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최일남은 구분과 구획에 관심이 많은 작가였다. 이 책은 단절과 그 극복을 주제로 한 단편 <서울 사람들>, <타령 다섯 마당>, <흐르는 북>, <꿈길과 말길>을 엮은 것이다.
<서울 사람들>은 ‘서울’로 대변되는 새로운 중심부에 편입한 이들의 속물근성을 보여 준다. 농촌에서 출생했지만, 서울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자부하는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사내는 바쁜 일상과 갑갑한 서울살이에서 벗어나고자 충동적으로 농촌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끼고자 아무런 목적지나 계획도 없이 시외버스를 타고 마음 가는 곳에서 내리고, 한 농촌 마을의 이장 집에서 머물기로 한다. 김치와 우거짓국, 막걸리 등을 먹으며 예전의 그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다며 밤을 새워 떠들고, 아침에는 굳이 왕소금으로 양치질을 하며 들뜬 하루를 보내지만, 그러한 들뜸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이틀도 제대로 견디지 못하고 텔레비전과 커피와 맥주를 그리워하며 서울로 떠난다.
<타령 다섯 마당>은 서민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기자 생활을 하며 체득한 개별 인간의 구체적 삶에 대한 이해와 천착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은 다섯 가지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이야기들은 가난 때문에 오는 삶의 애환이나, 그 시대의 연애 풍속, 혹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다.
<흐르는 북>은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를 그리는 작품이다. 북에 미쳐 처자식을 나 몰라라 하고 살아온 민 노인, 그러한 아버지 덕분에 가난하고 어렵게 학업을 마쳤지만, 결국 중산층의 자리에 오르게 된 민 노인의 아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와는 반목하지만, 민 노인과는 허물없이 지내는 민 노인의 손자인 성규, 이 삼대의 반목과 갈등, 그리고 이해를 그린다.
<꿈길과 말길>은 남북 간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소설이다. 작가가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북한의 작가와 만나 ‘말’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서로의 이질성을 극복해 나간다는 이야기는 일견 정치적이거나 선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꿈’이라는 장치와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남한이나 북한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적인 감각을 보여 주고 있다.
200자평
구분과 구획에 주목했고 단절의 극복을 고민했던 작가 최일남의 단편 <서울 사람들>, <타령 다섯 마당>, <흐르는 북>, <꿈길과 말길>을 엮었다. 최일남은 20여 년간 언론인을 지내며 관찰한 동시대인들의 삶을 핍진하게 그렸다. 남과 북, 중심부와 그에 속하지 못한 주변부로 나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지은이
최일남은 1932년 전북 전주시 다가동에서 출생했다. 전주사범학교를 거쳐 1952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1953년 <문예>에 <쑥 이야기>, 1956년 <현대문학>에 <파양>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그 후 <현대문학>에 <진달래>(1957)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 갔지만, 그리 활발하지는 않았다. 특히<경향신문>에 입사한 1962년 이후로는 거의 작품 활동이 끊어지다시피 하다가, 1966년부터 간간이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한다. 1975년에는 ‘월탄문학상’을 수상했고, 1979년에는 ‘소설문학상’을, 1981년에는 ‘한국창작문학상’을 수상했다.
최일남은 작가이기도 하지만, 또 일생 언론인이었다. 1980년에는 정치적인 문제로 <동아일보>에서 해직되었다. 1984년 복직되기는 하지만, 해직당했던 경험은 그에게 매우 큰 상처로 남았고, 그 이후 그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특히 1997년에는 해직 당시의 언론계에 대한 통렬한 고백을 담은 ≪만년필과 파피루스≫라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한다. 1986년에는 <흐르는 북>으로 ‘제10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88년에는 한겨레신문 논설고문이 되었고, 그해 ‘가톨릭언론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4년에는 ‘인촌문학상’을 수상했다. 1999년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고문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역임했고, 2001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작품집으로는 ≪서울 사람들≫(1975), ≪타령≫(1977), ≪흔들리는 성≫(1977), ≪홰치는 소리≫(1981), ≪거룩한 응달≫(1982) ,≪누님의 겨울≫(1984), ≪그리고 흔들리는 배≫(1984), ≪틈입자≫(1987), ≪히틀러나 진달래≫(1991), ≪하얀 손≫(1994), ≪만년필과 파피루스≫(1997), ≪아주 느린 시간≫(2000), ≪석류≫(2004) 등이 있다. 대담집 ≪그 말 정말입니까?≫(1983), 에세이집 ≪기쁨과 우수를 찾아서≫(1985), ≪정직한 사람에게 꽃다발은 없어도≫(1993), ≪어느 날 문득 손을 바라본다≫(2006) 등이 있으며, 시사평론집 ≪왜소한 인간의 위대함, 위대한 인간의 왜소함≫(1991) 등이 있다.
엮은이
손보미는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2009년 <21세기 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현재 경희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차례
서울 사람들
타령(打令) 다섯 마당
흐르는 북
꿈길과 말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술집을 나오자 우리는 아이들에게 줄 요량으로 각기 과자 봉지 하나씩을 사들고, 불광동으로, 미아동으로, 중곡동으로 뿔뿔이 헤어졌다. 서로 잘 가라고, 또 만나자고 손을 흔들 때 나는 이놈들아, 우리들이야말로 촌놈이라고, 형편없는 촌놈이라고 속으로 몇 번씩이나 되뇌었다. 동시에 우리들의 등골뼈 밑으로는 칠팔 센티미터쯤 자란 속물(俗物)의 꼬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걸 의식하고 있었다.
-<서울 사람들>, 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