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데게인은 기원후 2세기 무렵 바이칼 동부에서 아무르강 상류로, 그 후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한 고대 퉁구스족인 ‘읍루’족의 후손이다. 어근 ‘숲(уд)’에서 파생된 이름으로 ‘숲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19세기 말까지는 우데게인과 오로치인을 하나의 민족으로 여겼으나 1930년부터 독립 민족으로 분류되었고 ‘우데게인’이라는 공식 명칭을 얻었다. 이들의 조상은 발해 건국에 참여했고 멸망 후에도 주변 소수민족과 교류하면서 지금까지 삶의 터전을 지키고 있다.
19세기 후반 아무르강과 연해주가 러시아 영토가 된 후 우데게인의 거주지가 축소되었고 우데게인 공동체는 사실상 해체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형사취수제나 숙권제, 피의 복수, 불 숭배와 같은 원시적 관습은 유지된 채 남아 있다. 마을 공동체는 러시아 지방 행정 기관의 승인을 받은 원로 회의가 다스렸으며 원로 회의의 우두머리는 러시아 마을의 촌장과 동등한 권리를 가졌다.
우데게인은 사냥과 어로가 주요 생계 수단이다. 전통적 사냥 방법은 스키를 타고 동물을 쫓아가 창, 활과 석궁을 사용하는 것이고 사슴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나팔로 유인해 사냥했다. 모피 동물 사냥은 상인들이 극동으로 유입된 19세기 후반에 성행했으며 너구리, 족제비, 수달, 담비 등은 덫을 이용해 사냥했다. 그러나 곰과 호랑이는 조상의 영혼이며 사람으로 변신이 가능한 동물로 신성하게 여겼다. 일부 부족은 곰을 숭배하고, 다른 부족은 호랑이를 숭배해 곰 사냥과 호랑이 사냥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이 동물들에게 성공과 질병의 치유를 빌기도 했다.
이 책은 우데게인 설화 열여섯 편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한다. 우리에게 생경한 시베리아 소수민족인 우데게인의 세계관과 전통 문화가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0자평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는 의미 있는 곳, 시베리아. 지역의 언어, 문화, 주변 민족과의 관계, 사회법칙, 생활, 정신세계, 전통 등이 녹아 있는 설화. 시베리아 소수민족의 설화를 번역해 사라져 가는 그들의 문화를 역사 속에 남긴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시베리아 설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의 설화에 조금은 식상해 있는 독자들에게 멀고 먼 시베리아 오지로 떠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도와주길 기대한다.
옮긴이
홍정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대학교에서 석사 학위(품사적 범주로서 대명사 특성 연구)와 박사 학위(현대 러시아어 부정대명사의 텍스트론적 기능)를 받았다.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에서 러시아 여성문학과 미드컬트를 연구했고 청주대 한국문화연구소에서 북아시아 원형스토리 발굴과 번역 프로젝트 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한국외대, 을지대 등에서 러시아어를 강의하고 있다. 역서로는 ≪러시아 여성의 눈≫(공역), ≪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공역)과 ≪북아시아 설화집 6(투바족, 하카스족)≫, ≪케트인 이야기≫ 등이 있다.
차례
불의 여인
예운쿠
사 형제
셀레메게
볼롱도
바다뱀
여인
메예히
두 영감님
팔람 파두
케드로바야강의 용사
슌 샤시가니
남매
청년, 우두머리 백로, 우두머리 독수리와 다람쥐 샤먼
큰 재앙
댱달라푸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한참을 가다 보니 일곱 자매가 사는 집까지 오게 되었다. 영감이 그들에게 말했다.
“여보시오, 아가씨들! 내 아들에게 시집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죽을 드셔 보시오!”
처녀들이 말했다.
“대체 누가 바다뱀 같은 동물한테 시집을 간답니까!”
그러면서 이쪽 아가씨들도 “난 안 가!”, 저쪽 아가씨들도 “나도 안 가!” 하며 외쳤다. 그 순간 막내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살금살금 다가와 죽을 먹는 게 아닌가. 언니들이 죽을 빼앗기도 전에 그녀는 몽땅 먹어 치웠다.
“나는 시집이라도 가 봤으면 좋겠어요.”
너무도 기쁜 영감은 빈 그릇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드디어 내가 아들 신붓감을 찾았단다. 달처럼 동근 얼굴로, 머리가 새까맣고 꼿꼿이 선 사시나무처럼 늘씬한 아주 예쁜 아가씨란다.”
-<바다뱀>, 37~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