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일본 문화와 미의식의 원천
세계 최고(最古), 최장(最長)의 고전소설
≪겐지 모노가타리≫는 헤이안 시대(794∼1192)의 작가 무라사키시키부가 교토와 우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왕조 귀족들의 사랑과 인간관계를 풍부한 상상력과 아름다운 문체로 묘사한 소설이다. 전체 54권으로 나뉘어 있으며 200자 원고지 5000매가 넘는 세계 최고(最古), 최장(最長)의 고전소설이다. 4대 천황에 걸친 70여 년간 400여 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히카루겐지(光源氏, 겐지)라고 하는 주인공의 비현실적이라 할 만큼 이상적인 일생과 그 후손인 가오루(薫)와 니오미야(匂宮) 등의 인간관계가 그려진다.
≪겐지 모노가타리≫의 가치는 무엇일까. ≪겐지 모노가타리≫의 현대어 역을 한 작가 세토우치 자쿠초는 이 작품 탄생 1000년 기념 강연에서, “≪겐지 모노가타리≫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가 쓰여 있다”라고 했다. 또 전 컬럼비아대학 교수 도널드 킨은 “≪겐지 모노가타리≫는 일본 문학의 최고봉이며 세계의 고전이다”라고 지목했다. 단순히 1000년 전의 옛날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구성과 인간의 심리 묘사, 표현의 정교함과 미의식을 보여 준 때문이다. 또 동시대의 독자들뿐만 아니라 후대의 일본 문학, 노(能), 가부키, 미술, 공예, 음악 등 갖가지 예능에 수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이기에 ≪겐지 모노가타리≫ 연구의 권위자인 아키야마 겐은 “≪겐지 모노가타리≫에는 일본 문화와 미의식의 원천이 담겨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도 장편 ≪겐지 모노가타리≫의 전편을 모두 읽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워낙 오래된 작품이라 완독하려면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지식과 끈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이 작품은 축약된 그림책이나 만화, 가극, 영화 등 갖가지 형태로 감상되었다.
이 책 ≪원서발췌 겐지 모노가타리≫는 이 작품의 완독이 어려운 현대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그동안 ≪겐지 모노가타리≫를 읽고 싶었지만 엄두를 못 냈던 독자들, ≪겐지 모노가타리≫라는 세계 고전의 맛을 음미해 보고 싶은 독자들, 완독하기 전 워밍업이 필요한 독자들에게 이 발췌본을 권한다.
방대한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권마다 본문 앞에 장소와 인물, 줄거리를 먼저 소개하고 본문 뒤에는 작품 해설을 달았다. 수십 년 간 이 작품을 연구해 온 권위자, 한국외국어대학교 김종덕 교수가 작품의 정수만 뽑아 옮겼기 때문에 이 발췌본 한 권으로 전체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일본 현대어 번역본이 아니라 판본 중 가장 원작에 가깝다고 알려진 청표지본을 원문으로 삼아 번역했기 때문에 원전의 맛을 훼손없이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각 권마다 실려 있는 원색 그림이다. 그림은 번역자 김종덕 교수가 제공한 것으로 여러 화첩과 미술관에 소장된 <<겐지 모노가타리>> 관련 그림들이다. 1000년 전의 고전 작품을 눈으로도 보고, 가슴으로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총 54컷의 원색 그림이 실려 있고 각 권 내용에 해당하는 와카 또한 함께 수록했다. ≪겐지 모노가타리≫에는 총 795수의 와카가 실려 있는데 이 책에는 그중 114수를 실었다. 이들 와카의 감상 또한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200자평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는 일본 고전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네 천황이 치세한 70여 년의 긴 시간을 배경으로 무려 40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총 54권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고(最古), 최장(最長)의 고전 소설이다. 치밀한 구성과 인간의 심리 묘사, 표현의 정교함과 미의식 등으로 일본 문학사상 최고 걸작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시대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분량도 방대한지라 일본 사람도 이 책을 완독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이 책은 원서의 약 10%를 발췌해 옮겼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각 권마다 장소와 인물, 줄거리를 먼저 소개하고 본문 뒤에는 작품 해설을 달았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각 권마다 실려 있는 원색 그림이다. 이 그림들은 ≪겐지 모노가타리≫를 소재로 해서 그린 일본 전통화로서 이 책의 고전적 정서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지은이
무라사키시키부(紫式部, 970?∼1014?)는 10세기 말, 지금의 교토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생모와 사별하고 지방 수령인 아버지 다메토키의 훈도를 받으며 자랐다. ≪무라사키시키부 일기(紫式部日記)≫에 따르면, 아버지가 아들 노부노리(惟規)에게 한학을 가르칠 때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무라사키시키부가 항상 먼저 해독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무라사키시키부의 뛰어난 재능과 지식은 훗날 ≪겐지 모노가타리≫ 창작의 밑거름이 되었다.
무라사키시키부는 당시로서는 만혼인 29세(998)에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아들이 있는 후지와라 노부타카(藤原宣孝)와 결혼해 딸 겐시(賢子)를 출산하지만, 2년 남짓한 행복도 잠깐, 돌연 남편 노부타카가 병으로 죽게 된다. 홀로 어린 딸을 키우던 그녀는 인생을 더욱더 관조하게 되었고, 그 무렵부터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겐지 모노가타리≫ 속에서 실현하려고 했다. 그녀의 이러한 재능은 곧 당시의 권세가였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에게 발탁되어, 36세가 되는 1005년경 미치나가의 딸이자 이치조 천황의 중궁인 쇼시(彰子)의 여방(女房, 궁중에서 시중을 드는 궁녀)으로 입궐한다. 이러한 궁중 생활의 체험을 살려 완성한 장편 소설이 ≪겐지 모노가타리≫이고, 1010년경에는 ≪무라사키시키부 일기(紫式部日記)≫, 1013년경에는 가집 ≪무라사키시키부집(紫式部集)≫ 등을 편찬했다.
옮긴이
김종덕(金鍾德)은 1976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1982년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일본 문학 연구 과정에 유학해 ≪겐지 모노가타리≫ 연구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 고대의 대표적인 고전 문학인 ≪겐지 모노가타리≫를 중심으로 고전 서사 문학의 전승과 표현, 화형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기타 일어일문학 관련 학회의 임원과 편집위원, KOREANA(한국국제교류재단) 편집장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표현이 펼치는 고대 문학사(ことばが拓く古代文学史)≫(공저, 笠間書院, 1999), ≪신화 · 종교 · 무속(神話 · 宗教 · 巫俗)≫(風響社, 2000), ≪교착하는 고대(交錯する古代)≫(공저, 勉誠社, 2004), ≪일본 고대 문학과 동아시아(日本古代文学と東アジア)≫(공저, 勉誠出版, 2004), ≪키워드로 읽는 겐지 모노가타리≫(공저, 제이앤씨, 2013), ≪겐지 모노가타리의 전승과 작의≫(제이앤씨, 2014), ≪헤이안 시대의 연애와 생활≫(제이앤씨, 2015) 외에 ≪겐지 모노가타리≫와 관련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겐지 모노가타리≫ 독자에게 보내는 번역자의 글
제1부
1. 기리쓰보 권(桐壷巻)
2. 댑싸리 권(帚木巻)
3. 우쓰세미 권(空蝉巻)
4. 유가오 권(夕顔巻)
5. 와카무라사키 권(若紫巻)
6. 스에쓰무하나 권(末摘花巻)
7. 단풍놀이 권(紅葉賀巻)
8. 벚꽃 놀이 권(花宴巻)
9. 아오이 권(葵巻)
10. 비쭈기나무 권(賢木巻)
11. 하나치루사토 권(花散里巻)
12. 스마 권(須磨巻)
13. 아카시 권(明石巻)
14. 수로 말뚝 권(澪標巻)
15. 쑥대밭 권(蓬生巻)
16. 관문지기 권(関屋巻)
17. 그림 겨루기 권(絵合巻)
18. 솔바람 권(松風巻)
19. 옅은 구름 권(薄雲巻)
20. 아사가오 권(朝顔巻)
21. 소녀 권(少女巻)
22. 다마카즈라 권(玉鬘巻)
23. 첫 노래 권(初音巻)
24. 호접 권(胡蝶巻)
25. 반딧불이 권(蛍巻)
26. 패랭이꽃 권(常夏巻)
27. 화톳불 권(篝火巻)
28. 태풍 권(野分巻)
29. 행차 권(行幸巻)
30. 등골나물 권(藤袴巻)
31. 마키바시라 권(真木柱巻)
32. 매화 가지 권(梅枝巻)
33. 등나무 속잎 권(藤裏葉巻)
제2부
34. 봄나물 상권(若菜上巻)
35. 봄나물 하권(若菜下巻)
36. 가시와기 권(柏木巻)
37. 횡적 권(横笛巻)
38. 청귀뚜라미 권(鈴虫巻)
39. 유기리 권(夕霧巻)
40. 불법 권(御法巻)
41. 환상 권(幻巻)
승천 권(雲隠巻)
제3부
42. 니오 병부경 권(匂兵部卿巻)
43. 고바이 권(紅梅巻)
44. 다케카와 권(竹河巻)
45. 하시히메 권(橋姫巻)
46. 모밀잣밤나무 권(椎本巻)
47. 잠자리매듭 권(総角巻)
48. 햇고사리 권(早蕨巻)
49. 겨우살이 권(宿木巻)
50. 정자 권(東屋巻)
51. 우키후네 권(浮舟巻)
52. 하루살이 권(蜻蛉巻)
53. 습자 권(手習巻)
54. 꿈의 부교 권(夢浮橋巻)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어느 천황의 치세 때였는지, 여어니 경의니 하는 신분의 후궁들이 많이 계신 가운데 최상의 귀족 집안은 아니었지만 각별히 총애를 받는 분이 계셨다. 처음 궁중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나야말로 하고 자부하고 계셨던 여어들은 이분을 눈에 거슬려하며 업신여기고 시기하셨다.
겐지는 덧없이 헤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하고 우시면서 얼굴을 들고 보시니 인적은 없고 달빛만 빛나고 있다. 이것이 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아버님의 자취가 남아 있는 듯한 느낌으로 하늘에는 구름이 정취 있게 깔려 있었다. 이 몇 년 동안 꿈속에서도 만나지 못해, 그립고 걱정하던 모습을 잠시나마 분명히 뵌 것이 언제까지나 환상으로 남아 있어, 자신이 이렇게 슬픔을 경험하고 목숨이 위태로워진 것을 돕기 위해 날아오신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런 천변지이가 오히려 잘 일어난 것이고, 꿈의 여운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 느껴져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다. 잠시 동안 가슴이 벅찬 느낌이 들고 어설프게 만났기에 현재의 슬픔도 잊고 있었으나, 꿈속에서 왜 좀 더 자세히 답변을 드리지 못했을까 하고 아쉬운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꿈에 볼 수 있을까 해서 일부러 자려고 했지만, 더 이상 잠이 들지 않고 새벽녘이 되어 버렸다.
여자는 어떻게 할까 하며 곤란하게 생각하면서도 겐지에게 무정하고 냉담하게 보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겐지는 취한 기분에 이성을 잃었던 탓인지 여자를 그냥 보내는 것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고, 여자 또한 젊고 연약해 강하게 거절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리라. 귀엽고 애처롭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 날이 밝고 있어 마음도 조급해진다. 더구나 여자는 이것저것 심란한 모습이다. 겐지는 “역시 이름을 알려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연락할 수 있겠어요? 설마 이대로 헤어져 버리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하고 말하자,
もの思ふに立ち舞ふべくもあらぬ身の
袖うちふりし心知りきや
근심에 잠겨 출래야 출 수 없는 자신이지만
당신을 위해 소매를 흔든 제 마음을 아시나요
(겐지)
から人の袖ふることは遠けれど
立ちゐにつけてあはれとは見き
당나라 사람이 소매를 흔든 고사는 잘 모르지만
당신의 몸짓에는 감동을 느끼네요
(후지쓰보)
篝火にたちそふ恋の煙こそ
世には絶えせぬほのほなりけれ
화톳불 연기와 같은 사랑의 연기야말로
끊임없는 타오르는 내 사랑의 불꽃
(겐지)
行く方なき空に消ちてよ篝火の
たよりにたぐふ煙とならば
끝없이 넓은 하늘에서 꺼주세요. 화톳불과
함께 타오르는 사랑의 연기라면
(다마카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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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가 얼마나 매혹적인 경험을 제공하는지 톨스토이나 프루스트와 비교해 보라.”
− ≪뉴스위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