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간 국내 발자크 작품의 번역과 출간은 몇몇 작품에 치중해 있었다. <고리오 영감>을 비롯한 몇 작품이 여러 차례 재번역되어 독자를 만난 반면 다수의 작품이 번역도 되지 못했다. <샤베르 대령> 대표적이다. 발자크가 단테의 ≪신곡≫에 버금가는 대작으로 기획한 ≪인간 희극≫ 총서 가운데 한 편이다.
법률사무소에 끔찍한 몰골을 한 캐릭코트 차림의 사내가 방문한다. 그는 자신을 ‘샤베르 대령’이라고 소개한다. 샤베르 대령은 이미 전장에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 인물이다. 법률 대리인 데르빌은 이 사내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여기고 그의 신분을 증명해 줄 유일한 증인 페로 백작부인을 만나 보기로 한다. 과거 샤베르 대령의 아내였던 이 여인은 현재는 귀족과 재혼해 아이들까지 두었다. 데르빌은 샤베르 대령이 죽음으로 해서 그녀에게 귀속된 재산과 사회적 명성 때문에 페로 백작부인이 남편의 생환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의심한다. 의심은 적중했다. 페로 백작부인은 남편이 자인은 물론 재산까지 깨끗이 포기하고 파리를 떠나도록 간계를 꾸민다.
발자크는 이 작품에서 죽었다 생환한 인물이 다시 어떻게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지 보여 준다. 출간 이후 ‘샤베르 신드롬’(그가 죽은 줄 알았을 땐 눈물을 흘리다가 막상 살아돌아오면 반기지 않는 심리)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만큼 반향이 컸던 작품이다.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프랑스 대문호 발자크의 작품을 초역으로 소개한다.
200자평
발자크의 ≪인간 희극≫ 가운데 <샤베르 대령>을 국내 초역으로 선보인다. 남편이 살아돌아온 걸 알고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하는 ‘페로 백작부인’, 그녀의 계획을 알아채고 삶에 회의를 느껴 스스로 사회적 매장을 택하는 ‘샤베르’의 이야기다.
지은이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는 18세기를 마감하고 19세기를 맞이하는 해인 1799년, 프랑스의 투르에서 평민 출신 베르나르 프랑수아 발사(Bernard François Balssa)의 아들로 태어났다. 익명의 작가를 시작으로 인쇄업자와 출판업자 그리고 신문 평론 작가를 거쳤고 1830년을 전기로 본격적으로 소설가로 활동했다. 거대한 총서 ≪인간 희극≫을 기획 출판하고 1850년 파리에서 인생을 마감했다.
옮긴이
김인경은 서울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파리 8대학교 대학원을 졸업(문학석사, 문학박사)하고 서울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를 지냈다.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불어불문과 초빙교수다. ≪Bibliographie du dix-neuvieme siècle. Lettres-Arts-Sciences-Histoire≫, ≪Penser avec Balzac. Décade de Cerisy≫, ≪일상문화 읽기 : 자기성찰의 사회학3≫ 외 저역서 다수를 출판했고 발자크와 사회비평적 분석에 대한 논문들을 발표했다.
차례
샤베르 대령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우리 사회에는 사람을 존경 못하는 인간이 세 종류 있지. 그것은 성직자, 의사, 법조인이라네. 그들은 모두 검은 옷을 몸에 두르고 있네. 왜냐하면 아마도 모든 미덕과 모든 환상을 애도하기 때문일 거야. 세 사람 중에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이가 소송대리인이네. 사람이 사제를 만나러 오는 것은 후회와 양심의 가책과 신앙에 끌려서 오게 되는 일이네. 그런 것이 이미 마음에 있으면 상대방의 흥미도 끌어서 그 사람은 위대한 인간도 될 수 있는 거지. 중재하는 사제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성직자의 의무에는 향락이 수반되네. 마음을 정화시키고, 죄를 사하고, 화해시키는 것이니까. 그런데 소송대리인인 우리는 똑같은 악한 감정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걸 보고 있지. 아무것도 그런 것들을 바로잡지 못하네. 우리 연구는 결코 정화시킬 수 없는 시궁창이라네. 내가 맡았던 사건들을 수행하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는지 모르네! 두 딸에게 4만 프랑의 연 수입을 올리는 재산을 건네준 아버지가 자신의 두 딸한테 버려진 채 다락방에서 무일푼으로 죽어 가는 것을 보기도 했네. 유언장이 불태워지는 것도 보았지. 자식의 재산을 강탈하는 모친, 아내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남편, 연인과 평화로이 살려는 목적을 위해 자신에 대한 남편의 애정을 이용해 상대편을 미치거나 바보로 만들어 없애 버리는 여자들도 보았어. 사랑하는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에게 한재산을 만들어 주겠다고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에게 목숨에 치명타가 되는 기호들을 심어 주는 여자도 보았네. 여기서 내가 보았던 걸 남김없이 자네에게 얘기할 수는 없지. 왜냐하면 재판소가 섣불리 손댈 수 없는 범죄들을 보아 왔으니까. 어쨌든 소설가가 고안했다고 여기는 끔찍함 따위는 모두 여전히 사실보다 못하지. 자네도 이제부터 참으로 한심한 그런 면들을 알게 될 걸세. 난 아내와 시골로 살러 가려네. 난 이제 파리가 무섭네.
165-1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