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무거운 책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안녕하세요. 컴북스에서 보내드리는 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이번 호 인티를 준비하면서 고전이 정말 무거운 책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고전에는 책의 출간으로 새롭게 탄생한 수많은 철학과 사상,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사유와 작품들이 오랜 시간 동안 두텁게 쌓이고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전은 단순히 책 한 권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사상, 지식의 네트워크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무거울 수밖에 없지요! 아주 무거운 책 4권이 지만지에서 신간으로 출간되어 소개합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갯짓을 시작한다.
바로 이 구절이 담긴 책이 게오르크 헤겔의 《법철학》이고 올해가 출간 200주년입니다.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칸트의 《실천이성비판》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정치철학과 도덕철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죠. 헤겔은 독일 관념론을 완성한 철학자이며, ‘인륜적 삶’을 통해 ‘국가’라는 공동체를 구상한 실천철학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헤겔의 실천적 문제의식과 철학의 알맹이를 가장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중요한 저술입니다.
지만지판은 한국헤겔학회 회장인 서정혁 교수가 독일어판과 영어판, 국내외에서 발표된 각종 연구를 참고해 번역하고 주석을 단 완역본입니다. 역자는 이 책의 ‘해설’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철학의 무력함을 뜻한다는 해석은 과도하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 ‘시대의 아들’이며 어떤 철학도 그 시대를 초월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철학은 자신이 속한 시대를 개념으로 파악함으로써 다음에 올 시대를 예비하고 마련한다. 이 점에서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철학은 결코 무력하지 않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직접 확인해보세요.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처럼 살고 싶다
11세기 페르시아 사람 오마르 하이얌이 쓴 시(루바이)들을, 19세기 영국 사람 에드워드 피츠제럴드가 번안한 책이 《루바이야트》입니다. 어찌나 번역을 잘했던지, 번역서임에도 영문학사에 남을 수작으로 꼽혔고, T. S. 엘리엇,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 수많은 문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하이얌과 피츠제럴드는 영혼의 쌍둥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삶은 덧없고 오늘이 즐거우면 어제와 내일에 안달할 것 없다’는 주제인데, 밥 딜런도 가사로 갖다 썼을 정도죠. 저자는 부잣집에 태어나 평생 생계 걱정 없이, 취미로 고전을 읽고 번역하고, 정원을 가꾸고 살았습니다. 대학 동창인 당대 유명 지성들과 편지로 교류하면서요. 이 책도 취미로 페르시아어를 배우다가 번역했어요. 좀 부러운 라이프스타일이죠.
경제학자들의 경제학자, 레옹 발라
레옹 발라는 슘페터가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라고 극찬한 사람이죠. 희소성 가치론을 수학적 방식으로 정립하고 이를 기초로 교환 이론, 생산 이론, 신용 이론, 화폐 이론을 전개한 경제학자입니다.
《사회경제학 연구》는 레옹 발라가 빌프레도 파레토에게 스위스 로잔대학의 교수직을 물려준 후 그간 발표한 논문을 엮어 출간한 책입니다. 《응용 정치경제학 연구》는 레옹 발라의 마지막 저술로 화폐와 독점, 은행 등 경제학의 ‘응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레옹 발라와 빌프레도 파레토를 중심으로 한 경제학파가 바로 ‘로잔학파’입니다. 로잔학파는 조지프 슘페터와 존 힉스 등을 통해 20세기 주류 경제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전을 읽는 이유는 단순히 지식이나 방법론을 얻기 위함이 아닐 것입니다. 고전의 출간 전과 출간 후를 살피면, 어떤 지식인과 사상이 영향을 주고받았고, 어떻게 학문이 정립되고 확산되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자 이승무 교수는 이 책으로 경제학이라는 학문 분야에서 지식인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고,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경제 이론이 철학과 다른 학문, 사회 사상, 자연과학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책에 도전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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