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동안 트로이 전쟁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던 헬레네의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작품에서 헬레네를 신들의 장난 때문에 남편을 배신한 부정한 여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오랜 시간 고통에 시달려야 했던 피해자로 재현한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헬레네는 헤라가 만들어 낸 허상이었으며, 진짜 헬레네는 헤르메스에 의해 이집트에 유폐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세간의 오해와 이집트 왕의 계속된 구혼에 시달려야 했다. 극은 전쟁을 끝내고 그리스로 귀환 중에 이집트에 표류하게 된 메넬라오스와 헬레네가 재회해 이집트를 빠져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에우리피데스는 ‘헛된’ 환영 때문에 일어난 트로이 전쟁의 참화를 통해, 헛된 명분과 그릇된 욕망에 매달려 전쟁을 벌이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또한 헬레네를 통해 트로이 전쟁의 진짜 원인은 신들의 불화와 질투, 이기적인 욕심과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음을 폭로하며 수많은 인간들을 고통과 불행으로 몰고 간 트로이 전쟁의 책임을 신들에게 돌린다. ‘신’의 존재와 신적 ‘정의’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200자평
에우리피데스는 이 작품을 통해 트로이 전쟁의 원인으로 알려진 헬레네를 변호한다. 헬레네는 이 작품에서 남편을 배신하고 트로이로 도망한 부정한 여인이 아닌, 신들의 장난으로 오명을 뒤집어쓴 채 낯선 이집트 땅에 떨어진 가련한 여인으로 재현된다. 한편 10년에 걸친 대규모 전쟁이 신들이 만들어 낸 허상 때문이었음이 밝혀진다.
지은이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4∼BC 406)는 아이스킬로스(Aeschylos), 소포클레스(Sophocles)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기원전 534년에 그리스에서 최초로 비극이 상연된 후,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를 통해 그리스 연극은 전성기를 맞는다. 기원전 3세기까지의 그리스 고대극의 전통은 로마를 거쳐 유럽 전체에 퍼지며 서구 연극의 원류가 되었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과정에서 서구 연극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극작가다. 생애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고, 다만 부유한 지주 계급 출신이라는 점과 좋은 가문에서 상당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점 정도만 전해진다. 기원전 455년에 데뷔한 이후 92편에 이르는 작품을 집필했지만,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18편뿐이다. 기원전 408년경 아테네를 떠나 마케도니아에 머물렀고 2년 뒤에 사망했는데,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와 <바카이>는 이때 집필된 작품이다.
옮긴이
김종환은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네브래스카 대학교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86년부터 계명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영어영문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했고, 현재 한국영미어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5년에 재남우수논문상(한국영어영문학회)을 받았고, 1998년에는 제1회 셰익스피어학회 우수논문상을, 2006년에는 원암학술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셰익스피어와 타자≫, ≪셰익스피어와 현대 비평≫, ≪셰익스피어 연극 사전(공저)≫이 있으며, 세 권 모두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그 외 저서로 ≪셰익스피어 작품 각색과 다시쓰기의 정치성≫, ≪인종 담론과 성 담론≫, ≪명대사로 읽는 셰익스피어 비극≫, ≪명대사로 읽는 셰익스피어 희극≫, ≪음악과 영화가 만난 길에서≫, ≪상징과 모티프로 읽는 영화≫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주요 작품 20편을 번역했으며, 소포클레스의 작품 전체와 아이스킬로스의 현존 작품 전체를 번역했다. 최근 ≪길가메시 서사시≫를 번역했고, 현재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서막
제1삽화
제2삽화
제3삽화
종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헬레네:
제 슬픈 사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우스에게서 태어난 처녀 여신 아테나,
그리고 헤라와 아프로디테, 이 세 여신들이
누가 가장 아름다운가를 두고 싸우다가,
이에 대한 판정을 받기 위해 어느 날,
이다 산골짜기에 사는 파리스를 찾아갔어요.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를
−불행을 안겨도 아름답다고 부를 수 있다면−
신부로 삼게 해 아내로 만들어 주겠다고
파리스에게 약속하고 이 싸움에서 이겼어요.
파리스는 산에서 양을 치는 일을 중단하고
스파르타에서 저를 납치해 신부로 삼았어요.
그런데 다른 여신들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해 몹시 화가 난 헤라는
앙심을 품고, 파리스가 저와 결혼하는 걸
무산시키려고, 이 트로이의 왕자에게
공기를 휘젓고 마법을 부려, 실체가 아니라
저 헬레네를 닮은 허상을 주었어요.
그 모습이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아서
파리스는 저를 가졌다고 믿었답니다.
실제로는 가지지 못했으면서 말이죠.
그런데 제우스신께서 이 불행에
또 다른 불행을 보태 사태를 악화시켰어요.
그분께서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의
전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수많은 인간 때문에
과중한 짐을 지게 된 대지의 짐을 덜어 주고,
그리스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인
아킬레우스의 이름과 명성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