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 투쟁하는 인간
<엘렉트라>의 서막과 등장가는 오레스테스의 도착을 알리는 이야기로 시작하며, 복수의 계획과 엘렉트라의 탄식이 제시된다. 제1삽화에서는 아가멤논의 죽음과 복수에 대한 엘렉트라와 그녀의 여동생 크리소테미스의 대화가 제시되고, 제2삽화에서는 아가멤논 살해에 대한 엘렉트라와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논쟁과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엘렉트라의 절망이 제시된다. 제3삽화는 엘렉트라와 크리소테미스의 대화 장면으로 구성되며, 제4삽화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의 대화 장면으로 구성된다. 종막에서는 구체적인 복수가 진행되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가 살해된다. 소포클레스는 <엘렉트라>에서 아가멤논의 죽음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 그리고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의 복수를 이와 같은 정교한 플롯 구조 속에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엘렉트라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비타협적이고, 반성적인 사유 능력이 약하다. 그러한 성격적 결함 때문에 그녀는 가문에 내린 저주와 맞서야 하는 운명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근본적으로 선한 인간이며, 한순간도 천박하고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아버지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에 대한 증오로 이어지긴 해도 사고와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인물이며, 육친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여성이 고통을 당하는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자아내게 하며, 인간으로서는 불가해한 힘이 존재함을, 그리고 그것이 이성의 영역 밖에서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마다의 운명을 짊어진 관객들의 삶을 위무함과 동시에 그것에 당당히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문학적 모티브로서의 엘렉트라
오늘날 ≪엘렉트라≫를 다시 읽는 것은 오이디푸스가 그렇듯 그것이 제공하는 풍부한 문학적 모티브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오스트리아의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은 소포클레스의 작품을 기반으로 <엘렉트라>(1904)를 집필했는데, 작품에서 엘렉트라는 아가멤논이 자신을 강간했다고 상상하는 정신병자로 재현된다. 미국의 극작가 오닐(Eugene O’Neill)은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1931)에서 엘렉트라에 해당하는 라비니아를 정부(情夫)인 애덤 브랜트와 놀아난 어머니 크리스틴을 증오하는 딸로, 오레스테스에 해당하는 오린을 어머니 크리스틴을 사랑하는 아들로 그려낸다. 프랑스 극작가 지로두(Jean Giraudoux)는 <엘렉트라>(1937)에서 공포와 불안 속에서 삶의 환멸감을 표출하는 현대인을 묘사한다. 독일의 극작가 하웁트만(Gerhard Hauptmann)의 <아트리덴 4부작>(1941∼1949) 중에 하나인 <엘렉트라>의 구성 역시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구성과 유사하다.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의 <파리 떼>(1943)는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의 이야기를 통해 나치(파리 떼) 치하에서 프랑스 지성인이 느꼈던 절망과 좌절을 묘사하면서 인간 실존과 자유의 문제를 논의한다.
200자평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와 정부(情夫)에게 복수함으로써 정의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고집스럽고, 집착적으로 불릴 만한 엘렉트라의 정신성이다. 상대주의가 팽배하여 정의를 가늠하는 것이 어려운 현대인들에겐 그녀의 모습은 집착적이거나, 비정상적으로까지 보인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녀의 정신성이 빛난다. 비천함과 숭고함을 명확히 구분하면서도 운명을 삶의 조건으로서 인정하고, 당당히 마주하게 해주는 그리스 비극의 정신이 잘 담겨 있다.
지은이
소포클레스는 ≪시학≫의 저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어느 작가보다도 높이 평가했던 그리스 극작가다. ≪시학≫의 비극론은 바로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토대로 해 집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괴테는 소포클레스를 다음과 같이 칭찬하고 있다. “소포클레스 이후 그 어떤 사람도 내게 더 호감이 가는 사람은 없다. 그는 순수하고 고귀하고 위대하며 쾌활하다. 현존하는 소포클레스의 작품이 몇 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몇 편의 작품일지라도 이 작품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좋게 느껴진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496년 그리스 아테네 근교에 자리 잡은 콜로노스에서 태어난 소포클레스는 아테네가 문화적으로 가장 성숙했던 시기에 배우인 동시에 극작가로 활동했다. 수려한 용모와 배우로서 손색이 없는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처음에는 배우로서 명성을 날렸다. 기원전 468년, 28세에 첫 작품을 발표했고 이는 경연대회에서 일등상을 받았다. 이후 123편의 작품을 썼고 24회나 일등상을 받았다. 정치가로서도 탁월한 식견을 지녔던 소포클레스는 기원 전 445년, 델로스(Delos) 동맹이 결성되었을 때, 아테네 동맹국의 재정을 통괄하는 재정관에 선출되었다. 또한 기원전 443년에 페리클레스와 더불어 10명의 지휘관 직에 선출되었으며, 기원전 440년에는 사모스(Samos) 섬 원정에 출전할 장군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평생을 아테네에 살면서 그가 보여준 애국심과 진지한 인품은 시민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일생동안123편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현존하는 작품은 다음 7편뿐이다.<아이아스>,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 <필록테테스>, <엘렉트라>, <트라키스의 여인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가 그것이다.
옮긴이
김종환은 미국 네브라스카 주립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영어영문학회의 부회장으로 활동했으며 한국셰익스피어학회의 편집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셰익스피어 연극 사전≫(2005, 공저), ≪셰익스피어와 타자≫(2006), ≪셰익스피어와 현대 비평≫(2009)이 있으며, 세 권 모두 대한민국학술원 우수 도서로 선정되었다. 그 외 저서로 ≪인종 담론과 성담론: 셰익스피어의 경우≫(2013)와 ≪명대사로 읽는 셰익스피어 비극≫(2012)이 있다. 번역서로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포함한 12권과 그리스 비극 작품 11권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서막
제1삽화
제2삽화
제3삽화
제4삽화
종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코러스: 얼마나 수많은 고통 끝에
얼마나 힘들게 자유를 얻게 되었는가!
오늘 이 거사로 그 자유가 완성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