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달의 소리>는 세상의 모든 소리, 달의 소리까지 수집하려는 신라의 공주, 처음엔 소리에 다음엔 권력에 취해 버린 가야 악사 이문,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다.
<왕궁 식당의 최후>는 극한의 상황에서 한계를 모르는 인간 욕망의 폭발을 식욕에 기대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한데 넣고 끓인 냄비 요리에 빗댄 <냄비>, 중년 여성의 삶과 정체성을 다룬 <바람의 욕망>을 수록했다.
추천의 말
박상현(극작가, 연출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1990년대 막바지, 반듯하고 날카롭게 글을 쓰던 젊은 비평가 김명화는 왼손의 칼을 내려놓고 오른손으로 다른 칼을 듯 듯이, <새들은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다>를 내놓으며 극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마치 오랜 준비를 마친 것처럼 젊은 작가들을 주욱 앞서가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많은 희곡상을 받았듯이, 폭넓은 시각과 정교한 극작술로 연출가와 관객들을 유혹하고 평론가들의 엄지손가락을 뽑아냈다. 인생의 굽이를 돌면서 그는 지난날의 작품 하나하나를 반추하며 조용히, 작가로서의 삶을 되돌아보는 듯하다. 깊은 침묵의 호흡 뒤에 그가 가리킬, 또 다른 희곡의 지평을 기다려 본다.
양승국(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 공연예술학협동과정 교수)
언제부턴가 한국 연극은 연출가의 연극이 된 듯하다. 연출가가 자신이 쓴 대본을 무대에 올리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강요하고, 관객은 연출가의 욕망에 수동적으로 동참해야 하는 다소 불편한 현실이 연극정이라는 술어로 감싸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극작가의 존재와 목소리는 작가의 생물학적인 나이와 함께 잊혀 가고, 한국 연극은 여전히 좋은 창작극 부재의 현실을 한탄한다. 이러한 한국 연극의 현실에서, 보기 드불게 김명화의 극적 언어는 목소리와 울림이 있어 언제나처럼 지금 현재 우리들의 존재성을 환기시켜 준다. 작가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그의 희곡에는 깊으면서도 잔잔하게 녹아 있다. 따라서 김명화의 언어는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그 웅덩이에 빠져 아우성치지 않는다. 연극성의 핵심은 언어에 정초한다는 연극 미학의 상식을, 김명화는 ‘감각과 기억’의 존재성을 탐구하는 독창적 언어 형식으로 무대 위에 섬세하게 드러낸다.
200자평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넘긴 김명화 작가의 희곡을 엮었다. 첫 작품집을 내고 10년 만이다. 작가가 10년 만에 다시 연극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며 과거의 작품들을 읽고 고쳤다. 3권에 수록된 다양한 소재, 주제, 형식의 작품들을 통해 작가의 깊고 넓은 작품 세계와 만난다.
지은이
김명화는 1966년 김천에서 태어났다. 1984년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에 입학, 교내 연극반에서 활동한 것을 계기로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극학을 공부했다. 1994년 월간 ≪객석≫ 예음상 비평 부문에 입선, 연극평론가로 먼저 등단했고 1997년 <새들은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다>로 삼성문예상 희곡상을 수상, 극작가로 등단했다. 2000년 김상열연극상, 2002년 동아연극상작품상, 대산문학상희곡상, 2003년 아사히신문 공연예술대상, 2004년 문화관광부 오늘의젊은예술가상, 2007년 제10회 여석기연극평론가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침향>으로 제1회 차범석희곡상을 받았다.
차례
달의 소리
왕궁 식당의 최후
냄비
바람의 욕망
작가 메모
책속으로
공주: (손으로 퉁겨 본다.) 소리를 뜯는다 하더군. 시작하는 것만 배우고, 더 배우지 못했다. 고를 타는 손이 나비 같아서 소리도 아름다울 것이다. ……. 어라, 눈물이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구나. (공주 운다.) 이문아 내가 너를 잃고 대신 눈물을 얻었구나. ……. 듣거라. 감옥에 갇힌 가야의 악사들을 모두 풀어 주거라. 신라가 가야를 점령하였으니, 이제 가야도 신라다. 가야의 악사는 신라의 악사고, 가야의 고는 신라의 고다.
85쪽, <달의 소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