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최치원 서사의 종합
전승이란 문학 갈래를 넘나들면서 구전이나 기록으로 전개된 문학 양상을 지칭한다. 최치원 전승은 산재된 구전 자료나 여러 이본에서 비슷하지만 또 다른 국면과 양상을 보인다. 먼저, 최치원을 단독으로 다룬 문헌 자료로는<쌍녀분(雙女墳)><최치원(崔致遠)><선녀홍대(仙女紅袋)><최치원전(崔致遠傳)><최문헌전(崔文獻傳)><최고운전(崔孤雲傳)><최충전(崔沖傳)><최문창전(崔文昌傳)> 등이 있다. 여기에 구전 자료가 있을 뿐 아니라 단편적으로 그를 형상화한 일화가 포함된 자료도 있다. 가령, 12세기 남송 시대의 역사 지리서인 ≪육조사적편류(六朝事迹編類)≫, 조선조의 설화 잡록집인 ≪태평통재(太平通載)≫, 일종의 백과전서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그리고 설화 전기집인 ≪해동이적(海東異蹟)≫ 등이 그것이다. 이들 자료를 종합해 열두 개의 여정으로 나눠지는 그의 일대기를 살펴본다. 그간 학술서가 아니면 아동서로만 접할 수 있었던 <최치원전>을 중고등학생과 일반 교양 독자들을 위해 내놓는다.
비범한 문필 영웅 최치원의 삶
최치원은 역사상 인물이지만 그에 대한 사실적 기록은 그리 풍부하지 않다. 여러 단편적인 자료들로 전해질 뿐이다. 그는 통일신라시대 말기 헌안왕 원년(857년)에 태어났다. 자는 고운(孤雲)으로, 일찍이 당에 유학하고 과거에 급제해 문명을 떨쳤다. 이에 따라 당나라 환로(宦路) 시절의 활약상과 순방 체험 등이 전해진다. 그렇지만 귀국 후 육두품 출신으로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다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숨어 사는 삶을 택해 지내다가 생을 마무리한다.
≪최치원 전승≫에서 주인공 최치원의 일대기는 그의 아버지인 최충을 소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훌륭한 가문의 귀한 후예라는 얘기다. 하지만 아들의 출생 과정이 남다르다. 최충은 부임하는 수령마다 아내를 잃어버린다는 고을로 가게 된다. 여종을 모아 아내를 지키게 하지만 요괴에게 잡혀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꾀를 내 아내의 손목에 실을 묶어 둔 게 다행이라면 다행. 그 덕에 금돼지에게 잡혀간 아내를 구출해 낸다. 하지만 아내가 돌아와 낳은 아들이 금돼지의 소생임을 의심한 충은 아들을 내다버리라고 명한다. 그랬더니 선녀가 젖을 먹이고 연잎이 감싸 주고 봉황과 학이 날개를 깔고 덮어 준다. 필시 비범한 아이다. 우여곡절 끝에 치원이 집에 돌아와 글을 배우니 이때 시 읊는 소리가 만 리나 떨어진 중원의 황제의 귀에까지 들린다. 자, 영웅의 시련과 극복은 이후에도 쭉 이어진다. 기지를 발휘해 승상의 딸과 혼인하고 중원의 황제에게 부름을 받아 과거에 급제한다. 영웅의 모험은 현실 세계를 넘어 귀신과 용왕이 사는 곳으로까지 이어진다. 작품 속 한시는 덤이다. 이야기 속 고즈넉한 분위기의 한시까지 맛볼 수 있다.
200자평
최치원 텍스트의 모티프를 통합적으로 살펴본다. 최치원은 동방의 소국 신라에서 태어나 당나라 과거에 급제해 한 시대를 풍미한 거물이지만 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미미하다. 워낙에 비범한 인물임에도 기록은 적으니 천 년이 넘도록 전해지며 서사의 틀이 잡히고 곁가지도 생겨났다. 금돼지의 소생이라 여겨져 버려졌던 어린아이가 어떤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당나라에 가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는지 영웅의 일대기를 다양한 구전 설화와 문헌 자료를 엮어 모아 들어 본다.
엮은이
송진한은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다. 주요 편저역서로는 ≪조선조 연의소설의 세계≫(2003), ≪한국 고소설의 창작방법 연구≫(2005), ≪비교문학≫(2012), ≪도술이 유명한 서화담≫(2014), ≪21세기형 최적화 학교 탐구≫(2016), ≪무등산과 고전문학≫(2018) 등이 있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최충, 문창현의 수령이 되다
최충과 그의 아내, 지혜로 위기를 벗어나다
금돼지의 새끼라고 버려진 아이, 아버지에게 인정받다
아이, 학사와 시 겨루기를 벌이고, 황제는 신라를 시험하다
아이, 승상 댁의 파경노가 되어 그의 딸을 만나다
아이, 승상의 딸과 혼인하다
치원, 시로 과업을 해결하고, 황제에게 부름을 받다
치원, 용왕의 아들을 만나다
치원, 이인의 도움을 받으며 시험을 극복하고 과거에 급제하다
최치원, 임지에 부임한 후 하루는 선녀를 만나다
최치원, <격서>로 도적 떼를 물리치고 귀국하다
최치원, 신라로 돌아와 가야산에 은거하다
해설
엮어 쓴 이에 대해
책속으로
무릇 사람의 일이란 제가 저를 아는 것이 제일이다. 내가 헛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 너는 모름지기 살펴 들으라. 너는 일찍 덕의에 감화하여 돌아올 줄 모르고 다만 흉악한 짓만 길러 갔다. 그렇지만 황제께서는 너에게 죄를 용서하는 은혜를 베풀었는데도 너는 나라에 은혜를 저버리는 대죄를 범하였다. 반드시 얼마 아니면 죽고 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어찌 하늘을 무서워하지 아니하는가. 나는 이 한 편의 언술로 너의 거꾸로 매달린 듯한 다급함을 풀어 주려 하는 것이니 고집을 부리지 말고 때를 놓치지 말아 스스로를 위하여 좋은 꾀를 내어 큰 죄를 알았거든 고치도록 하라. 너는 모름지기 진퇴를 생각하여 잘된 일인가 못된 일인가 분별하라. 배반하여 멸망됨이 어찌 돌아서서 따라와 영화롭게 됨과 같겠는가. 다만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니 천하장사의 행적을 택해 재빨리 변할 것이요, 어리석은 생각으로 의심만 하고 있지 말라.
−112쪽
뜬세상의 영화는 꿈속의 꿈이니
흰 구름 깊은 곳에 몸은 편안하게 하는 것이 좋겠도다.
浮世榮華夢中夢
白雲深處好安身
−1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