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계효용 이론 창시자의 경제학 연구
레옹 발라의 아버지 오귀스트 발라는 철학적인 사색을 통해 ‘희소성’을 가치의 원천으로 삼는 가치 이론을 전개한 경제 사상가였다. 레옹 발라는 희소성을 기초로 한 아버지의 경제 사상을 바탕으로 과학적인 경제학 이론 체계를 정립하려는 포부를 품었다. 1871년부터 로잔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면서 희소성 가치론을 수학적인 방식으로 정립하고, 이를 기초로 교환 이론, 생산 이론, 신용 이론, 화폐 이론을 전개했다. 그 업적에 힘입어 경제학에서 영국의 윌리엄 제번스, 오스트리아의 카를 멩거와 함께 1870년대에 이론적인 패러다임을 바꾼 한계혁명의 경제학자로 자리매김했다. ≪사회경제학 연구≫는 파레토에게 로잔 대학 교수직을 넘겨주고 나서 그간 발표한 논문들을 엮어 낸 책이다.
국내 최초로 소개하는 ≪사회경제학 연구≫
≪사회경제학 연구≫는 4부로 이루어져 있다. I부 <사회적 이상의 탐구>에서는 유심론과 유물론의 대립을 둘러싼 철학, 정의의 원리와 이익의 원리를 둘러싼 윤리학의 고찰, 인간의 개념, 사회의 개념, 국가의 개념 등 사회과학의 기본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시도했다. 발라는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로 보았으며, 사회 자체가 루소와 같이 개인들의 사회 계약으로 구성된다고 보는 관점에 반대하면서, 고유한 자연적인 존재로서 인간과 함께 처음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았다.
II부 <소유권>에서는 정의(定義), 보조 정리, 정리의 방식으로 수학에서 사용되는 형식을 통해 소유권 이론을 전개하고, 구체적인 사례로서 지적 소유권을 분석했다. 시장을 폐지한 상태에서 재화를 분배하는 집단주의를 비판하며 마르크스주의 학설을 비판했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체제 비판이 암묵적으로 함축하는 대안 체제를 시장이 없는 집단주의로 상정하고 이 가상 체제의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III부 <사회적 이상의 실현>에서는 국가가 토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고전파 경제학자 제임스 밀의 이론을 소개하는 데서 출발해 토지 국유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 국가의 유상 매입을 통해서 가능한지를 계산을 통해 고찰했다. 발라는 국가의 토지 매수 계획이 대의민주주의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이론적, 산술적 차원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IV부 <조세>에서는 정의의 원리에 따르는 사회경제학의 입장에서 이상적인 조세가 자본 이자에 대한 조세와 토지 임대료에 대한 조세임을 논증했다. 그리고 경제학의 영역에서는 다소 생소한 조세 실무에 해당하는 지적부 제도를 서유럽 여러 나라의 제도를 비교하며 다루었다.
로잔학파의 영향
발라는 수리적인 방법론으로 경제 이론을 전개하고 이를 토대로 전반적인 사회경제 제도와 정책에 대해 균형 개념을 내포하는 방법론으로 논리를 전개했다. 그리고 발라와 그의 후계자인 빌프레도 파레토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경제학의 학파가 로잔학파다. 로잔학파의 영향력은 슘페터, 힉스 등을 통해 20세기 주류 경제학의 일부를 이루는 데까지 나갔다. 또한 오스카르 랑게 같은 사회주의자는 발라의 일반 균형 개념을 토대로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이론 모형을 만드는 데까지 나가서 신고전파 사회주의 사상을 이루었으며, 레온티예프는 일반 균형의 연립방정식 체계를 통계 자료와 접목해 산업 연관표의 투입-산출 모형을 만들었다. 오늘날 경제 정책의 효과를 분석하는 데는 계산적 일반 균형이라는 시뮬레이션 방법이 개발되어 활용되고 있어서, 발라의 순수경제학 체계는 상당히 중요한 방법론을 창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왜 한국이 레옹 발라를 읽어야 하는가?
한국의 경제 관료와 금융계 종사자들이 실무의 기초로 삼는 경제학은 18, 19세기에 영국에서 생겨나 20세기에 미국에서 발달한 신고전 경제학과 케인스 경제학의 종합판이다. 미국에서 직수입된 교재로, 혹은 그 번역본으로 경제학에 입문하면서 그 이면의 어떤 지적인 배경을 깊이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학을 가르치는 이들도 미국에서 개발되고 편집된 교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못 한 경우가 많아서 식민지적 풍토가 심한 학문 분야 중 하나다.
레옹 발라는 한국 경제학계에서 이른바 주류 경제학으로 추앙하는 신고전파 미시경제학의 이론 틀을 제시한 프랑스 경제학자로서 ‘일반 균형 이론’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경제 이론이 19세기 초반 프랑스의 사상적, 학문적 배경에서 어떻게 나오게 되었으며 발라가 그런 이론을 가지고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과 철학자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고, 이를 통해 사회과학에서 어떤 사상 체계를 만들었는지를 ≪사회경제학 연구≫에서 분명하게 밝혔다. 한국의 경제학계에 필요한 것은 로잔학파를 창시했다고 하는 레옹 발라의 경제학 연구 방법을 습득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경제학이라는 학문 분야에서 지식인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고,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경제 이론이 철학과 다른 학문, 사회 사상, 자연과학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공적으로 진술되는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레옹 발라와 ≪사회경제학 연구≫가 기여할 것이다.
200자평
레옹 발라는 한계효용 이론의 창시자이자 로잔학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국에 알려진 것은 그게 거의 전부다. 그가 어떤 생각을 했고 무엇을 주장했는지, 그의 이론이 경제학사에서 왜 중요한지 알 기회가 없었다. 발라의 ≪사회경제학 연구≫, 그리고 ≪응용 정치경제학 연구≫는 레옹 발라의 이론을 최초로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지은이
레옹 발라(Léon Walras, 1834∼1910)
레옹 발라는 1834년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의 에브뢰에서 교육행정관이며 경제학자인 오귀스트 발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학과 미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지만 경제학자인 아버지의 충고로 경제학도의 길을 가게 되었다. 레옹 발라는 일반균형이론의 창시자로서 경제학에 수학적 방법을 도입한 효시로 알려졌고, 그 자신이 이를 중요한 방법론으로 생각했지만 수학에 탁월한 소질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이공계 대입 자격시험에는 합격했지만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두 번이나 낙방을 하고, 에콜 데 민에도 청강생 자격으로 들어갔으나 정식 학생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성적에 미달했다. 발라의 강점은 철학적인 전제에서 출발해 연역적인 방법으로 엄밀한 과학적인 절차에 따라 이론을 수립하려는 정신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860년에 아나키스트인 프루동의 경제학설을 비판한 ≪정치경제학과 정의−프루동 씨의 경제학설 비판≫을 첫 경제학 저서로 내놓은 후에 스위스 보(Vaud) 캉통의 조세 문제를 주제로 한 논문 공모전에 응모해 토지의 국유화와 근로소득세의 폐지를 골자로 한 조세 개혁의 이론을 전개했다. 1870년에 보 캉통의 사회주의적인 개혁에 관심을 가진 공직자들로부터 로잔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초빙을 받았다. 1870년대에 ≪순수 정치경제학 원론≫을 출판했으며, 이를 통해 영국의 제번스, 오스트리아의 카를 멩거와 함께 경제학사에서 한계혁명의 주창자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1883년에는 전문적인 독자들을 위해 ≪사회적 부의 수학적 이론≫을 출판했다. 1894년에는 빌프레도 파레토에게 교수직을 물려주고 은퇴했고, ≪사회경제학 연구≫(1895)와 ≪응용 정치경제학 연구≫(1898)를 논문집으로 발간했다. 말년에는 평화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자신의 토지 개혁 방안과 자유 무역이 국가 간의 전쟁 위험을 없애 준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그의 일반균형 이론은 20세기의 신고전학파 미시경제학의 틀을 만든 파레토, 힉스, 드브뢰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발라는 은퇴 후 로잔 인근의 몽트뢰(Montreux)에 거주하며 연구를 계속했고 그의 무덤은 이곳의 클라랑 묘역에 있다.
≪사회경제학 연구≫는 2010년에야 영문으로 번역되었고, ≪응용 정치경제학 연구≫는 2005년도에 처음 번역되었을 정도로 그의 전체 경제학 사상의 모습은 사후 100년 동안 부각이 되지 않았다. 발라의 사회경제 사상 전모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은 리옹대학에 발라가 맡긴 문서들의 아카이브가 발견되면서였다. 이를 토대로 리옹 II 대학의 오귀스트와 레옹 발라 센터에서 14권으로 된 이들 부자의 전집(Auguste et Léon Walras. Œuvres économiques complètes)을 발간했고, 레옹 발라의 폭넓은 사회경제 사상은 경제학만이 아니라 사회과학 분야의 많은 사상사 연구자들의 주제가 되었다. 국제 발라 학회(International Walras Association)가 1997년에 프랑스 리옹에서 결성되었고, 스위스의 로잔대학 사회 및 정치학부에는 발라·파레토 학제 간 연구 센터가 1990년 설립되어 이들의 사상을 계승하는 학술 활동을 하고 있다.
옮긴이
이승무
이승무는 서울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석사학위 논문 주제는 “레옹 발라의 사회경제사상”이었다. 이후 19세기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서유럽 경제사상사, 경제학에서 확률적 방법론의 발달, 사회보험 등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LG환경연구원 등에서 환경 분야 정책 연구를 했으며, 폐기물과 자원 순환 정책 연구, 그리고 순환형 경제, 사회로의 전환에 관한 연구를 위해 순환경제연구소를 만들어 활동해 오고 있으며, 사회자본연구원 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순환경제의 미시경제적 조건으로서의 기업과 노동 형태, 지역 단위의 물질 순환적 경제 모델, 이를 위한 사회적 제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조건과 평화적 통일의 경제 모델을 찾아내기를 희망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내가 믿는 세상≫(에른스트 슈마허, 문예출판사, 2003), ≪그리스도교의 기원≫(카를 카우츠키, 동연, 2011), ≪일본의 순환형사회 만들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구마모토 가즈키, 순환경제연구소, 2012), ≪농촌 문제≫(카를 카우츠키, 지식을만드는지식, 2015),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프리드리히 리스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 ≪새로운 사회주의의 선구자들≫(카를 카우츠키, 동연, 2018), ≪경제적 모순들의 체계 혹은 곤궁의 철학≫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 ≪철학의 곤궁≫(카를 마르크스,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 등이 있으며, ≪순환경제학 첫걸음≫(사회자본연구원, 2015)과 ≪일터민주주의 100≫(밥북, 2017)을 썼다.
차례
I. 사회적 이상의 탐구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에드몽 셰러 씨에게 보내는 서한들
사회의 일반 이론, 파리에서 한 공중 강의(1867∼1868)
정치경제학과 사회과학의 현 상태
제1과 경제·사회적 문제들에서 이익 원리와 정의 원리의 경쟁
제2과 철학적 학설들의 개입. 정치경제학과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현재의 유물론과 유심론의 투쟁
제3과 유물론 비판. 유심론 비판. 사회 도덕의 새로운 관점
인간과 사회에 관해
제4과 물리 경제적이고 심리 도덕적인 이중 관념에서 사람과 인간 운명에 관해
제5과 이(利)와 의(義)의 조화
제6과 개인과 국가에 관해. 사회과학 구성의 일반 공식
주
조화와 종합의 방법
I. 종합 방법의 원리
II.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종합
III. 공리주의와 도덕주의의 종합
IV. 공산주의와 개인주의의 종합
II. 소유권
소유권 이론
사회 문제
지적 소유권에 관해
I
II
III
III. 사회적 이상의 실현
토지 가격과 국가의 토지 매수의 수학적 이론
I. 제임스 밀과 고센의 학설
II. 토지 가격에 관해. 임대료가 일시적으로 변동하거나 지속적으로 변동할 경우 정상 가격 확정의 식
III. 토지 가격에 관해. 임대료 변동 기간 동안의 정상 가격 변동의 식
IV. 국가의 토지 매수에 관해. 임대료를 통한 매입 가격 상환의 식
V. 국가의 토지 매수에 관해. 감가 기간 동안 채무 금액의 변동
VI. 정상 가격 지불의 경우 상환의 불가능성
VII. 고센 이론 비판. 임대료 증가율의 상승에 따른 상환의 가능성
알려지지 않은 한 경제학자 헤르만 하인리히 고센
IV. 조세
소득에 대한 조세에 관해. 그리고 자본에 대한 조세에 관해
지적부와 토지세
I. 지적부의 현 조직
II. 토지 등기부와 세무 지적부
III. 프랑스, 벨기에, 독일의 지적부
IV. 토지세의 본성
V. 토지세의 세원에 관해, 국가의 토지 공동 소유권
VI. 토지세의 세원에 관해. 토지와 자본의 구분
세무 문제
I. 복합 조세, 단일하면서 비례적이거나 누진적인 조세
II. 정상적이고 확정적인 사실로서 조세 비판
III. 비정상적이고 일시적인 사실로서 조세에 관해. 토지 국유화에 관해
IV. 프랑스와 사회 문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사회주의자는 단박에 과학을 시작하고 끝낼 줄을 몰랐던 이 모든 저자를 알지도 못하면서 생생하고 조급한 격정에 사로잡혀 배척하고 비방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독서는 없거나 피상적이고 성급하며 그의 학식은 잘못되거나 악의적입니다. 그가 시인한 야망은 혼자서 그 과학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회주의자들 생시몽, 푸리에, 프루동을 보십시오. 그들 각각은 학자들과 다른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온통 고립된 관념 질서 속에서 움직입니다. 그들은 종파 구성원들과 제자들을 두지만 스승을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상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제한되고 일시적인 후세만을 남깁니다.
-120쪽
나는 오로지 자기 노동으로 사는 사람, 노동자인 동시에 소유권자나 자본가가 되기 위해 저축할 수 있을 임금의 유일한 부분을 조세로 빼앗기는 사람을 프롤레타리아라고 부릅니다. 나는 이미 임금이 실제로 개인적 소유권이 엄밀하게 확정되는 유일한 종류의 사회적 부라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는 뒤에 가서 임금이 사회적 부의 모든 종류 중에 조세가 주로 부과되는 종류라는 것을 보여 줄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공제는 정당합니까? 나는 노예제와 농노제가 정당하다면 이것도 정당하다고 말합니다. 노예제와 농노제가 부당하다면 이것도 부당하다고 말합니다.
-2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