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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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작품이자, 이전 작품에서 다루었던 크고 작은 사상적 문제들의 총합이며 그 문제들에 대해 작가가 제시하는 가장 성숙한 답변이다. 소설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작가로부터>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이 두 이야기로 되어 있으며, 우리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알고 있는 작품인 전편에서는 소설이 쓰인 당대, 즉 1880년보다 13년 앞선 시기를 다루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시대적 배경은 1860년대 중반이 된다. 이 시기는 러시아가 사회·경제적 변화와 함께 사상적인 변화를 급격하고도 강력하게 겪고 있던 때였다. 유럽식 자본주의와 함께 서구적인 사고방식이 크게 유행하며, 공리주의, 사회주의, 무신론 등이 젊은 세대에게 매우 인기를 끌었다. 이 젊은 세대가 우상으로 받들던 아이콘적인 인물이 체르니솁스키였고, 그의 사상과 이론을 형상화한 책 ≪무엇을 할 것인가?≫는 서구주의자들에게 사상의 교리서이자 행동의 지침서로서 열렬한 찬사를 받으며 마치 성서처럼 받아들여졌다. 이 책에서 체르니솁스키는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하며, 인간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인간 안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체제와 환경 탓이라고 여겼다. 죄는 있으나 죄인은 없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으로 당대의 많은 변호사들이 범죄자들의 무죄를 주장했고, 이런 유의 변론이 (이 발췌본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드미트리의 재판 과정에서도 등장한다.
도스토옙스키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바로 20대의 자신이 지녔던 이데올로기의 신념을 보았다. 그러나 시베리아에서 성서를 읽으며 유형수들과 함께 보낸 10년의 세월로 그는 이러한 순진한 신념이 인간의 실제 본성과는 전혀 맞지 않으며, 또 인간을 개미 떼나 가축 떼로 몰아가려는 것, 즉 인간성 박탈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분명히 자각했다. 유형에서 돌아온 1860년대 이후로, 도스토옙스키는 논문을 통해, 또 작품을 통해, 체르니솁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마치 성서처럼 떠받들던 당시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신봉하는 이데올로기의 순진한 허구성과 인간성 상실에 대한 우려를 계속해서 알리며 서구주의자들과 싸움을 벌여 나간다. 이 싸움은 유형 이후 쓴 작가의 첫 작품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후의 모든 대작들에서도 반복적으로 시험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는 이 모든 문제가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명백하게 그려지고 시험되며, 이전의 작품들보다 분명한 대답이 주어진다.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표면적인 줄거리로만 본다면, 친아들에 의한 아버지 살해를 둘러싼 주요 인물들이 엮어 내는 사랑과 미움의 드라마다. 작품의 주요 인물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사랑의 삼각관계에 빠져 있으며, 연관된 이들이 모두 부자 또는 형제간이다. 요약한 줄거리만 본다면 가장 큰 사건은 아버지 살해인데, 이런 막장 드라마 같은 플롯 라인을 갖는 소설이 어떻게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세계 명작이 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해답은 플롯 자체가 아니라 인물들 자신과 그 인물들의 성격과 사상이 서로 부딪치고 공명하는 긴밀한 구성에 있다. 작가는 가치관의 변화가 심하고 무신론 등 서구 사상이 횡행하던 19세기의 러시아 현실을 배경으로 가족의 분열을 그리면서, 하나하나의 인물과 그들의 심리 변화, 사상 변화 속에 모순적이고 복잡다단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사색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시대적 문제들을 지성의 대변인인 이반을 통해 제시하며, 그의 분열과 파멸을 통해 인간에 대한 체르니솁스키적인 이해는 옳지 않으며, 그런 유의 답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강변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에 대항해, 알료샤를 통해 근본적이고 영원히 옳은 해답, 즉 작가의 사상이 집약된 종교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200자평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장편. 그가 평생 고민해 온 온갖 사상적 문제와 그 해답이 모두 담겼다. 삼각관계와 근친 살해, 분열되어 가는 한 가족의 막장 드라마를 통해, 모순적이고 복잡다단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사색을 담아낸다. 이성과 논리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이고 영원히 옳은 대답이 여기 있다. 원서의 약 5%를 발췌해 옮겼다.
지은이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10월 30일(신력으로는 11월 11일) 군의관이었던 미하일 안드레예비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모스크바 빈민 병원에서 일했으며, 잔인할 정도로 엄격한 성격의 소지주였다. 종교적이고 온화한 성격의 어머니와는 달리, 잔혹한 아버지의 이미지는 도스토옙스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그의 작품 속 아버지들은 처음부터 부재하거나, 무능하거나, 잔학하여 자신의 자식들을 길거리로 내몰아 몸을 팔게 하거나, 자식들에게 살해당하거나, 아니면 그 자신이 자녀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심지어 성적인 폭군으로 등장하거나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나고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그의 아버지가 의사로 일하던 모스크바 빈민 병원이었는데, 그 병원의 많은 환자들은 모두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으며, 어린 도스토옙스키는 이들과 대화하기를 즐겼다. 가난의 심리학의 대가가 될 씨앗이 여기서부터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작가 스스로도 평생을 가난의 굴레에서 허덕였다. 그는 돈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현실적”이지 못했던 사람이고, 자신이 감당할 능력이 있건 없건 간에 떠넘겨지는 짐을 사양할 줄 몰랐다.
도스토옙스키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1846년)에는 작가의 가난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가난이 인간 심리와 삶에 끼치는 영향들, 그리고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들에 대한 강한 동정심이 잘 나타나 있다. 이런 젊은 날의 도스토옙스키에게 형제애 속에서 모두가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르치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인 페트라솁스키 서클은 목마른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반가운 만남이었다. 하지만 차르 니콜라이 1세의 반동 정치하에서는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뿐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등에 대해 토론하는 것, 금지 서적을 읽는 것들만으로도 총살감이었다.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 도스토옙스키는 사형은 간신히 면했으나 시베리아로 끌려갔고, 4년간의 감옥 생활과 또 4년간의 유형이 끝난 후, 도스토옙스키의 인간관 및 세계관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1840년대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지향했던 도스토옙스키는 1860년대 완전히 극우 보수주의자(슬라브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유형을 마치고 돌아온 작가는 1861년 러시아의 문화적 정치적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그의 형 미하일과 함께 잡지 ≪시대(Время)≫를 창간했고, 1863년 ≪시대≫지가 정치적 이유로 발행정지 조치를 받게 되어 폐간된다. 이듬해 형 미하일과 함께 두 번째 잡지, 더욱더 극우적이고 슬라브주의적인 잡지 ≪세기(Эпоха)≫를 발간하여, 그 첫 호에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발표한다.
1866년, 후에 그의 부인이 된 속기사 안나를 고용하여 ≪노름꾼≫과 ≪죄와 벌≫을 속기하게 하여 발표하고, 1868년 그리스도를 닮은 “긍정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그리고자 한 ≪백치≫를, 1872년 ≪악령≫을, 죽기 한 해 전인 1880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모두 ≪러시아 통보≫에 발표했다.
이렇게 해서 세계문학사 중 가장 위대한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1881년 1월 28일, 그의 소설만큼이나 극적인 사건들이 넘쳐 나는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러시아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댜예프가 말한 것처럼,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지구상에 러시아인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제대로 접한 독자라면 베르댜예프의 이 말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옮긴이
김정아는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서울대학교 박사 과정 중 미국으로 유학 가서, 일리노이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슬라브어문학부 대학원에서 슬라브 문학으로 석 ·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전공으로는 폴란드 문학을 공부했다. 박사 논문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나타난 숫자와 상징>이며, 다수의 소논문을 국내외 언론에 발표했고, 서울대학교 등에서 문학을 강의했다. 번역서로는 ≪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다닐 하름스, 청어람 미디어), ≪부실한 컨테이너≫(미하일 조셴코, 청어람 미디어), ≪되찾은 젊음≫(미하일 조셴코, 청어람 미디어), ≪지하생활자의 수기≫(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카람진 단편집≫(니콜라이 카람진, 지식을만드는지식), ≪무엇을 할 것인가?≫(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가난한 사람들≫(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죽음의 집의 기록≫(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죄와 벌 천줄읽기≫(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백치 천줄읽기≫(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악령 천줄읽기≫(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천줄읽기≫(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도박사 천줄읽기≫(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학대받고 모욕받은 사람들 천줄읽기≫(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미성년 천줄읽기≫(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온순한 여자/우스운 사람의 꿈≫(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원서발췌 죄와 벌≫(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원서발췌 백치≫(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원서발췌 악령≫(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등이 있다. 저서로 ≪패션 MD1 : 바잉편≫(알에이치코리아), ≪패션 MD2 : 브랜드편≫(21세기북스), ≪패션 MD3 : 쇼룸편≫(21세기북스), ≪모칠라 스토리≫(알에치코리아)가 있다. 20세기 소비에트 문학과 소비에트 여성의 문제, 그리고 유토피아 문학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으며,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소비에트 시기 문학 작품의 번역을 준비하고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작가로부터
제1부
제1장. 어느 작은 가족의 내력
제2장. 부적절한 모임
제3장. 음탕한 사람들
제2부
제4장. 감정의 격발
제5장. 프로(Pro)와 콘트라(Contra)
제6장. 러시아의 수도사
제3부
제7장. 알료샤
제8장. 미탸
제9장. 예심
제4부
제10장. 소년들
제11장. 이반 표도로비치 형제
제12장. 잘못된 판결
에필로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그런 문서란 있을 수가 없어!” 열띤 어조로 알료샤가 반복해서 말했다. “왜 있을 수 없냐 하면, 큰형은 살인자가 아니기 때문이야. 아버지를 죽인 건 큰형이 아니야, 큰형이 아니라고!” 이반 표도로비치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럼 넌 누가 살인자라고 생각하니?” 그는 얼른 듣기에 어딘지 냉담하게 물었으며, 이 질문의 음조에는 어떤 오만한 톤마저 울리고 있었다.
“누군지는 형 자신이 더 잘 알잖아.” 알료샤가 조용하면서도 상대의 마음을 꿰뚫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 그 정신 나간 바보에 간질병쟁이를 두고 하는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들? 스메르댜코프 말이야?”
알료샤는 갑자기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형 자신이 누구인지 알잖아.” 힘없이 이런 말이 또 튀어나왔다. 그는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그래, 누구, 누구라는 거야?” 이반은 거의 광포한 어조로 소리쳤다. 갑자기 그는 모든 자제력을 상실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오직 이것뿐이야.” 여전히 거의 속삭이는 말투로 알료샤가 말했다. “아버지를 죽인 건 이반 형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