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원(元)대의 30대 희곡 중 하나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공연되며 민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희곡 ≪간전노(看錢奴)≫는 원래 제목이 ≪간전노매원가채주≫로, 진대(晉代)에 간보(干寶)가 엮은 ≪수신기(搜神記)≫의 “장차자(張車子)” 이야기에서 소재를 취했다. 원래 제목을 글자 그대로 풀면 “간전노가 원수 같은 빚쟁이를 사들이다”가 되는데, “간전노”는 구두쇠를 가리키는 또 다른 한자어인 ‘수전노(守錢奴)’와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에 등장하는 유명한 수전노라면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이나 몰리에르의 ≪수전노≫에 등장하는 아르파공, 발자크의 ≪외제니 그랑데≫에 등장하는 그랑데, 고골의 ≪죽은 넋≫에 등장하는 프류시킨 등이 있다. 이 구두쇠들의 인색함은 당사자 인성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공통적으로 사회 생산의 발전 과정과도 관계가 있다. 즉, 이 구두쇠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자본주의의 대두로 황금만능주의가 사회적으로 기승을 부리면서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지고 재물에 대한 욕망이 정당화되며, 그렇게 불거진 인간 욕망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던 시점에서 창조된 결과물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정정옥의 ≪간전노≫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13세기 중국은 중상주의에 입각한 도시와 상공업의 발전으로 본격적인 화폐경제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급작스러운 사회 시스템의 변화는 결과적으로 당시 중국인들이 부의 극대화를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만들었으며, 이러한 무한경쟁에서는 부모 자식 간의 천륜조차 헌신짝 취급을 당한다. 이처럼 과거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사회적 격변과 냉혹한 현실에 대한 정정옥의 위기의식을 ≪간전노≫의 도처에서 엿볼 수 있다.
정정옥은 이 작품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제시하고 과장과 대비·희화화를 통해 돈과 물욕이 인간을 어느 지경까지 타락시키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 극의 주인공인 가인이다. 가난뱅이 막일꾼에 불과했던 가인은 신 앞에서 자신이 부자가 되면 만인을 동정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벼락출세를 한 후 그가 보여 주는 모습들은 그 맹세가 무색해질 정도다. 자신이 쌓아 올린 부를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양아들을 구하느라 기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막상 양아들을 얻자 사례비가 아까워서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길거리 오리구이를 주무르고 돌아와 손가락에 묻혀 온 기름으로 밥 다섯 공기를 먹어 치운다거나 초상화를 의뢰할 때는 뒷모습을 그리게 하라는 둥, 자기가 죽으면 관 값이 아까우니 시체를 두 동강 내서 말구유에 넣으라는 둥, 온갖 추태를 다 부린다. 단돈 네 꿰미에 팔려 갔던 주영조의 아들 장수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물정을 알고 자존심도 있던 장수가 가인의 양아들로 청소년기를 보낸 후에는 돈의 힘만 믿고 안하무인으로 온갖 행패를 다 부리는 철없는 어른으로 변해 버린다. 신앙심 깊고 만인에게 자비로워야 할 절지기의 경우도 속물과 다를 바가 없다. 주영조 내외가 참배하러 오자 쉴 곳을 마련해 주는 선행을 베풀지만 장수가 은 한 닢을 쥐여 주자 애초의 그 굳건하던 신앙심과 자비심은 다 팽개치고 주영조 부부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장수에게 배정해 준다. 심지어는 농담이기는 하지만 고매한 인격을 가졌다는 선비 주영조조차 친아들 장수에게 매를 맞고 고소를 하겠다고 목청을 높이다가도 막상 장수가 은이 든 상자를 들이밀자 자존심까지 다 내던지고 “열쇠를 가져다가 이 자물통을 열고 어디 은괴 구경이나 좀 합시다그려” 하면서 능청을 떤다. 전통사회에서 주류가 되어 권력을 장악해 온, 그러나 결국 돈의 힘에 지배당하고 지조를 파는 부자(권력자)·종교인·지식인들의 행태를 바라보는 작자의 눈은 그래서 더더욱 냉소적이다. 그나마 작자가 도덕이 무너지고 탐욕이 판치는 이 정글 같은 사회에서 가냘프게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진덕보나 술집 지배인처럼, 이렇다 할 사회적 배경도 없고 그렇다고 변변한 재력을 가진 것도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기꺼이 선행을 베푸는 온정 넘치는 소시민들이다.
200자평
원(元)대의 30대 희곡 중 하나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공연되며 민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희곡. 원래 제목이 <간전노매원가채주>로, 진대(晉代)에 간보(干寶)가 엮은 ≪수신기(搜神記)≫의 “장차자(張車子)” 이야기에서 소재를 취했다. 정정옥은 이 작품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제시하고 과장과 대비·희화화를 통해 돈과 물욕이 인간을 어느 지경까지 타락시키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지은이
정정옥은 원대(元代) 극작가로 창덕(彰德), 즉 지금의 허난(河南) 안양(安陽) 사람이다. 금원대(金元代)의 극작가 및 연극계의 동정을 소개하는 종사성(鍾嗣成)의 ≪녹귀부(錄鬼簿)≫에서는 그를 “세상에 작품이 전해지는 사망한 선배 명공재인(前輩已死名公才人, 有所編傳奇行於世者)”으로 분류해 그 이름을 관한경(關漢卿)·고문수(高文秀)에 이어 세 번째로 거명하고, 그가 총 23편의 희곡을 남겼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중 <간전노(看錢奴)>, <포대제(包待制)>, <초소왕(楚昭王)>, <인자기(忍字記)>, <송상황(宋上皇)>, <원가채주(冤家債主)> 등 여섯 편 정도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그의 생몰 연대, 일생, 창작에 대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극적 구성이 치밀한 편인 데다 다양한 소재와 인물을 활용해 당시의 일상과 세태를 폭넓게 묘사, 반영하고 있어서 비교적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때문에 일본의 연극학자 아오키 마사루(靑木正兒)는 그를 ‘돈박자연파(敦樸自然派)’로 분류한 바 있으며 중국의 학자들도 그를 “본색파(本色派)”로 분류하고 있다.
옮긴이
문성재는 1988년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서울대 대학원에서 중국 희곡을 전공했다. 1994년 박사과정 이수 후 국비로 중국 남경대에 유학해 1997년 <심경 극작 연구>로 박사 학위(문학)를 받았으며, 귀국 후에는 근대 중국어, 즉 당·송·원·명·청 시대의 조기백화(早期白話) 및 몽골어로 연구 범위를 확대해 2002년 서울대에서 <원간잡극 30종 동결구조 연구>로 박사 학위(어학)를 받았다. 현재는 동 대학에 출강하면서 번역과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와 역서로는 ≪중국 고전 희곡 10선≫, ≪동아시아 기층문화에 나타난 죽음과 삶≫, ≪고우영 일지매≫(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의 책 100, 중문), ≪도화선≫(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경본 통속소설≫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희곡사를 다룬 <현대 중국의 연극 무대: 사실주의에서 표현주의로>, <중국의 종교극 목련희>, <명대 희곡의 출판과 유통>, <안중근 열사를 제재로 한 중국 연극 “망국한전기”> 등과, 중국어와 알타이어의 관계를 다룬 <원대 잡극 곡백에서의 ‘來’>, <근대 한어의 ‘家/價’ 연구>, <원대 잡극 속의 몽골어>, <원대 잡극에서의 정도부사 ‘殺’용법>, <근대 중국어의 S’O'(也)似 비교구문 연구>, <‘似’류 비교구문의 역사적 변천과 문법적 특징>(중문)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설자
제1절
제2절
제3절
제4절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이런 인간은 돈 없으면 찍소리도 못하다가,
어떻게 몇 푼 생기기라도 하면 금세 허세를 떨면서,
대단한 부자라도 된 양 온갖 행세를 다 한답니다.
저놈 좀 보십시오.
어깨 으쓱거리고,
콧대를 높이는 것이,
반 푼어치도 인자하거나 겸손한 구석이 없지 않습니까?
날마다 길게 늘어선 저잣거리를 푸른 총이말 타고 다니며
여자나 후리려 들고,
말 위에서 흔들흔들 거만이나 떨면서
갖가지 추태 별의별 촌티를 다 떨 테지요!
2.
얘야, 너는 내 병이 울화 때문에 생긴 걸 모르느냐? 내가 그날 오리구이가 먹고 싶어서 저잣거리로 나갔더니 그 가게에서 막 오리를 지글지글 굽고 있더라. 그래서 오리를 산다는 핑계를 대고 한 번에 단단히 움켜쥐었더니만 이 다섯 손가락에 기름이 잔뜩 묻더구나. 그 길로 집에 돌아온 후에 밥을 차려 오게 해설랑 밥 한 공기 먹을 때마다 손가락 하나를 빠는 식으로, 네 공기를 먹는 동안 손가락 네 개를 빨았단다. 그러다가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기에 이 긴 나무 걸상 위에 좀 누워 있었더니만, 아 글쎄 뜻밖에도 잠이 든 새에 개새끼가 내 요 손가락을 핥아 버리는 바람에 울화가 치밀어 올라서 병이 들고 만 게다!
3.
너희는 부질없는 명성만 탐내지 말고,
그저 그 마음의 밭에서 착한 싹이나 키울 생각을 하라.
가난을 감내하고 분수를 지킬 생각은 않으면서,
늘 요행이나 만나 집안 일으킬 생각이나 하는가?
스스로 자식을 죽이고 손자까지 해칠 칼을 웃음 속에 품고 있으니,
어찌 훌륭한 아들 어여쁜 딸과 평생을 눈앞의 꽃처럼 함께할 수 있겠나?
이승의 일들만 보더라도,
이승에서 지은 죄는 언젠가는 저승에서 어김없이 벌을 받고 마노니,
알게 모르게 자기 복을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라네.
이런 자들은 걸핏하면,
남의 은혜 저버리고 남의 의리 배신하고 남의 마음 속일 줄이나 알지,
풍속 해치고 풍경 망치며 교화 그르치는 세태에 언제 신경이나 쓰더냐?
그러니 어떻게 살진 양에 좋은 술,
진귀한 비단에 얇은 깁의 호강인들 오래도록 누릴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