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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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일꾼들>은 상대적으로 위고 대작들 중 국내 독자에게는 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위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종교, 사회, 자연, 이 세 가지는 인간이 투쟁하는 대상이다. 이것은 투쟁의 세 가지 대상인 동시에 세 가지 필요성이기도 하다. 믿음의 필요성에서 사원이 생기고, 창조의 필요성에서 도시가 생기고, 생활의 필요성에서 쟁기와 선박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 해결책에는 세 가지 투쟁이 내포되어 있다. 풀기 어려운 삶의 어려움은 모두 이 세 가지에서 나온다. 인간은 미신, 편견, 원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장애에 직면하게 된다. 삼중의 숙명이 우리를 짓누른다. 이것들은 도그마의 숙명, 법의 숙명, 사물들의 숙명이다. 나는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첫 번째 것을 고발했고, <레미제라블>에서 두 번째 것을 주목했으며, 이 책에서 세 번째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바다의 일꾼들>은 위고가 말한 쟁기와 선박, 즉 사물들의 숙명을 위해 주인공이 처절하게 투쟁하는 이야기다. 바다 한가운데 암초에 난파된 증기선의 기계장치를 가져오기 위해 벌이는 주인공 질리아트의 사투가 이 작품의 핵심이고 옮긴이도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총 3부 중 2부가 이에 해당한다. 바다와 어둠과 우주에 일대일로 대면한 한 외로운 영혼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초월적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은 가히 압권이다.
작가 자신이 서문에서 천명한 대로, 이 소설의 주제는 불가피한 존재로서의 자연이다. 인간이 숙명적으로 대면해야 하는 사물들, 그리고 물, 불, 바람, 대지와 같은 원소들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즉, 이 소설의 제목에서 ‘일꾼들’은 뱃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자연현상들을 가리킨다. 즉 일렁이는 물결, 불어오는 바람, 태양, 자기력을 머금은 빛, 암초, 보이지 않는 해저 세계를 품고 있는 바다 등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연현상과 우주의 구성 요소들은 이야기의 배경인 동시에 이야기를 역동적으로 이끌어간다.
이 소설은 우주와 인간 영혼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 질리아트는 자연과 자신의 내면세계를 심층적으로 탐색한다. 난파선의 기계장치를 구해 오는 질리아트의 작업은 무한한 자연이자 우주 전체와 관여되어 있는 바다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작업을 하면서 어둠의 심연을 바라본다. 내면 깊숙한 곳의 영혼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질리아트가 자신의 영혼, 즉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할 수 있다.
위고 연구가들은 “위대한 위고는 망명 시기의 위고”라고 주장한다. 실로 이 시기에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쓰였다. ≪바다의 일꾼들≫ 역시 위고의 망명기에 쓰인 장편소설로, 1865년에 탈고되고 1866년에 출간되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영불해협의 건지 섬은 위고가 20년의 망명 생활 중 15년을 보낸 곳이다. 따라서 망명 생활의 생생한 체험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은 물론이다.
쉰 줄에 들어서 떠난 망명은 잠시 동안 사회 활동에 치중해 있던 작가의 정신과 시선을 오롯이 내면세계와 우주로 향하게 하면서, 작품 세계의 구심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하늘과 바다를 가르는 수평선과 이따금 갈매기들만 보이는 건지 섬의 집필실에서, 위고는 전 우주와 홀로 마주 선 외로운 영혼의 심화된 세계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며 작품 세계의 새로운 영역을 열게 된다. 작품의 주제는 인간 세계에 한정되지 않고, 넓은 의미의 ‘존재’ 전체가 그 대상으로 떠오른다. 이 망명 시절의 사색을 통해 위고는 인간의 내면과 우주에 대한 심오한 비전을 지니게 된다. 그리하여 위고는 이후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관조(觀照)’라는 새로운 인식 방법을 제시한다. 관조하는 시인의 상상력은 안으로는 가장 내밀한 ‘영혼’으로 파고들고, 밖으로는 무한한 ‘우주’의 신비로운 영역 언저리까지 확장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 소설도 이러한 심오한 비전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200자평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이다. 이 책에서는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부분과 몽상의 부분, 양쪽 모두를 놓치지 않고 원전의 10%를 발췌했다. ≪레미제라블≫, ≪파리의 노트르담≫과 함께 위고의 3대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1820년대 건지 섬과 주변 바다를 배경으로 주인공 질리아트가 좌초된 증기선에서 동력 기계장치를 구해 오는 과정을 전개하고 있다. 인간이 숙명적으로 대면해야 하는 자연, 우주와 영혼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은이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 낭만주의 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 정치가. 1802년 프랑스의 브장송에 태어났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바람대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일찍이 문학적 재능을 보이며 시작(詩作)에 몰두했다. 위고는 첫 시집 ≪오데와 잡영집≫(1822)으로 주목을 받은 이래, 희곡 <크롬웰>(1827), 시집 ≪동방시집≫(1829), 소설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날≫(1829) 등을 발표하며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특히 <크롬웰>에 부친 서문은 고전주의 극 이론에 대항한 낭만주의 극 이론의 선언서로서, 위고가 낭만주의 운동의 지도자로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7월 혁명의 해인 1830년에는 희극 <에르나니>(1830)의 초연이 낭만파와 고전파 사이의 ‘에르나니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쟁에서 낭만주의는 고전주의로부터 완전히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1850년경까지 문단의 주류가 되었다. 그 후에도 위고는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치며, 시집 ≪가을 낙엽≫(1831), ≪내면의 음성≫(1837), ≪햇살과 그늘(1840)≫, 희곡 <마리용 드 로름>(1831), <힐 블라스>(1838) 등을 발표했다.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1831)는 위고에게 민중소설가로서의 지위를 굳혀 주었으며, 1841년에는 프랑스 학술원 의원으로 선출됐다. 그 뒤 위고는 10여 년간 거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정치 활동에 전념했고, 1848년 2월 혁명 등을 계기로 인도주의적 정치 성향을 굳혔다. 1851년에는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반대하다가 국외로 추방을 당하여, 벨기에를 거쳐 영국 해협의 저지 섬과 건지 섬 등에서 거의 19년에 걸쳐 망명 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시집 ≪징벌≫(1852), ≪정관≫(1856), ≪여러 세기의 전설≫(1부, 1859), 소설 ≪레 미제라블≫(1862), ≪바다의 노동자들≫(1867) 등 대표작의 대부분이 출간되었다. 특히,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대하 역사소설로서, ‘인간의 양심을 노래한 거대한 시편’이자 ‘역사적, 사회적, 인간적 벽화’로 평가받는 위고 필생의 걸작이다. 1870년 보불 전쟁으로 나폴레옹 3세가 몰락하자, 위고는 공화주의의 옹호자로서 파리 시민의 열렬한 환호 속에 프랑스로 돌아왔다. 1876년에는 상원의원으로 당선됐으나, 1878년에 뇌출혈을 일으켜 정계에서 은퇴했다. 국민 시인으로서 영예로운 대접을 받았고, 비교적 평온한 만년을 보내며, ≪웃는 남자≫(1869), ≪끔찍한 해≫(1872), ≪93년≫(1874), ≪여러 세기의 전설≫(2부, 1877; 3부, 1883) 등을 발표했다. 1885년 5월 폐렴으로 파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고, 200만 명의 인파가 애도하는 가운데 그의 유해가 판테온에 안장되었다.
옮긴이
김희경은 이화여자대학교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그르노블 제3대학교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수(Post-doc)과정을 마쳤으며, 충남대학교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주요 논문으로는 <상상계와 문화 원형 연구>, <빅토르 위고의 ≪바다의 일꾼들≫에 나타난 여성성의 이중적 양상들>, <존재의 이미지, 이미지의 존재>, <4원소 이미지의 역동성에 대한 연구>, <≪관조 시집≫과 ≪악의 꽃≫에서 나타난 모순어법의 배경 및 여정에 대한 연구> 등 다수가 있다. 역서로는 ≪부모님을 용서하는 방법에 대한 발칙한 보고서≫가 있다.
차례
헌사
서문
1부 시외르 클뤼뱅
1편 나쁜 평판이 생긴 까닭
2편 메스 르티에리
3편 뒤랑드와 데뤼셰트
4편 백파이프
5편 연발 권총
6편 술 취한 키잡이와 정신 말짱한 선
7편 불경스러운 질문들
2부 꾀바른 질리아트
1편 암초
2편 고된 일
3편 싸움
4편 이중 바닥을 지닌 난관
3부 데뤼셰트
1편 밤과 달
2편 감사하는 마음에서 부리는 전횡
3편 캐시미어호의 출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우리는 톱니바퀴 장치 안에 맞물려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전체의 구성 요소다. 우리는 자기 내부의 미지의 것이 외부의 미지의 것과 불가사의하게 연대하고 있음을 느낀다.
모든 것이 그에게 적대적이었고 어느 것 하나 그의 편은 없었다. 그는 고립되었고, 버려졌고, 쇠약해지고, 쇠잔해 갔으며, 잊혀갔다. 질리아트의 식량 창고는 비었고, 그의 연장들은 이가 빠지거나 고장 났고, 낮에는 갈증과 굶주림에, 밤에는 추위에 시달렸다. 상처 나고 고름이 나오는 곳에 누더기를 덮고, 옷에도 살에도 구멍이 나고, 손은 찢어지고 발에서는 피가 나고 사지는 마르고 얼굴을 창백했으나,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최고의 불꽃은 눈에 보이는 의지다. 인간의 눈에서는 그의 품성이 드러나도록 되어 있다. 우리의 눈동자는 우리 내면에 어떤 인격이 있는지를 말해준다. 우리는 우리 눈썹 아래 있는 빛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뚜렷이 드러낸다. 보잘것없는 의식들은 눈에서 깜박거리지만 위대한 의식들은 섬광을 내뿜는다.
바람은 벼락처럼 몰아쳤다. 비는 그냥 내리는 것이 아니라 무너져 내리듯 쏟아붓고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두 바위 사이에 끼어, 짐이 실린 배와 함께 갇혀 있는 질리아트와 같은 불쌍한 사람에게 이보다 더 위협적인 위기는 없었다. 질리아트가 잘 이겨냈던 조수의 위험은 폭풍우의 위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것이 그가 처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