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인류 경제사의 통시적 조망
≪장인 본능≫의 목적은 무엇보다 소수에게 집중된 자본이 막대한 부를 낳는 불평등한 부 축적 체계의 부당함을 밝히는 데 있다. 인류의 타고난 본능적 성향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공동체의 물질적 번영에 직접적 도움이 되는 본능으로서 ‘부모 성향’과 ‘장인 감각’에 집중해, 이 두 본능이 인류의 경제 활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원시 사회부터 시작해 20세기 초까지의 서구 사회에서 통시적으로 조망했다.
‘자본’의 경제적 논리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인간 활동의 결과가 자본으로 기능하게 되는 사회적 맥락을 기술, 제도, 관습의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에서, 베블런은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문명사적 관점을 포착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이라는 것이 단순한 재화가 아니라 이윤을 목적으로 교환 또는 거래되는 재화라고 볼 때 도구의 사용이 어떻게 재화 생산을 가능하게 했는지, 생산된 재화를 거래하게 하는 동인으로서 소유의 개념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소유한 재화를 더 많이 축적하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게 축적된 부가 더 많은 이윤을 낳으며 어떻게 현대 사회 제도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는지를 기존 경제학적 분석과 달리 인간의 본성, 사유 습관과 행위, 사회 제도에 초점을 두고 분석했다. 베블런에 앞서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마르크스가 생산성이나 생산 요소에 집중해 자본주의 체계 자체의 모순을 밝혔다면, 베블런은 인간의 사고방식, 관습, 규율 등 문화 및 사회 제도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인간 본능과 기술은 환경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한다는 입장에서 금전 문화의 출현과 발전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베블런의 촌철살인
이 책이 자본주의의 문명사적 분석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방대한 분석이라는 점은 물론이고 현대 사회를 미리 내다본 듯 오늘날의 현실을 정확히 꼬집은 통찰력 또한 주목할 만하다. 부의 소유와 축적이 사회 관계의 핵심이 되어 가는 과정을 분석하며 스치듯 언급한 지적이나 표현들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미래를 분석한 것으로 여겨질 만큼 여전히 참신성이 빛난다. 오늘날 표현으로 하자면 ‘돌직구’에 가까운 그의 직설적 표현은 “당대를 가장 인상적으로 풍자한 미국인”, “화려한 불꽃처럼 빛을 발하는 풍자”, “생소한 와인처럼 독특한 맛” 등으로 글이 출간된 당시에도 상찬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오늘날 한 가지 지식 또는 기술에 길들여져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는 관료들의 폐해를 언급할 때 자주 사용되는 훈련된 무능(trained inability)이라는 단어는 이 책에서 처음 등장한다. 베블런은 “산업의 총 순이익은 예상 수익의 5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기업인들의 수익 원천인 산업의 기술적 필요를 식별하고 실행하지 못한 기업가의 훈련된 무능 때문이다”라고 언급하며, 기술에 대한 지식 없이 금전 관리에 특화된 훈련받은 기업인들이 경영에 실패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또한 베블런은 오늘날 시장 경제의 확산과 함께 개인이 생산의 주체로서 노동자보다 소비의 주체로서 존재하게 되는 현실을 이미 내다보았다. 대규모 주식회사를 중심으로 한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사회로 들어선 이후에는 경제적 주체로서 개인은 노동자보다는 소비자로 인식되며, 이러한 개인의 정체성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한 학자가 바로 베블런이었다.
소비자로 정체성이 대두되는 문제에서 나아가 베블런은 노동의 문제도 자신만의 직설화법으로 명쾌하게 지적했다. 마르크스가 노동을 소외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문제를 제기했다면, 베블런은 노동을 “지겨운 일”이라고 한마디로 표현한다. 부의 소유와 축적을 부추기는 금전 문화는 노동을 경시하고, 그러한 문화 속에서 노동은 극복해야 할 ‘쓸모없는 장애물’이자 참고 견뎌야 하는 ‘무의미한 고난’일 뿐이라는 것이다. 베블런은 “‘노동의 고귀함’이란 솔직하지 못한 표현이다”라며,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기존 논리를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또한 베블런은 통신의 발전을 시계로 표준화된 사회로 비유하며 전화, 전보의 도입으로 바뀐 일상과 사고 체계를 언급했다. “시계는 사람들의 반복된 일상을 정교하게 단일화된 시간표 속으로 끌고 들어왔고, 수공업 체제의 사람들은 시계라는 편리한 발명품 없이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살았던 시대보다 몇 배나 큰 사회 속에서 살게 되었다. 바로 기계의 요구가 천체의 작용이 부과한 시간표를 수정하게 만든 것이다”라고 말하며, 지구화 현상의 시작을 지적했다. 또한 산업 장비에 대한 사용권과 재량권이 기업의 자본 축적에 점차 중요해진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거리의 문제를 지적해 지구화와 거대 독점 자본 형성 문제를 지적했다. 베블런은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산업을 통제할 수 있는 이들은 대규모 장비 소유주, 즉 거대 독점 자본가들뿐이며 먼 거리로까지 사업이 확대되는 상황은 시장 가치와 장비 소유의 변화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내용으로 이 책을 마무리하며 다국적 기업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내다보았다.
인류 문명사를 통찰하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닌 특성으로서 본능적 성향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수공업 시대 경제 관념의 사상적 기반이 된 천부 인권과 자연법, 그리고 과학의 대상으로서 사실 인식과 기술 발전의 관계까지 인류 발전의 과정에 나타난 현상들을 정치, 사회, 경제, 기술, 과학, 문화, 철학, 사상, 종교 등 다양한 각도에서 다루었다. 또한 진화론, 멘델의 유전 법칙, 공리주의와 베르그송의 철학, 천부 인권 사상과 로마법, 산업 혁명 전후의 세계사 등 20세기 초 베블런이 접하고 고민했던 다양한 지성의 흐름들이 행간에 녹아 있는 만큼 그의 광범위한 지식과 통찰에 집중해 따라가다 보면 베블런이 바라본 인류의 문명사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
200자평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으로 유명하다. 그 베블런이 자신의 연구 중에서 가장 종합적인 분석이라고 평한 책은 바로 이 책 ≪장인 본능≫이다. 부의 축적과 상대적 빈곤 문제를 비판하고, 자본주의가 초래한 사회 제도 전반의 문제를 밝히기 위해 쓴 책이다. 원시 사회부터 베블런이 살던 20세기 초까지의 문명 형성 과정에 걸쳐 자본주의에 관해 거시적인 안목으로 분석하고, 인류의 경제 생활의 변화와 사회 불평등의 기원을 추적했다. 문화와 문명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지은이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1857년 미국 위스콘신의 한 농촌 마을에서 노르웨이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존스홉킨스대학의 경제학과 대학원에 진학했으나 당시 논리학 강사였던 찰스 퍼스의 강좌나 칸트 수업을 듣는 등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존스홉킨스대학에서 한 학기만을 다닌 뒤 스코틀랜드 학파의 뛰어난 철학자였던 노아 포터가 총장으로 있던 예일대로 옮겨 갔다. 여기서 칸트에 대한 논문으로 1884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일자리를 찾았지만 1880년대 미국의 대학은 스코틀랜드 도덕철학을 가르쳐야만 철학 교수로 임용이 될 수 있는 분위기였고 베블런은 어쩔 수 없이 고향 농촌 마을로 돌아가 7년을 보냈다. 베블런은 그 시기 동안 많은 독서를 하며 그 시대의 문제를 고민했다.
이후 철학 교수로 자리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베블런은 임용에 제약을 받지 않는 경제학을 다시 공부하기로 결정하고 코넬대학에 입학했다. 경제학과 교수였던 제임스 로플린의 도움으로 시카고대학으로 건너가 펠로로서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당시 창간된 ≪정치경제 저널(Journal of Political Economy)≫의 실질적 편집장 일을 하면서 이후 ≪유한계급론≫을 쓰게 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베블런은 사회 불만의 원천이 노동 계급의 빈곤이 아니라 박탈감, 즉 상대적 박탈감이며, 경쟁적 획득은 누군가 더 많이 갖는 한 끝나지 않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자각 없이 행해지는 상류층 소비를 ‘과시적 소비’라 언급하며 물질 만능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1929년, 미국에 대공황이 찾아오기 몇 달 전에 사망했다.
옮긴이
양소연은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사회통합연구센터 연구원이다. 인간과 사회, 기술과 문화의 상호 연결성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Cyber is: 네트에서 문화읽기≫(공저)를 썼으며, 옮긴 책으로는 ≪사이버파워≫(공역)가 있다.
유승호는 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박사이며, 문화 산업과 문화정책 담론을 연구한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 교수, 한국문화경제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스타벅스화≫, ≪문화도시≫, ≪당신은 소셜한가?≫, ≪오늘의 사회이론가들≫(공저), ≪현대사회학이론≫(공저) 등이 있다.
차례
서문
1장 서론
2장 원시 기술과 본능의 오염
3장 원시 상태의 산업 기술
4장 약탈 문화의 기술
5장 소유 및 경쟁 체계
1. 평화적 소유
2. 경쟁 체계
6장 수공업 시대
7장 기계 산업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현대의 문명화된 개인이라면 평판의 규범을 모르지 않아서 첫째 범주가 칭찬받을 만하고 마지막 것이 불명예스럽다는 것을 즉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으며, 둘째 범주는 개인의 편견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여진다. 일하지 않고 얻은 부가 없거나 약탈적 조상이 없는 귀족은 귀족이라 이름 붙일 수 없다. 금전적 이점을 상실한 귀족 계급은, 귀족이라 부르기에 애매해진다. 빈곤에 시달리는 귀족은 ‘타락한 신사’다. 그리고 ‘노동의 고귀함’이란 솔직하지 못한 표현이다.
-216쪽
기업인들은 열심히 일한다. 오늘날 기업 환경에서 통상적인 고강도 노동을 감내할 수 없거나 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위한 자리는 없다. 돈 버는 일에 이처럼 몰두하는 것은 경쟁의 본질이기 때문에, 돈과 관련된 일 외에 다른 일에 완전히 전념하려는 사람에게는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높은 노동 강도는 현대의 모든 사회에서 매우 칭찬할 만한 것으로 여겨지며, 현대적인 사회일수록 그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따라서 어떤 노동이라도 대개 경쟁적 성격을 띤다.
-2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