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하려면 전쟁터에 나가라
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안녕하세요. 북레터 인텔리겐치아입니다.
당나라 시대 가진 것 없는 사람이 빨리 출세하는 방법은?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쉬울 리가 없지요. 출세를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예나 지금이나 혹독했습니다. 그리고 그 힘겨운 행군길에서 ‘변새시’라는 한시의 장르가 탄생합니다. 인간은 혹독한 환경에 처할수록 훌륭한 문학과 예술을 창조하나 봅니다.
제후에 봉해지는 것은 한 번의 전투에서 얻는 법,
어찌 다시 아내를 생각하랴?
≪왕창령 시선≫ ‘행로난을 바꾸어’의 일부
이백, 두보, 왕유 등 당나라 시대는 워낙 뛰어난 시인이 많습니다. 그에 비해 왕창령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낯설죠. 한시 선집에 빠짐없이 작품이 실려 있는 시인임에도 그동안 단독 시집이 출간되지 않았어요. 이번에 지만지에서 처음 ≪왕창령 시선≫을 출간했습니다. 왕창령은 고적, 잠삼과 함께 ‘변새시’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한 시인입니다. 변새시파는 외적과의 전쟁이 잦았던 당나라 시절, 변방의 쓸쓸함과 전쟁의 참상, 병사들의 사기를 돋우는 호방한 기상 등을 주로 노래했습니다. 특히 왕창령은 칠언절구로 유명했는데, 정교한 시어 선택과 치밀한 구성으로 ‘칠언성수(七言聖手)’ 혹은 ‘칠언장성(七言長城)’이라 칭송을 받았고, 이백과 함께 후대에 칠언절구의 모범이 된 작가입니다.
잠삼도 당나라 사람으로 변새시파를 대표합니다. 두보와 관직 생활을 함께했어요. 잠삼은 명문가 출신인데, 증조부와 백조부, 백부가 재상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백부가 죄를 받아 죽임을 당하면서 가문이 몰락했고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됩니다. 무너진 가문을 다시 일으켜 옛 영화를 되찾는 것이 그의 가장 절실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는 20세부터 유력가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시를 바치고 관직을 구했습니다. 당시엔 과거제도가 확립되기 전이라 많은 문인들이 자신의 시문을 윗사람에게 올려 자질을 인정받고 관직을 얻었다고 해요. 하지만 10년이 흘러도 기용되지 않았고, 30세가 되어서야 과거를 치르고 꿈에 그리던 관직에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직위가 기대보다 너무 낮았고, 더 출세하기 위해 종군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원정길은 험난했고 자연은 혹독했습니다. 두 번에 걸친 종군 생활로 잠삼의 시들이 탄생했는데, 이 책에 50수를 골라 실었습니다. 그의 시 한 수를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얀 눈의 노래로 서울로 돌아가는 무 판관을 전송하며
白雪歌送武判官歸京
북풍이 땅을 휘말아 백초가 꺾이니
오랑캐 땅 8월이면 이내 눈이 날린다네.
문득 하룻밤 사이 봄바람이 불어온 듯
수많은 나무 하나하나마다 배꽃이 피었도다.
구슬주렴으로 흩날려 들어와 비단 휘장 적시니
여우 갖옷도 따뜻하지 않고 비단 이불도 얇기만 하구나.
장군의 뿔활은 당겨지지 않고
도호의 철 갑옷은 차가워 입기 어렵네.
넓은 사막은 이리저리 백 장이나 얼어 있고
먹구름은 어둑어둑 만 리까지 엉겨 있네.
군영에 술자리 벌여 돌아가는 객을 대접하니
호금과 비파 소리가 강적 소리와 함께하네.
저녁 눈은 어지러이 군영 문에 내리는데
붉은 깃발은 바람이 몰아쳐도 얼어 펄럭이지 못하네.
윤대의 동문에서 그대 떠나보내니
그대 떠나갈 때 눈은 천산 길에 가득하리.
산길 돌고 돌아 그대 보이지 않는데
눈 위에는 부질없이 말 지나간 자취만 남았어라.
北風捲地白草折,
胡天八月卽飛雪. 忽如一夜春風來,
千樹萬樹梨花開. 散入珠簾濕羅幕,
狐裘不暖錦衾薄. 將軍角弓不得控,
都護鐵衣冷難著. 瀚海闌干百丈冰,
愁雲慘淡萬里凝. 中軍置酒飮歸客,
胡琴琵琶與羌笛 紛紛暮雪下轅門,
風掣紅旗凍不翻 輪臺東門送君去,
去時雪滿天山路. 山迴路轉不見君,
雪上空留馬行處. 고적은 평생토록 수많은 사람들과 교유하고 시를 썼습니다. 출세하기 위해서였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동정하거나 격려하여 스스로를 위안하고, 고관이나 정치 유력자들에겐 자신의 능력과 재주를 드러내 그들을 찬미하여 입신의 기회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의 시 중 가장 돋보이고 문학사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변새시입니다. 고적의 변새시는 동시대 잠삼과 다른 풍격을 보입니다. 잠삼의 시는 화려하고 섬세한 정경 묘사와 독특한 표현으로 호탕하고 격정적입니다. 반면, 고적의 시는 담담한 묘사와 침중하고 온화한 표현으로 비통한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고적은 잠삼, 왕창령과 더불어 당대 변새시의 또 다른 최고 수준을 보여 주는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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