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예벤인은 동시베리아의 야쿠트 공화국, 러시아 극동의 마가단, 하바롭스크, 캄차카 지역에 약 2만 명이 거주한다. 예벤인은 대부분 순록을 사육하고 사냥하는 유목 생활을 했으며, 오호츠크해 연안의 예벤인은 물고기나 물개, 바다표범 등을 잡아 생활했다. 유목 생활을 했던 예벤인의 대부분은 1920년대부터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다.
고대 예벤인은 숲, 불, 물 등의 자연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어 숭배했다. 특히 태양을 절대적으로 숭배했고 자연물에 주인신이 있다고 믿었다. 착한 정령이 사는 천상 세계, 인간이 사는 지상 세계, 악한 정령이 사는 지하 세계를 경계 지었고, 샤먼을 지상 세계와 천상 세계, 지하 세계를 연결하는 중개자로 믿었다. 샤먼은 병을 일으킨 사악한 정령을 지하 세계로 보내고, 병든 사람의 영혼을 지상 세계로 보내는 교환 의식을 거행하는 역할을 했다. 예벤인은 땅속을 악한 정령이 지배하는 지하 세계로 생각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을 매장을 하지 않고 나무에 매달아 장례를 지냈다. 고인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혀 나무 관에 넣어 나무 위에 매달아 놓고 나무와 관에 순록의 피를 뿌리는 예벤인의 장례 전통은 19세기 이후 러시아정교의 영향으로 사라졌다.
1990년부터 예벤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예벤어와 예벤의 전통 문화를 보존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해져 예벤어 교육, 예벤어 번역 출판, 일상생활 속 예벤어 사용이 권장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설화를 발굴해서 기록하여 보존하려는 작업이 부각되고 있다. 예벤인 설화는 씨족공동체의 형성과 더불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의 이야기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형되고 다른 종족과의 교류를 통해 변화를 거듭하며 현재까지 전해지고는 있으나 점차 소멸되어 가는 실정이다. 예벤인 설화에는 오랫동안 타이가 삼림지대와 아무르강 연안에서 순록 사육과 사냥, 어획에 종사하며 척박한 자연환경에 순응하여 살아 온 예벤인의 문화적 정체성과 고유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우리는 예술적 상징성과 간결하고 생생한 표현이 가득한 설화를 통해 고대 예벤인 특유의 상상력과 해학, 삶의 지혜, 자연과 절대자에 대한 경외심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는 멧닭의 눈이 빨개진 이유를 설명하는 <욕심 많은 멧닭>, 담비가 작아진 이유를 설명하는 <교활한 담비>, 셋째 딸의 기지로 귀신으로부터 두 언니와 부모님을 구한다는 이야기 <현명한 노인>, 요괴로부터 남편을 구하는 아내의 이야기 <멘레크>, 할아버지의 선량함으로 얻게 된 행운이 할머니의 지나친 욕심으로 물거품이 된다는 이야기 <욕심 많은 노파> 등 예벤인 설화 서른아홉 편이 실려 있다.
200자평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는 의미 있는 곳, 시베리아. 지역의 언어, 문화, 주변 민족과의 관계, 사회법칙, 생활, 정신세계, 전통 등이 녹아 있는 설화. 시베리아 소수민족의 설화를 번역해 사라져 가는 그들의 문화를 역사 속에 남긴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시베리아 설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의 설화에 조금은 식상해 있는 독자들에게 멀고 먼 시베리아 오지로 떠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도와주길 기대한다.
옮긴이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하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비노그라도프대학원에서 의미통사론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논문으로 <어휘ᐨ통사 층위에 나타나는 언어문화적 변이>, <담화연결어의 의미와 기능>, <언어적 세계상에서의 놀이와 도박> 등이 있으며, 저역서로 ≪도박하는 인간≫(공저), ≪러시아 여성작가 10인 단편선≫(공역), ≪북아시아 설화집(알타이족)≫, ≪셀쿠프인 이야기≫, ≪토팔라르인 이야기≫, ≪시베리아타타르인 이야기≫ 등이 있다.
차례
새와 쥐가 싸운 이야기
욕심 많은 멧닭
떠버리 메추리
바다표범
여우와 늑대
여우와 곰
교활한 담비
담비
여우 이야기
움체긴과 부윤댜
두 자매 이야기
촐레레
첸게 이야기
오모촌
곰
움체니와 우인댜
오로치인과 코랴크인의 옛 생활에 관한 이야기
여자 샘
데브리켄 코브리칸
쿠를레니
게으른 소년과 새
달에 반점이 생긴 이유
고아 소녀
틸켄과 돌단 형제
우메스네와 안차크
현명한 노인
멘레크
한 마리 개
은둔자
잠자는 사람들
귀신 사위
노인의 세 아들
이웃 남자
두 형제 이야기
부자와 가난한 사람
욕심 많은 노파
오인데와 하바이
땅이 만들어진 유래
모기와 구더기가 생긴 유래
키로로트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어느 날 데브리켄 코브리칸이 나무를 하러 숲으로 갔다.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데브리켄 코브리칸! 데브리켄 코브리칸!”
데브리켄 코브리칸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갔다. 큰 버섯이 빙빙 돌고 있었다. 데브리켄 코브리칸은 버섯을 걷어찼다. 그러자 발이 버섯에 달라붙었다. 다른 발로 다시 버섯을 걷어찼다. 그러자 또 달라붙었다.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버섯을 때렸다. 그러나 손바닥이 버섯에 달라붙었다. 다른 손으로 때렸으나 마찬가지였다. 이마로 때렸다. 이마도 달라붙었다. 데브리켄 코브리칸은 그렇게 꼼짝없이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다른 쪽에서 거인이 다가와서 말했다.
“내 올가미에 또 먹이가 걸려들었구나.”
-<데브리켄 코브리칸>
신은 교목, 관목, 열매 들을 만들었다. 숲에는 양, 사슴, 큰 사슴 등 다양한 짐승을 만들었다. 시내와 호수에는 다양한 물고기를 만들었다.
어느 날 신이 물고기들을 물로 보내고 있을 때였다. 무언가가 땅에 앉아서 변을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알고 보니 악마였다. 악마는 신이 만든 것을 배터지게 실컷 먹었다. 신이 뒤에서 악마를 불로 찔렀다. 악마는 놀라서 토하고 자기 땅으로 달아났다. 신은 악마가 게워 낸 것을 보았다. 구더기와 온갖 종류의 파충류가 땅을 기어가고 있었다. 악마가 배설할 때 모기가 나왔다. 신이 불로 마귀를 놀라게 했기 때문에 모기 역시 연기를 무서워하게 되었다.
-<모기와 구더기가 생긴 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