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51년에 처음 출간된 이 책, 『커뮤니케이션 편향』은 미디어학의 고전에 속한다. 인류의 역사,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미디어를 새로운 시각으로 파악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쳐 왔다. 이 책에서 이니스는 고대 왕국이나 현대사회의 출현, 유지, 쇠퇴 시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탐구하면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함께 고려했다.
이 책의 핵심어인 ‘편향’은 선호 혹은 경향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니스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형성된 습관에 근거해 행위를 하며, 이와 관련된 생각이나 실천들은 그 스스로 발전되고 재생산된다고 보았다. 이니스는 이들 생각과 실천을 ‘편향’이라 지칭했으며, 그 편향은 역사적으로 결정된다고 인식했다. 곧 편향은 인간의 삶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영향력 있는 변수다. 그러므로 편향은 ‘사실에 대한 왜곡’이라는 부정적이고 단순한 의미를 띠는 것이 아니다. 편향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이니스는 바로 이 편향이 커뮤니케이션과 어떤 관계인지 논한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구성된다. 첫째는 역사에 대한 커뮤니케이션학적 접근 방법의 설정이고, 둘째는 근대 문화와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다. 역사에 대한 커뮤니케이션학 관점은 1장 “미네르바의 올빼미”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장에서 이니스는 다음과 같이 제언했다. “서구 문명은 커뮤니케이션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아 왔으며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특징적 변화가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 화두를 토대로 이니스는 새로운 매체가 사회 기관이나 인간의 가치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역사적으로 살펴본다. 근대 문화와 과학기술에 대한 고찰의 사례는 5장 “산업주의와 문화적 가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장에서 이니스는 “모든 문명은 그들의 문명을 몰락시킬 수 있는 자신들의 고유한 방식을 갖고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중심으로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를 논의한다.
마셜 매클루언은 이 책 서문에서 “이니스의 방식대로 그의 연구들을 읽는다면 시간이 많이 소비된다”, “이니스 책의 페이지는 각각 하나의 작은 실험실이다”라고 언급하면서 이니스의 글쓰기 방식을 ‘인터페이스’와 같다고 했다. 인터페이스는 실체들이 상호 병렬식으로 위치하고 있으면서 상호작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니스는 자신의 생각을 하나의 관점에서 서술하지 않고, 대조되는 개념의 병렬을 통해 독자들이 스스로 빈 곳을 채우게 했다.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방대한 서구 역사를 배경으로 삼아 커뮤니케이션 매체와 사회인식론의 관계를 시간과 공간, 질서와 과정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엮어 논의하는 책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매우 귀한 생각의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0자평
편향이 뭔가? 경험과 습관에 바탕을 둔, 행위와 실천의 집합이다. 어떻게 작용하나? 세상을 보고 느끼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편향의 결정 변수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다. 미디어 생태학의 주춧돌을 놓은 해럴드 이니스가 커뮤니케이션 편향의 역사를 정리했다. 고대 문명부터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그 흥망성쇠의 궤적을 미디어 관점에서 살펴본다.
지은이
해럴드 애덤스 이니스(Harold Adams Innis)
캐나다 출신의 경제사학자로 토론토 커뮤니케이션학파의 지적 토대를 마련한 미디어 연구의 선구자다. 1923년 『캐나다 태평양 철도의 역사』를, 1930년 『캐나다에서 모피 무역』을 발표했다. 이후 10년간의 캐나다 경제사 연구를 바탕으로 『대구 어업: 국제경제학의 역사』(1940)를 발표했다. 이상의 작업에서 그는 캐나다의 경제와 문화가 모피, 어류, 목재, 밀, 광물, 연료 같은 원자재의 개발과 수출입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니스는 근대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가 경제적 삶의 여러 측면들을 더욱 가깝게 관련 맺게 하고 해당 영토를 확장시키면서 조직화된 상업과 시장 체계, 가격, 신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했다. 미디어와 운송 테크놀로지가 신문, 고속 인쇄 기술, 증기기관, 전보와 전화 그리고 라디오와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대중 사회의 하부구조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후 원자재의 흐름과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제국과 커뮤니케이션』(1950), 『커뮤니케이션 편향』(1951), 『시간의 변화하는 개념』(1952) 등 커뮤니케이션 분야와 밀접한 세 권의 책을 저술했다.
옮긴이
이호규
동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다. 주요 논문으로는 “커뮤니케이션 편향과 진리: 존 스튜어트 밀과 해럴드 이니스의 논의를 중심으로”(2014), “아리스토텔레스 『레토릭』의 재해석: 문자문화의 관점에서”(2013), “자크 엘륄의 테크닉과 그의 커뮤니케이션”(2008), “해럴드 이니스의 커뮤니케이션 사상: 편향(Bias)을 중심으로”(공저, 2003)가 있으며, 저서로는 『테크놀로지와 낭만주의』(2008)가 있다.
차례
옮긴이 서문
마셜 매클루언의 서문
지은이 서문
01 미네르바의 올빼미
02 커뮤니케이션 편향
03 시간을 위한 호소
04 공간의 문제
05 산업주의와 문화적 가치
06 18세기영국의출판산업
07 미국의 테크놀로지와 여론
08 “비판적고찰”
부록 1 북미의 커뮤니케이션과 전자파 자원에 대한 기록
부록 2 성인교육과 대학
미주
책속으로
나는 내 책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글쓰기부터 인쇄까지의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결과의 주제에 관해 연구한 이니스 업적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기꺼이 생각한다. 이니스가 나의 몇몇 연구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처음으로 나는 그의 연구에 주목했다. 이니스가 쓴 이 책의 첫 번째 장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시작으로 그의 연구를 살펴보는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책에 쓰인 문장 하나하나가 독자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생각하게 하고, 탐구하게끔 하는 작가를 만나는 것은 흥분되지 않는가? “알렉산드리아는 과학과 철학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어 버렸다. 도서관은 이집트 사제의 영향력을 무마시키기 위한 제국의 도구였다.”
이니스의 방식대로 그의 연구들을 읽는다면 시간이 많이 소비된다. 그럼에도 이니스의 방식대로 그의 연구들이 읽혀야만 한다는 사실은 그러한 시도를 한 번이라도 실행해 본다면 즉시 확실해진다. 각각의 문장들이 하나의 압축된 논문이다. 이니스 책의 페이지는 각각 하나의 작은 실험실이다. 게다가 종종 같은 페이지에 작은 참고 문헌의 도서관을 포함시키고 있다. 만약 선생의 임무가 학생들의 시간을 절약시켜 주는 것이라면, 이니스는 위대한 선생 중 한 명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두 문장은 과학과 철학의 특수한 구조적 형상뿐만 아니라 제국, 도서관, 사제들의 구조적인 특징과 기능에 대해 인식함을 의미하며 또한 이런 인식을 초래한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철학, 과학, 도서관, 제국 그리고 종교의 내용을 언급하는 데 몰두한다. 그러나 이니스는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구조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나타나는 권력의 형상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조직화된 권력의 구조 각각을 복잡한 형태로 다른 구성물에 특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모든 구성물들은 그들의 내부에 그리고 그들 간에 진행되는 상호작용의 과정에 의해 존재한다. 요즈음의 과학과 철학이 어떠한 모습인지는 사회적·역사적 과정에서 그것들이 만나면서 서로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에 의해 명료하게 그 의미가 나타날 것이다. 그 이외의 다른 요소들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역사적인 활동에서 그 행위로 그 자신을 설명한다. 물리학자가 안개상자를 사용하듯이 이니스는 우연히 역사를 그러한 수단으로 사용하려 했다. 알려지지 않은 형상을 알려진 형상에 부딪히게 해, 그는 새롭거나 덜 알려진 형상의 본질을 발견했다.
“마셜 매클루언의 서문” 중에서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오로지 황혼이 질 무렵에야 날기 시작한다.”
헤겔은 고대 그리스 문명의 쇠퇴와 멸망을 지켜보면서 그 기간 동안 이루어진 중요한 고전 작품들에서 나타난 문화의 구체적인 형태에 대해 위와 같이 썼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풍요로움과 독창성이 서구의 역사에 끼친 영향을 고려할 때 그 올빼미는 그리스 문명의 황혼녘뿐만 아니라 서구 문명 전체를 위해 날갯짓을 시작했다.
나는 서구 문명이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아 왔으며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현저한 변화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제시하려 했다. 간단히 말해 이 장에서는 커뮤니케이션 매체와 관련하여, 서구 문명을 다음과 같은 시대들로 구분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시작으로, 진흙·바늘·설형문자체 등이 존재했다. 그리스 로마 시대까지 파피루스 종이·붓·상형 문자체와 신관 문자체를 사용했고, 서구에서 제국이 사라질 때까지 갈대 펜과 알파벳 등이 있었다. 암흑기 또는 10세기에 이르기까지 양피지와 펜이 종이와 더불어 사용되었는데, 인쇄의 발명과 더불어 종이가 더욱 중요해졌다. 중국에서도 종이와 붓 등을 사용했으며 르네상스 시대 혹은 인쇄의 발명 이전에도 유럽에서 종이와 펜을 사용했다. 19세기 초반까지 혹은 종교개혁 시기부터 프랑스혁명 시기까지 종이와 수동 방식의 인쇄기가 활용되었다. 19세기 초 이래로 기계를 이용하여 종이를 생산했으며 인쇄가 기계화되었다. 19세기 중반부터 목재를 이용해 종이를 대량으로 제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영화의 성장에 따라 영화 필름에 셀룰로이드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20세기 중반에 라디오가 나타났다. 나는 각각의 시기마다 지식의 특징과 밀접하게 관련된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함축된 의미를 추적하려 했으며, 지식의 독점이나 과점은 균형 상태를 붕괴하는 지점까지 형성되는 것임을 주장하려 한다.
“01 미네르바의 올빼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