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포프의 시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가 소개되고, 여러 매체에 그의 짤막한 경구들이 소개되는 등 시인에 대해서는 제법 알려져 있으나, 그의 시 작품들을 한데 모아 소개하는 책은 지금껏 없었다. ≪드라이든 시선≫을 번역 출간한 바 있는 옮긴이가, 존 드라이든의 뒤를 잇는 영국의 풍자시인이자 신고전주의의 대표자인 포프의 시를 국내에서 처음 번역, 소개한다.
포프의 유명한 작품인 <던시어드>는 총 네 권의 책으로 출간된 장편시로, 풍자시의 형식을 빌려 당시의 여러 인물들을 비판하는 작품이다. 이 책에서는 런던에 혼돈과 무질서가 가득하다고 말하며 당시의 왕과 여당 정부를 공격하는 부분을 소개해, 야당의 비공식적인 계관시인으로 자리 잡은 그의 정치적 입장을 알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이 외에도 신고전주의 문인으로서 비평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독창적인 문학적 견해를 드러내는 작품 <비평론>, 인간에 대한 신의 뜻을 변호하고 당시 싹트기 시작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작품인 <인간론> 등 그에게 대문호로서의 명성을 가져다준 견인차가 된 작품들이 이 책에 모두 실려 있다. 또한 아이작 뉴턴을 비롯해 포프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죽음에 바치는 비문과 서한시 등이 포함되어 있어 포프의 폭넓은 창작 세계와 뛰어난 시적 재치를 두루 엿볼 수 있다. 포프의 주요 작품들이 대개가 장편시들인데다 시에서 다루어지는 인물과 배경 또한 광범위해 그 전편을 알려 주는 것이 쉽지 않으나, 작품의 핵심이 되는 부분을 옮긴이의 전문적 지식이 충분히 발휘되는 풍부한 주석을 곁들여 소개하고 있어 포프의 시 세계를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다.
200자평
포프의 시는 먼저 형식적으로 볼 때 신고전주의적인 원칙, 균형과 조화, 중용과 절제, 우아미와 세련됨, 정확성과 명료성 등을 가장 잘 구현하여, 언어와 형식적으로 신고전주의 문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내용적으로 보면 그의 시는 금융자본주의의 발흥으로 인한 영국사회의 변화와 인간 개인의 내면의 변화를 깊이 있게 포착하여 그의 유려한 문체로 보여주었다. 더구나 그의 시에 나오는 많은 구절들이 후대에 불후의 명언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 책에는 총 40편의 시를 수록했다. 짧은 시는 전문을, 장시는 발췌해 실었다. 장시를 발췌한 것은 시 한 편이 거의 책 한 권 분량이 되기도 하는 등 전부를 수록하기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발췌로라도 포프의 시 세계를 경험하기를 바란다.
지은이
알렉산더 포프는 신고전주의를 주장한 영국의 시인이다. 1688년 로마가톨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당시 영국의 가톨릭교도는 반가톨릭 법안 때문에 대학 교육이 금지되었고, 부동산을 물려받을 수도 없었으며, 더 나아가 런던에서 10마일 거리 이내에 사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포프의 이러한 삶에 이중적인 장애가 된 것은 그의 신체적 결함이었다. 포프는 열두 살 때 결핵 합병증으로 곱사등이 되었고 다리를 절었으며 편두통에 시달렸다. 그렇지만 그의 신체적 불구와 병약함이 그를 학구적 열정으로 이끈 주된 이유일 것으로 여겨진다. 포프는 가톨릭교도여서 대학에 입학할 수도 없었기에 독학으로 공부했다. ≪전원시≫와 ≪비평론≫, ≪윈저 숲≫, ≪머리 타래의 강탈≫ 등을 발간하고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등을 번역하는 등 많은 문학적 업적을 남겼다. ≪던시어드≫와 ≪도덕론≫등을 통해서는 자본주의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야당인 토리당의 입장에서 당시 정부의 타락상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런 포프의 토리적인 태도와 문학적 성향은 많은 적을 만들기도 했다. 휘그파인 애디슨과 적이 되었고, 그의 시에 나오는 풍자 구절로 휘그파 문인과 적들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문학사적으로 포프는 신고전주의의 정신과 형식을 가장 잘 구현한 뛰어난 작품을 쓴 대시인이자, 탁월한 기지와 유머로 재치 있고 유려한 풍자시를 쓴 대표적인 풍자 작가다. 더구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그의 비판은 역사적으로 정확할 뿐만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 준다.
옮긴이
김옥수는 부산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대학원 영문과에서 석사 학위논문으로 <존 드라이든의 오거스턴 비전 연구>를 썼고, 박사 학위논문으로 <포프의 후기 풍자시와 18세기 영국의 사회 변화>를 썼다. 현재 제주대학교 인문대 영문과에 재직 중이다. 풍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로널드 폴슨(Ronald Paulson)의 ≪풍자문학론(The Fictions of Satire)≫(1992)을 번역했다. 또한 비평 방법론에 대한 관심도 지대해, 프랭크 렌트리키아(Frank Lentricchia) 외 여러 명의 비평가들의 논문을 편역한 ≪신역사주의론≫(1994)을 출간했다. 그리고 일반 대학생들의 시에 대한 감상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19세기 영미시 이해≫, ≪20세기 영미시 이해≫를 출간했다.
차례
1. 겨울
2. 비평론
3. 죽어 가는 기독교인이 그의 영혼에게
4. 부아튀르 작품을 가진 블라운트 양에게 부치는 서한시
5. 메시아
6. 머리 타래의 강탈
7. 윈저 숲
8. 애디슨의 카토의 비극에 대한 서언
9. 카토의 비극을 보고 실례한 숙녀에 대해
10. 대관식 뒤 도시를 떠나는 블라운트 양에게 부치는 서한시
11. 젊은 숙녀를 위한 첫 번째 시편 개작시
12. 고독부
13.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
14. 한 불행한 여성을 기리는 애가
15. 제임스 크래그스에게 부치는 서한시
16. 모티머 백작이자 옥스퍼드 백작인 로버트에게 부치는 서한시
17. 고드프리 넬러 경을 위한 비문
18. 코벳 부인을 위한 비문
19. 일라이저 펜턴을 위한 비문
20. 아이작 뉴턴 경을 위한 비문
21. 궁정의 어느 여성
22. 게이를 위한 비문
23. 인간론
24. 벌링턴에게 부치는 서한시
25. 배서스트에게 부치는 서한시
26. 코브험에게 부치는 서한시
27. 숙녀에게 부치는 서한시
28. 아버스넛에게 부치는 서한시
29. 포티스큐에게
30. 베델에게
31. 아우구스투스에게
32. 볼링브룩에게
33. 풍자에 부치는 결어: 대화 1
34. 풍자에 부치는 결어: 대화 2
35. 황태자께 바친 개 목걸이에 새긴 경구
36. 보편적 기도문
37. 트위커넘 석굴에 대해
38.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지 않을 이를 위해
39. 포프 자신을 위한 비문
40. 던시어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 시간부터 나는 모든 한계와 가상적인 속박의 줄로부터 벗어나리라,
내가 정하는 어디로든 가서, 나 자신의 완전하고 절대적인 주인이 되리라,
다른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하는 말을 잘 새겨들으며,
잠시 멈추어, 탐구하고, 받아들이고, 명상하고,
부드럽지만 굳센 의지로, 나를 얽어매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리라.
–<도로의 노래> 중
나의 위대한 사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빈약한 것이 아니었던가?
악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그대들만이 아니다,
악이 무엇이었는가를 안 그는 바로 나이기도 하다,
나 역시 모순이라고 하는 오래된 매듭에 얽매여 있었다,
쓸데없이 지껄여 대고, 얼굴을 붉히고, 분개하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원한을 품고,
사기, 화, 욕정, 그리고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욕망을 가졌었다,
고집스럽고, 잘난 체하고, 탐욕스럽고, 경박하고, 교활하고, 비겁하고, 악의가 있었다,
늑대, 뱀, 돼지, 내 속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교활한 눈초리, 경솔한 말, 부정한 욕망, 없는 것이 없었다,
거부, 증오, 위배, 비열, 나태, 이런 것 중 없는 것이 없었다,
–<브루클린 도선장을 건너며> 중
자, 이 선물을 받으시오,
나는 이것을 어떤 영웅이나 웅변가 혹은 장군,
훌륭한 명분이나, 위대한 사상이나, 인류의 진보와 자유를 섬기는 사람,
독재에 용감하게 대항하는 사람, 과감하게 반항하는 사람을 위해 간직하고 있었다오,
하지만 내가 간직해 온 것이 그런 사람 못지않게 당신에게도 딱 맞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오.
–<어느 여가수에게>
눈부신 빛을 내뿜는 찬란하고 고요한 태양을 내게 다오,
과수원에서 갓 따 온 빨갛게 잘 익은 싱싱한 가을 과일을 내게 다오,
깎지 않은 풀이 자라고 있는 들판을 내게 다오,
정자를 내게 다오, 그 정자의 격자 시렁에 매달린 포도를 내게 다오,
갓 나온 옥수수와 밀을 내게 다오, 평온히 움직이며 만족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동물들을 내게 다오,
미시시피 서쪽에 있는 고원처럼 완전히 고요한 밤을 내게 다오, 그러면 내가 별들을 올려다볼 테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산책할 수 있는,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한, 동 틀 무렵의 향기로운 정원을 내게 다오,
결코 싫증나지 않을, 아름답게 숨 쉬는 여인과의 결혼을 내게 다오,
완벽한 아기를 내게 다오, 세상의 소음에서 멀리 떨어진 전원에서의 가정적인 삶을 내게 다오,
나 자신의 귀만을 위해, 홀로 은둔하며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노래를 내게 다오,
고독을 내게 다오, 자연을 내게 다오, 오, 자연이여, 그대의 원초적인 건강을 다시 내게 다오!
–<찬란하고 고요한 태양을 내게 다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