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야기의 시작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흙 속에 인류의 씨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흙을 강물에 반죽해 인간을 창조한 인물이다. 또한 그는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가져다준 장본인이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이 불을 통해 원시 세계에서 문명 세계로 이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제우스는 인간들이 문명에 이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불을 숨겨 버렸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올리브 가지를 꺾어 태양 마차에 가까이 다가가 이글거리는 불길에 나뭇가지를 내밀어 불을 붙였고, 땅에 내려와 이 불씨를 인간들에게 전해 주었다. 제우스는 화가 났지만 불을 도로 빼앗아 올 수는 없었기에, 자신의 명을 거역하고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를 처벌했다. 그는 헤파이스토스와 시종들에게 프로메테우스를 스키타이의 황량한 벌판으로 끌고 가서 깎아지른 절벽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어 놓으라고 명하고, 매일 독수리 한 마리를 보내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게 했다. 헤파이스토스는 아버지 제우스의 명령을 마지못해 집행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자기와는 동족이자 같은 항렬에 속하는 신의 후예요 자신의 증조부인 우라노스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아이스킬로스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가 시작된다.
독재와 자유의 영원한 대립
이 작품의 선행 신화에 드러나고 있듯이,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의 창조자이며, 인간들이 불을 통해 문명의 시대를 열게 했던 장본인이다. 또한 그는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제우스의 명을 거역하고 독재에 항거했던 인물이다. 그리하여 그는 수많은 예술 작품에서 불굴의 의지로 기존의 권력과 독재에 항거하면서 자유를 수호하고 인류의 존엄성을 부각시키는 인물로 형상화되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불굴의 의지와 용기의 표상이다.
반면,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휘두르는 막강한 독재자로 군림하는 제우스에게는 합의에 기반을 둔 정당한 법조차도 무용지물이다. 제우스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는 독재자다. 정의와 불의는 그의 뜻에 따르는가, 아닌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행위의 정당성과 부당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제우스에게는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과 인간을 벌하는 것이 정의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에게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정의다. 이 작품은 권력을 휘두르는 제우스를 영웅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대항해 고통을 자초한 프로메테우스를 영웅으로 제시한다. 즉 고통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존의 권력에 대항하고 약자인 인간의 편을 드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에서 이 둘은 헤라클레스의 출현을 통해 마침내 화해하는 것으로 처리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의 화해는 피상적이며, 마지못해 하는 것이다.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제우스에게 구현된 독재와 프로메테우스로 대변되는 자유는 영원히 대립하는 성질의 것이다.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는 독재와 자유의 영원한 대립을 그리고 있다.
200자평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위해 불을 가져다주었다는 죄로, 스키타이 절벽에 묶인 채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신세가 되었지만 권력을 남용하는 독재자 제우스에게는 절대 굽히지 않았다. 제우스는 인간을 복종시키고 싶어 한다. 반면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싶어 한다. 제우스의 독재와 신적 정의, 프로메테우스의 자유를 향한 의지와 인간에 대한 사랑은 서로 화해하지 못하고 영원히 대립한다.
지은이
아이스킬로스(Aeschylos, BC 525∼BC 456)는 소포클레스(Sophocles), 에우리피데스(Euripides)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데메테르 여신을 받드는 그리스의 엘레우시스에서 출생했으며, 신관직(神官職)을 맡았던 귀족 가문 출신이다.
아이스킬로스는 연극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중요한 극작가다. 기원전 534년에 최초로 비극이 상연된 후,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를 통해 그리스 연극은 전성기를 맞는다. 기원전 3세기까지의 그리스 고대극의 전통은 로마를 거쳐 유럽 전체에 퍼지게 되고 서구 연극의 원류가 되었다.
기원전 484년에 개최된 드라마 경연대회에서 최초로 우승한 후, 이후 28년 동안 열두 번 우승하면서 그리스 연극의 원조로 군림했다. 약 90편의 비극을 집필했으나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일곱 작품뿐이다. 신혼 첫날밤에 신랑인 사촌 오빠들을 죽인 이집트 왕 다나오스의 딸들의 이야기를 다룬 <탄원자들(The Suppliants)>(BC 490),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다룬 <페르시아인(Persian)>(BC 472),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의 갈등과 싸움을 다룬 <테베 공격의 일곱 장군(Seven Against Thebes)>(BC 467),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인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Bound)>(BC 460), 아가멤논의 죽음을 둘러싼 오레스테스와 아가멤논의 아내이며 오레스테스의 어머니인 클리타임네스트라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다룬 <오레스테이아(The Oresteia)>(BC 458) 3부작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작품이다.
옮긴이
김종환은 미국 네브라스카 주립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영어영문학회의 부회장으로 활동했으며 한국셰익스피어학회의 편집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셰익스피어 연극 사전≫(2005, 공저), ≪셰익스피어와 타자≫(2006), ≪셰익스피어와 현대 비평≫(2009)이 있으며, 세 권 모두 대한민국학술원 우수 도서로 선정되었다. 그 외 저서로 ≪인종 담론과 성담론: 셰익스피어의 경우≫(2013)와 ≪명대사로 읽는 셰익스피어 비극≫(2012)이 있다. 번역서로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포함한 12권과 그리스 비극 작품 11권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서막
등장가
제1삽화
제2삽화
제3삽화
종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힘을 깨달았으니
기꺼이 그 운명의 짐을 짊어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