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제야 정확하게 읽을 만한 번역본이 나왔다.
≪설원≫은 이미 몇몇 판본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책은 시중의 복본과는 다르다. 업적을 내기 위해 막 번역한 것도 아니고 한문에만 충실한 번역도 아니다. 이 책은 정확성, 문학성, 중국과의 관계성, 가독성 등을 모두 최상의 수준으로 올려놓은 번역이다.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어떤 부분을 인용하더라도 문제가 없다. 일반 독자라면 유려하고 쉬운 문장에 독서가 즐거울 것이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항간에 있는 번역본들의 시정할 부분들을 발견하고 바로잡은 책을 만들었다.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다수의 중국 고전을 출간한 김영식 교수가 번역한 ≪설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문의 문장 구조에 맞게 정확하고도 자연스럽게 번역했다. 둘째, 직역으로 번역해 한 글자 한 글자의 뜻을 모두 살려 번역했다. 셋째, 학술적으로 완벽하게 인용할 수 있도록 번역했다. 넷째, 총 1572개에 달하는 각주를 상세하게 달아 문맥과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다섯째, 총 485명에 달하는 주요 인물의 색인을 추가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인명사전이 될 뿐만 아니라 각주를 보충하는 한편으로 원하는 인물의 고사를 골라 입맛에 맞게 읽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잃어버린 책을 한데 모으다
진시황이 국가 통치에 방해가 된다거나 민생에 이롭지 않다고 생각된 전적들을 모두 수거해 불태우자, 화를 당하지 않은 전적들은 자연히 민간으로 흘러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이렇게 민간에 소장되게 된 것들과 본래 민간에 보존되었던 전적들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분실되거나 훼손되어 갔다.
진나라를 이어받은 한나라가 점차 안정되자 국가의 전례 제도나 문물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통치자들은 옛 전적들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에 전적들을 다시 수집해 보관하고 정리하는 국책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대한 역할과 공헌을 한 사람이 유향(劉向)이다. ≪설원(說苑)≫은 유향이 황실과 민간에 소장된 관련 자료들을 집록한 후 선택, 분류, 정리하여 편찬한 역사고사 모음집이다.
중국 황제와 보좌관들을 위해 쓴 정치의 원리다.
≪설원≫은 유가의 정치사상과 윤리도덕의 관념을 깊이 반영했다. 이것은 유향이 유가사상가이자 학자로서 자신의 책무를 수행하려 했던 결과다. 또한 왕조가 쇠퇴하는 추세뿐 아니라 지도층의 부정부패와 사치를 목격하고서, 제국을 바로잡아 보려는 노력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순임금, 우임금으로부터 진한(秦漢)에 이르기까지 여러 인물의 언행이나 사건 또는 일화를 모아 정치의 흥망을 엿볼 수 있는 역사의 거울을 제공했다. 이를 통해 군주와 신하들을 권면하고 조정을 정돈하며, 당시의 폐단을 바로잡으려 했던 것이다. 이에 유향은 각 고사를 통해서 제왕, 장상(將相), 사대부 들에게 어떻게 해야 바른 군주, 바른 신하, 바른 백성이 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제국을 일으키고 백성을 다스리며 외교를 처리할 것인가를 제시했다.
이렇게 유향이 모은 이야기들에는 백성이 치국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든가, 세금을 경감해야 한다든가, 욕구를 억제하고 사치를 경계해야 한다든가, 통치자는 현신과 간신을 구별해야 한다든가, 현사를 높이고 예우해야 한다는 주장 등, 통치자라면 누구나 따라야 할 통치의 모든 덕목이 담겨 있다. 기본적인 주제여서 더 볼 것도 없을 듯하지만, 백성이 치국의 근본이 되고, 세금이 가볍고, 사치하지 않고, 현사가 높이 존중받는 시대가 역사상 얼마나 있었던가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자. 유향이 이 책에서 제시하는 통치의 덕목들은 실천하기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잃어버린 이야기들이 부활하다
학술상으로 볼 때, ≪설원≫은 문헌적인 면이나 문학적인 면에서도 상당한 가치가 있는 전적이다. 문헌적인 면에서는, 사료를 잘 보존하고 있어서 선진시대의 많은 전적을 정리할 때에 다른 전적들과 비교해 교감을 하거나 사실을 바로잡고 증명해 내는 데에 많은 단서를 제공한다. 특히 이미 도가의 ≪이윤(伊尹)≫이나 소설가의 ≪윤자설(尹子說)≫ 등, 일실된 선진시대의 문헌이나 제자(諸子)의 일설을 보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문학적인 면에서도, ≪설원≫에 실린 이야기들은 허구적으로 창작한 것은 아니더라도 권고와 경계를 편찬의 주된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유향은 사실 추구보다는 사상성에 관심을 두어서 원문을 일부 개편했다. 그래서 때때로 논평하는 말을 삽입하기도 하고 수사를 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적지 않은 우언적 수법을 채택해 생동감 있고 재미있게 표현하기도 했으며, 비유적인 수법을 채택하기도 했고, 어떤 곳에서는 위진시대의 소설 맛을 드러내기도 해서 독서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200자평
정확하게 읽는 고대 중국의 지혜
옛 지식인들이 거닐던 이야기의 정원
2000년 전 나라를 이끈 군주들, 그리고 그 군주를 보좌한 신하들의 이야기 모음집이다. 황실과 민간에 소장된 관련 자료들을 모두 모은 후 선택, 분류, 정리해 편찬해 사료 가치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흥미롭고 교훈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이야기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별록(別錄)≫, ≪신서(新序)≫ 등을 편찬한 한나라의 학자 유향이 유가의 정치사상과 윤리도덕을 알리기 위해 엮은 이 책은 통치의 흥망성쇠와 통치자의 성패의 비결을 전해 준다. 오늘날의 리더든 내일의 리더든 이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기존 판본들에 비해 정확하고 유려한 번역으로 내놓았다.
≪설원≫ 2권에는 원전의 9권부터 14권까지를 수록했다.
지은이
유향(劉向, BC 77∼BC 6)
한(漢) 고조 유방(劉邦)의 아우인 초(楚) 원왕(元王) 유교(劉交)의 4대손이고 유흠(劉歆)의 부친으로, 선제(宣帝) 때 산기간대부(散騎諫大夫)에 발탁되었다. 본명이 갱생(更生), 자(字)는 자정(子政)으로 패(沛) 사람이다. 서한(西漢) 말엽의 저명한 경학가(經學家)이자 도서목록분류학자이며 문학가다. 그는 원제(元帝) 때 종정(宗正)이 되었는데, 음양오행술로 정치의 득실을 따지고 환관과 외척들을 탄핵함으로써 두 번이나 하옥되었다. 성제(成帝) 때에는 이름을 향(向)으로 바꾸고 광록대부(光祿大夫)를 지냈으며 관직을 중루교위(中壘校尉)로 마쳤기 때문에, 후세에는 그를 ‘유광록(劉光祿)’ 또는 ‘유중루(劉中壘)’라고 칭했다. 유향은 전적들을 교감하여 ≪별록(別錄)≫ 20권을 찬(撰)했으며, 그 밖의 저작물로는 ≪상서홍범오행전론(尙書洪範五行傳論)≫·≪신서(新序)≫·≪설원(說苑)≫·≪열녀전(列女傳)≫ 등이 남아 있고, 이 외에도 분실된 ≪오경통의(五經通義)≫와, 대부분이 분실된 ≪구탄(九歎)≫ 등 사부(辭賦) 33편이 있다. 현재 보이는 ≪유중루집(劉中壘集)≫은 명대(明代) 사람이 집록한 것이며, 그가 편찬했다고 하는 문언소설인 ≪열선전(列仙傳)≫은 한위(漢魏) 시대의 방사(方士)가 유향의 이름을 가탁한 것이다.
옮긴이
김영식(金映植)은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의 선임 연구원을 지냈으며, 서울대·한양대·중앙대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 강릉원주대학교 학술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논문으로 <역사소설의 시원: 오월춘추의 소설화 기도에 관하여> 등이 있고, 역서로는 ≪문선≫(전 10권, 공역, 소명출판), ≪상군서(商君書)≫(홍익출판사), ≪박물지(博物志)≫, ≪열자(列子)≫, ≪귀곡자(鬼谷子)≫, ≪오월춘추(吳越春秋)≫, ≪월절서(越絶書)≫, ≪열녀전(列女傳)≫(이상 지식을만드는지식), ≪사단칠정논변≫(공역, 한국학술정보), ≪역주사단칠정논쟁≫(전 2권, 공역, 학고방) 등이 있다.
이남종(李南鍾)은 서울교육대학, 한국방송통신대학 중국어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문과 겸임교수, 대만국립중산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전주대학교 한문교육과에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맹호연시 연구(孟浩然詩 硏究)≫와 ≪두보 진주동곡시기시 역해≫(공저, 이상 서울대학교출판부) 등이 있으며, 역서로 ≪유원총보 역주(類苑叢寶 譯註)≫(공역,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등이 있다.
최일의(崔日義)는 한양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중문학과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립 타이완대학(國立臺灣大學)과 중국 랴오닝대학(中國遼寧大學)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지금은 강릉원주대학교 중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대표 저서로 ≪중국시의 세계≫, ≪중국 시론의 해석과 전망≫(이상 신아사), ≪중국어 이야기≫(공저), ≪한시로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 ≪최교수의 한시 이야기≫(이상 차이나하우스) 등이 있고, 역서로 ≪바다의 달을 줍다≫, ≪귓가에 금작화 나풀거리고≫(공역, 이상 사람들), ≪원매의 강남산수 유람시≫(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등이 있다.
차례
9권 바르게 간하다(正諫)
10권 공경하고 신중하다(敬愼)
11권 유세를 잘하다(善說)
12권 명을 받들어 사신 가다(奉使)
13권 임기응변하는 모략에 능하다(權謀)
14권 지극히 공정하다(至公)
책속으로
경공(景公)이 안자를 초나라에 사신 보냈는데, 초나라 왕이 귤을 내놓게 하고 깎는 칼을 놓으니, 안자가 쪼개지 않고 껍질과 함께 먹었다.
초나라 왕이 말했다.
“귤은 껍질을 제거하고 쪼개서 먹어야 하오.”
안자가 대답했다.
“신이 듣기로, 군주 앞에서 하사된 것은 오이나 복숭아도 껍질을 깎지 않고 귤과 유자도 쪼개지 않는다 합니다. 지금 만승(萬乘)의 군주께서 명을 내리심이 없어, 신은 감히 쪼개지 못한 것이옵니다. 그렇지만 신도 먹는 방법을 모른 것은 아니옵니다.”
-958~959쪽
관중이 병이 들자 환공이 그에게 가서 물었다.
“중보(仲父)께서 만약 과인을 버리고 세상을 뜨신다면, 수조(豎刁)는 집정(執政)을 하게 할 만합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안 됩니다! 수조는 자신을 해쳐 환관이 돼 군왕 곁에 들어가기를 구했으니, 자기 몸에 차마 못할 짓을 했다면 장차 군왕께 무엇을 차마 못하겠습니까?”
환공이 말했다.
“그러면 역아(易牙)는 되겠소이까?”
관중이 대답했다.
“역아는 자기 아들의 몸을 갈라 그것을 군왕께 먹였으니, 자기 아들에게 차마 못할 짓을 했다면 장차 군왕께 무엇을 차마 못하겠습니까? 군왕께서 그들을 쓰신다면 반드시 제후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환공이 죽자 수조와 역아가 난을 일으켜, 환공은 죽은 지 60일이 지나 시신에서 나온 벌레가 문밖에 나와도 시신을 거둬 매장조차 하지 못했다.
-1007~10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