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린좐위, 사다첸, 라오아이는 한때 베이징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베이징을 통치하던 군벌에 맞서 권리를 찾기 위해 시위하던 가슴이 뜨거운 대학생들이었다. 그러나 일본군이 베이징을 침략하는 통에 충칭으로 피난을 오고 난 뒤로는 생활고 때문에 이러한 열정을 잃었다. 부모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사교계 무희가 된 타이리의 도움으로 린좐위는 식당을 개업하고 사다첸과 라오아이가 식당 일을 돕는다. 다행히 식당 영업이 성황을 이루어 생계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린좐위는 잃어버린 항일 의지를 새롭게 불태우고자 한다. 린좐위는 결국 식당 문을 닫고 벌어들인 돈은 항일 운동에 바친다. 한편 사다첸은 식당 문을 닫은 뒤로 홍콩을 드나들며 무역을 통해 큰돈을 벌어들인다. 하지만 홍콩 생활 중에 걸린 성병이 린좐위에게 전염되어 부부는 위기를 맞는다. 린좐위는 돈 벌 궁리만 하는 사다첸에게 이별을 고하고 홍콩으로 떠나 버린다. 실의에 빠진 사다첸에게 절친 라오아이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장이 배달된다.
1940년대에 발표되어 중국 각지에서 공연된 뒤 중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던 작품이다. 중일전쟁 시기 대표작으로 꼽힌다. 전쟁을 피해 충칭에 모여든 여러 인간 군상을 보여 준다.
200자평
1940년대에 발표되어 중국 각지에서 공연된 뒤 중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던 작품이다. 중일전쟁 시기 대표작으로 꼽힌다. 전쟁을 피해 충칭에 모여든 여러 인간 군상을 보여 준다.
지은이
쑹즈디(宋之的)는 중국 현대 극작가로 본명은 쑹루자오(宋汝昭)이며, 1914년 허난성(河南省) 펑난현(豊南縣)의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출생했다. 중학 시절에 신문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연극을 좋아했다. 베이징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연극 활동을 시작해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공연 등에 참가했고, 1932년에는 좌익작가연맹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듬해 국민당의 박해를 피해 상하이로 가서 극단을 조직하고 좌익 연극 운동을 하다가 두 차례 체포당했다. 1935년에 석방된 뒤 상하이를 떠나 타이위안(太原)에서 본격적으로 극본을 창작하기 시작한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뒤로는 극단에 참가해 각지에서 항일 연극 운동에 종사했고, 1938년 이후 충칭(重慶)에 거주하며 항일 연극 운동에 종사했다. 중일전쟁이 끝난 뒤 1946년에 상하이로 돌아와 생활하다가 산둥(山東)대학교로 가서 교편을 잡았고, 이듬해에는 하얼빈에서 ≪생활보(生活報)≫ 편집장을 맡았다. 1948년에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고, 한국전쟁 때 두 차례 취재차 한국을 방문했다. 중국작가협회 이사, 중국정치협상회의 상무이사를 지냈으며 1956년 4월 17일에 간암으로 사망했다.
옮긴이
조득창은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북경사범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협성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다. 저서로는 ≪중국 문화의 즐거움≫(공저, 2009), 편역서로는 ≪삼국연의 상·하≫(2006), 역서로는 ≪피에로≫(2013), ≪결혼/염라대왕 자오≫(2017)가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린좐위: 타이리, 난 원래 장사할 생각은 결코 없었어. 이 조그만 식당도 이틀 뒤엔 문 닫을 거야!
타이리: 왜요?
린좐위: 고생하고 모욕당하는 건 아무것도 아냐. 이렇게 살다간 목석이 될 거야. 원래는 이걸로 생활을 유지해 보고자 했지. 괜찮았어. 생활은 유지됐지. 하지만 시간이 조금도 없어. 책 읽을 시간조차 없어. 그리고−어머나, 음식이 타 버렸네!
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