히로노부는 위생, 치안, 구빈을 비롯한 인구 집단의 생활 전반을 관리하는 내정(內政) 실무를 ‘폴리스’라 할 때 공교육의 시작도 바로 이런 폴리스의 일환이었다는 데 주목했다.
지은이
시로즈 히로노부(白水浩信)는 1969년생으로 도쿄대학 대학원 교육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고베대학 발달과학부 준교수를 거쳐 현재 홋카이도대학 대학원 교육학연구원 준교수다. 서양교육사상사를 전공하며 폴리스 교육론, 현대 학교론, 교육과 규율의 역사인류학 등의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ポリスとしての教育(폴리스로서의 교육)(2004), 人間像の発明(인간상의 발명)(공저, 2006), 教育史研究の最前線(교육사의 최전선)(2007), 高齢者のウェルビーイングとライフデザインの協同(고령자의 웰빙과 라이프디자인의 협동)(공저, 2010) 등이 있다.
옮긴이
정규영은 청주교육대학교 교수다.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박사(교육학) 학위를 취득했다. 근대교육사를 전공하며 현재는 미셸 푸코 사상의 교육학적 함의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 동서양 교육의 역사(2011), 통치와 교육 – 통치는 교육의 ‘바깥’인가?(2016) 등이 있다. 논문으로 “미셸 푸코의 파놉티시즘과 근대교육”(2014), “지식, 권력, 교육”(2015) 등이 있다.
차례
한국어판 서문
1장. 서론 : 헤겔 · 폴리스 · 교육
헤겔 법철학강요에서 ‘교육’
시민사회의 자식
폴리차이와 교육
근대폴리스론 연구의 사정(射程)
‘교육자(educatore)’로서의 근대국가
미셸 푸코와 근대폴리스론
과제와 구성
2장. 프랑스 계몽사상과 근대폴리스론
장 자크 루소와 폴리스의 어휘 세계
폴리스의 출현 빈도
폴리스가 사용된 문맥
백과전서의 폴리스 기사
기사의 배경
기사의 개요와 고찰
타블로 드 파리와 폴리스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와 타블로 드 파리
폴리스총대관과 그의 부하
폴리스와 아이
3장. 니콜라 들라마르 폴리스론의 세계
폴리스론의 배경
샤틀레친임관 들라마르
폴리스의 체계
폴리스론 총론편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자연법과 폴리스
‘작은 국가’로서의 가족
폴리스의 대상 영역
종교폴리스
풍속폴리스
위생폴리스
교육폴리스
소결론 : 들라마르 폴리스론의 사정(射程)
4장. 근대폴리스론과 위생적 배려
성에 대한 배려와 폴리스
오나니 신화
마스터베이션에 관한 어휘의 계보
오나니아와 오나니슴
요한 페터 프랑크의 의료 폴리차이
프랑크의 생애
의료 폴리차이의 구성
인구 · 출산육아 · 공교육
의료 폴리차이와 자유
5장. 결론 : 근대폴리스론과 교육적 통치의 탄생
보론. 일본의 근대폴리스론 수용
폴리스론 수용의 여명(黎明)
후쿠자와 유키치의 “단속의 법”과 치안
가와지 도시요시와 ‘보부(保傅)’로서 폴리스
초창기의 폴리스 제도와 그 실무
고토 신페이의 폴리차이론
국가의 위생법
인체적 국가의 해부도
위생법으로서 폴리차이론
교육폴리차이
소결론 : 근대화의 주변과 폴리스론의 수용
사료 : 백과전서 중 ‘폴리스’ 항목
참고문헌
찾아보기
옮긴이 후기
책속으로
근대폴리스론의 역사는 욕구 체계로서 시민사회에 필연적인 빈곤, 비위생, 범죄, 무지라는 현상을 앞에 두고, 인간이 폴리스라는 장치를 매개로 어떻게 사회적 주변과 맞대결해 왔는가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 대략적으로 그것은 ‘교육적 통치’의 점진적 진전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들라마르가 폴리스의 원점을 ‘친자 관계’ 안에서 찾으며 폴리스란 부모의 자식에 대한 ‘교육적 배려’로 수렴되는 것이라고 이해했던 것은 대단히 특징적이다. 요컨대 폴리스는 억압을 위주로 하는 조야하고 폭력적인 장치라기보다는 오히려 “폴리스 고유의 목적은, 그 생에서 향유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행복으로 인간을 인도하는 일이다”라고 들라마르가 명확하게 말하고 있듯이, 폴리스는 질서를 유지하고 공공선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완전한 행복’으로 인간을 쉴 새 없이 가르치고 인도하기 위해 구축되어 온 고도의 기술체계에 다름없다. 여기서 ‘가장 완전한 행복’이란 물론 질서와 공공선에 따라 조건화되어 있는 것이다.
4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