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뉴욕에서 전염병처럼 유행한 캔디다마니아
1904년 연극 <캔디다>에 대한 호응은 뉴욕에서 전염병처럼 급속도로 확산했다.
전차나 기차, 백화점, 음식점, 또는 사람들이 간밤에 무엇을 했는지 묻곤 하는 모든 일상적인 장소에서 ‘캔디다 봤어요?’라는 질문이 유행하고 있다. 수천 명이 친구들을 쇼의 연극에 끌고 간다.
연극은 뉴욕 공연을 필두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1895년에 초연이 이루어졌으니 10년 만의 재조명이었다. 남녀 삼각관계를 소재로 한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흥행 이변은 ‘캔디다마니아’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나중에 쇼는 <캔디다>의 소극 버전인 <그녀의 남편을 어떻게 속였을까>라는 단편을 쓰기도 했다. ‘캔디다마니아’ 현상에 대한 응답이었다.
세 명의 등장인물 캔디다, 모렐, 유진은 모두 쇼의 분신들
쇼는 평소 모성애의 초인적인 힘에 주목했다. 그렇게 성녀 존, 참령 바버라 같은 쇼 특유의 여성 캐릭터가 탄생했다. 캔디다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세속적인 가치를 쫓는 아버지, 목사로서 책임과 의무에 충실한 남편, 자신을 신처럼 떠받드는 이상주의자 유진까지 극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남성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한다. 아내이자 어머니이자 누이로서 남편을 돌봐 온 캔디다에게 후광을 입은 ‘성모 마리아’가 오버랩된다.
모렐은 쇼의 정치 성향이 어느 정도 반영된 인물이다. 장인의 속물근성을 경멸하고 마르크스의 ≪자본론≫, 페이비언 사회주의 논문들, 급진 사회주의 논문들을 섭렵했지만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는 아니고 오히려 엄격한 도덕주의자, 현실주의자에 가깝다. 목사로서 소명의식과 남편이자 가장으로서 책임감 있는 태도가 모두의 신뢰를 얻는다.
모렐이 쇼의 사회의식을 대변한다면 유진은 좀 더 쇼의 분신에 가까운 인물이다. <캔디다>의 뉴욕 공연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쇼는 작품에 대한 대중의 오해를 지적했다. 그는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 ‘유진’이라고 설명했다. 제목도, 서사를 이끄는 주동인물도 명백히 ‘캔디다’지만 갈등을 통해 성장하고 변하는 인물은 유진이기 때문이다. 유진은 더 높은 이상, 더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찾는다. 쇼는 모렐과 캔디다, 관객들까지도 끝까지 이를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 유진의 변화는 오직 희곡 결말부 지문을 통해서만 어렴풋이 암시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에게도 유효한 질문
비평가, 정치적 활동가, 논객으로서 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러나 극작가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확고하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깨부수고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의미에서 영문학사상 그의 서열은 셰익스피어 다음이다. 60여 편의 드라마를 썼는데 사회 풍자, 위트와 유머가 풍부한 희극에서 그의 재주는 두드러졌다. <캔디다>는 쇼의 희극 스타일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더불어 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삶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쇼의 질문은 현대 독자에게도 날카롭게 다가온다.
200자평
“현존하는 극작가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은 누구인가?” 한 기자의 물음에 쇼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야 물론 나지.” 그 자신만만함에는 근거가 있었다. 1925년 스위스 한림원은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체, 재기발랄한 풍자로 이상주의와 인도주의 사이에 놓인 그의 작품을 기리며” 쇼에게 노벨상을 수여했다. <캔디다>에는 쇼의 이런 작품 성향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뉴욕 공연 이후 ‘캔디다마니아’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흥행에도 성공해 오래 인기를 누렸다. 관객들은 행복한 결말로 나아가는 전형적인 이 멜로드라마에서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그 답을 구하고 있었다. 쇼는 <캔디다>를 통해 현재와는 다른 삶, 그 가능성과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지은이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는 185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졸업 수준의 교육밖에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서른 즈음에 연극과 음악 분야에서 인정받는 비평가가 되었다. 60여 편의 극작품을 썼는데, 사회 풍자와 역사적 비유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 극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우생학과 알파벳 개혁을 지지했고 백신 접종과 조직적 종교를 반대했으며, 일차세계대전 때는 양 진영을 모두 비난해 큰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25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1938년에는 대표작 ≪피그말리온≫의 영화 대본을 써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50년 94세 나이로 죽기 직전까지 활발히 글을 쓰면서도 국가가 수여하는 훈장 등 모든 상을 거절한 일화로 유명하다. 쇼에 대한 학자, 비평가들의 평가는 매우 다양한 것이 사실이지만, 극작가로서 그의 위치는 확고하며, 종종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옮긴이
임성균은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 미국 루이지애나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숙명여자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한국밀턴학회와 한국셰익스피어학회 회장을 지냈다. 학술 논문 55편과 저술(번역 포함) 16권을 발표했으며, 2012년에는 에드먼드 스펜서의 ≪선녀여왕≫을 완역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부 명예교수다.
차례
나오는사람들
1막
2막
3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모렐 : 사람은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지만 거기 오래 머물 수는 없는 법이야.
마치뱅크스 : 틀렸어요. 거기서, 거기서만이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거예요. 사람이 쉬지 못하고, 인생의 고요한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건 다른 순간들 때문이라고요, 꼭대기가 아니라면 내가 어디서 시간을 보내길 바라십니까?
-113쪽
캔디다 : 내가 선택해야 한다고요, 내가요? 그러니까 내가 둘 중 누군가에게 속해야 한다는 건 이미 확실히 결정된 거네요.
-133쪽
모렐 : 당신을 보호해 줄 내 힘, 당신의 보증인이 되고자 하는 내 정직함, 당신의 생계를 위한 내 능력과 근면함, 그리고 당신의 자존감을 위한 내 권위와 위치 말고는 아무것도 당신에게 제시할 게 없구려. 남자가 여자에게 제시할 만한 건 그게 전부요.
-1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