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러시아 문학사에서 레스코프의 위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그는 민중의 생활에 대한 실질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문학에 반영되는 실생활의 경계를 크게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대중의 언어와 사고방식을 잘 알아 주인공들의 발화 속에 러시아인의 감정과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거기에 민족적 전형성을 부여함으로써 러시아 문학 발전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으며, 당대의 도덕, 관습, 사람들의 말투 묘사를 통해 진정한 문학적 형상을 창조해 문학 세계를 풍부하게 하는 데도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문학에서 사상과 경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당시 비평가들은 다양한 사건과 모험으로 가득 찬 레스코프의 작품들을 우스꽝스러운 엉터리라고 생각했지만, 일찍이 그를 알아본 작가와 비평가들이 있었으니, 체호프는 레스코프와 투르게네프를 자신의 중요한 스승이라고 칭했고, 톨스토이는 레스코프를 ‘우리 작가들 중 러시아인 바로 그 자체’라고 평했다. 막심 고리키는 레스코프의 작품에 나타난 인생의 다양한 이야기, 일상적 수수께끼에 대한 깊은 이해, 러시아어에 대한 뛰어난 지식 및 활용은 종종 동시대와 이전 시대의 위대한 작가들을 능가한다고 극찬했으며 비평가 미르스키는 ‘레스코프는 러시아인들을 누구보다 더 잘, 그리고 깊이 있게 알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언급했다.
<세상 끝에서>에서는 시베리아의 미개한 원주민들을 가르치고 세례를 통해 정교회를 전파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주교가 시베리아의 혹심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진정한 선과 인간성을 잃지 않는 원주민 안내인의 모습을 보고 인간의 본질적인 종교적 심성이 가지는 가치를 깨닫는다. <강도>는 오룔시의 한 상인이 젊었을 적 본의 아니게 강도가 되어 버린 일화를 담았다. 이 작품에서는 푸줏간 주인이 소를 도살하는 장면이 생생하고 끔찍하게 묘사되어 채식주의자였던 작가의 가축 도살과 육식에 대한 관점이 드러난다. <보초병>은 실화에 바탕을 둔 작품으로, 초소를 떠나서는 안 되는 의무를 어기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보초병의 이야기다. 사람을 구한 선행을 행하고도 초소 이탈죄로 태형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천재 노인>은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귀족에게 돈을 빌려주었지만 돌려받지 못해 어려움에 처한 노파가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인물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야기다.
200자평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작품 중 국내 초역인 4편을 소개한다. 중편 <세상 끝에서>, 단편 <강도>, <보초병>, <천재 노인>은 민족과 종교, 정교적 가치, 개인의 가치 및 사회의 가치 등 레스코프 작품의 주요 주제를 다루고 19세기 당시의 종교적, 문화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지은이
니콜라이 세묘노비치 레스코프(Николай Семёнович Лесков)는 1831년 오룔 현에서 태어났다. 1847년 아버지가 근무했던 오룔 형사재판소에서 2등 사무관으로 일을 시작했다. 2년 후 외삼촌이 교수이자 내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키예프로 이주했다. 1853년 당시 유행하던 이단(異端)의 영향을 받고 이 때문에 관직에서 해고되었다. 그 후 이모부 소유의 민간 무역회사에서 일하면서 업무상 러시아 전역을 여행했는데, 이 여행에서 다양한 방언과 지역 주민들의 생활양식을 접하게 되었다. 1860년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집필 초기에는 M. 스테브니츠키, 니콜라이 고로호프, ‘시계 애호가’ 등의 필명으로 글을 썼다. 1863년 첫 작품 <어떤 농촌 아낙네의 전기>와 <사향 소>(1863∼1864)를, 그리고 1864년에는 장편소설 ≪갈 곳이 없다≫를 발표했다. 이후 다양한 계층의 여주인공의 형상을 표현력 있게 묘사한 비극적인 작품 ≪므첸스크 군의 레이디 맥베스≫가 출판되었다. 1870∼1880년 장편소설 ≪성직자들≫(1872), ≪몰락한 귀족 가문≫(1874)을 집필했고, 여기서 민족 및 역사적 문제점을 폭로했지만, ≪몰락한 귀족 가문≫은 완성하지는 못했다. 1881년 무기 장인에 대한 오랜 전설을 다룬 작품 <왼손잡이>를 집필했다. 1890년 가을 단편소설 <올빼미족>을 완성했다. 말년에 12권으로 이루어진 작품 선집 출판을 준비했고, 1893년 알렉세이 수보린에 의해 출판되었다. 그리고 1년 후 천식 발작으로 인해 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했고 볼코프 묘지에 묻혔다.
옮긴이
김민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노어학 전공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고, 러시아 치타국립대에서 철학인간학 전공으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HK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러시아인과 러시아 내 소수민족의 신앙과 의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투르게네프 단편집≫, 니키타 톨스토이의 ≪언어와 민족문화≫, 블라디미르 보고라스의 ≪축치족: 신앙≫, 바츨라프 세로셉스키의 ≪야쿠트인: 구비전승과 신앙≫ 등 전통문화와 신앙 관련 번역서를 출판했다.
이성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러시아 언어학 및 문화, 언어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 ≪러시아어 발음과 구조(공저)≫ 및 <러시아어 차용어 음운론 연구>, <모음 Ё의 위상에 대하여>, <쿠트흐 신화로 본 이텔멘족의 기원과 이동(공저)>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세상 끝에서
강도
보초병
천재 노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에? … 그럼 기적을 보았다는 거요?”
“대주교님, 기적을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요?”
“무슨 말이오?”
“무슨 말이냐고요? 어디를 보아도 모두 기적인데요. 구름이 물을 머금고 있고, 새털 같은 공기가 땅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대주교님도 저도 먼지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움직이고 생각을 합니다. 저에게는 그게 모두 기적입니다. 그리고 죽으면 백골이 진토가 되고 영혼은 우리에게 그것을 심어 준 분에게 돌아갑니다. 기적이지요. 어떻게 영혼이 그분께 돌아갈까요? 누가 영혼에게 비둘기의 날개를 달아 주어 날아 올라가게 할까요?”
−30쪽
그것은 환영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명확히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도 짐승도 아니었습니다. 마치 굴러오듯이 저에게 다가오는 그것은 지상에 닮은 것이 없는 아주 요상하게 생긴 모습이었습니다. 심령술사들이 말하듯이 얼어붙은 대기가 형상화된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제 눈이나 저의 사고가 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거나 혹시 흔히들 말하는 정령일 수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저것이 무엇일까? 혹시 키리아크 신부가 죽은 자들의 왕국에서 나를 맞으러 서둘러 오는 것은 아닐까? … 아니면 우리 둘 모두 이미 그곳에 있는 것일까? … 내가 벌써 죽은 것일까? … 잘됐다! 저 정령은 나의 새로운 삶의 새로운 동료인가 보다…. 여러분에게 그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묘사해 보겠습니다. 저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온 것은 날개가 달린 거대한 형체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은색의 긴 가운을 입었는데, 온몸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머리에는 아주 커다랗고 높은 빛나는 모자를 썼는데, 그것은 마치 수많은 보석을 빽빽하게 장식한 모자이거나 아니면 보석으로 만든 미트라 자체로 보였습니다. … 그것은 훌륭하게 장식된 인도의 우상과 똑같았고, 거기에 더해서 발아래서 은가루를 뿌리는 환상적인 현상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마치 신화 속 헤르메스처럼 구름을 타고 날아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동안 그 놀라운 존재는 점점 더 가까워졌으며 마침내 아주 가까이 다가왔는데, 어느 순간 제게 눈가루를 튀기며 멈추어 서서 마법의 지팡이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신부님.”
저는 저의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놀라운 정령이 바로 그 원주민이라니!
−116~1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