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치지직거리는 흑백 텔레비전 모니터가 클로즈업된다. 그리고 줌 아웃되면서 그 모니터 속에서 긴 머리를 한 여자가 엉금엉금 기어 나온다.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일본 공포영화 <링>의 유명한 장면이다.
한때는 여름이면 어김없이 극장가에 걸리던 공포영화지만, 이제는 철을 가리지 않는다. 공포에 대한 정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심화되고 사회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종류의 공포가 자꾸 생겨나고 있다. 과거에는 귀신이나 악령이 공포의 대상이었다면, 요즘 공포의 대상은 사랑하는 이의 배신이 되기도 하고, 네트워크망의 익명성일 수도 있고, 계층의 대립 혹은 재난, 부에 대한 욕망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이렇게 다양해진 공포를 주제로 한 우리 영화를 대상으로 그 속에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분석한다. <변신>, <곤지암>, <기생충>, <타워>, <목격자>, <곡성>, <도어락>, <고 死: 피의 중간고사>, <감기>, <알포인트> 등 영화팬이 아니어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화제작을 포함, 27편의 영화를 10개의 주제로 나누어 어떤 공포가 우리사회를 지배하는지 분석했다. 독립영화 감독이기도 한 저자의 말대로 “공포영화는 그 사회의 반영”이어서 영화를 통해 공포의 시대에 사는 우리의 ‘찐’ 모습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시대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인지, 작은 힌트를 얻을 수도 있겠다.
저자 오세섭은 독립영화 감독이자 영화 연구자이고 교육자다. 어릴 때부터 공포영화를 탐닉해 왔으며, 이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공포영화의 이해”라는 강의를 진행해 왔다. 최근에는 새로운 개념의 좀비가 등장하는 장편 독립영화 <좀비는 좀비끼리 우리는 우리끼리>(2020)를 연출하기도 했다.
200자평
공포는 예민한 감각이다. 그리고 어디서나 존재한다. 괴물과 마주쳤을 때만 무서운 게 아니다. 어두운 지하실에서 작은 소리만 들려도 식은땀이 난다. 이렇게 인간은 생활 속에서 다양한 공포와 만나고 있다. 영화는 일찍부터 대중의 기호와 사회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더욱이 공포영화는 그 사회가 느끼는 두려움을 예민하게 포착해 왔다. 자본주의가 심화되고 사회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종류의 공포가 자꾸 생겨나고 있다. 이 책에서는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만들어진 공포영화와 미스터리, 스릴러, 재난 영화를 살펴보고 그 속에 담긴 한국 사회의 불안과 그 원인을 찾아보았다. 이는 나와 우리 사회를 바르게 알기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지은이
오세섭
영화 연구자이자 독립영화감독이다. 홍익대학교에서 교육학,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했다.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영상 시나리오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중앙대학교에서 “영상미디어를 통한 청소년의 자기표현”(2016)으로 영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 몰래 공포영화를 즐겨 봤으며, 이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공포영화의 이해”라는 강의를 진행해 왔다. 최근에는 새로운 개념의 좀비가 등장하는 장편 독립영화 <좀비는 좀비끼리 우리는 우리끼리>(2020)를 연출하기도 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영화교육으로 『청소년 영화교육의 이해』(2019), 고등학교 교과서 『영화 감상과 비평』(공저, 2018) 등을 집필했다. 또한 “코로나 혹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청소년 영화교육”(2020), “고교학점제에서의 영화교육 방향”(2020), “청소년 제작 영화에 나타난 자기표현으로서의 재현의 의미”(2020) 등의 학술논문을 발표했으며 “세종시 일제 잔재 아카이빙과 대응방안”(2020), “대전 · 세종 생활문화 상생 연구”(2019) 등 다양한 문화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차례
공포영화에 대해 알아야 할 몇 가지 것들
01 사랑하는 이의 배신: <변신> 외
02 온라인 익명성에 숨은 폭력: <곤지암> 외
03 계층과 계급 간의 싸움: <기생충> 외
04 갑자기 찾아온 재난 사고: <타워> 외
05 내 집, 아파트에 대한 욕망: <목격자> 외
06 종교의 변질, 악마의 역습: <곡성> 외
07 도시의 어두운 뒤편: <도어락> 외
08 학교가 곧 공포: <고死: 피의 중간고사> 외
09 전염병 시대: <감기> 외
10 한국 사회의 금기들: 외
책속으로
이렇듯 공포영화는 사회가 금지한 것, 사회가 무서워하는 것을 담고 있다. 인간의 본능과 이성 사이의 균열을 파고들며, 인간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것과 사회적 합리성 사이의 불균형을 드러낸다. 그것이 공포영화라는 형태로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숨긴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_ “공포영화에 대해 알아야 할 몇 가지 것들” 중에서
<장산범>이나 <변신>은 소중한 가족이 나를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바탕으로 한다. 여기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애착과 인간관계의 허상이 복합적으로 녹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익에 따라 인간관계 또한 쉽게 허물어진다. 필요에 따라 가족이 원수가 되고, 때론 친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말은 안 해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_ “01 사랑하는 이의 배신: <변신> 외” 중에서
영화는 기택의 가족과 문광의 가족을 기생충으로 묘사하고 있다. 부자이면서 남을 잘 믿는 박 사장네 가족에게 들러붙은 기생충. 그들은 숙주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운다. 하지만 숙주가 사라지면서 오히려 모두 망하고 만다.
_ “03 계층과 계급 간의 싸움: <기생충> 외 ” 중에서
아파트가 주요 거주 공간이 된 지금, 아파트가 가진 독립성은 때때로 단절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집에 갇히고 말았다.
_ “05 내 집, 아파트에 대한 욕망: <목격자> 외” 중에서
영화 속 학교는 살인이 난무하는 곳이다. 실제로 학교에서 그런 일은 없겠지만, 성적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지금의 학교는 피만 흘리지 않았을 뿐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이다.
_ “08 학교가 곧 공포: <고死: 피의 중간고사> 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