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편지와 문학의 매혹적 만남
내밀한 언어와 욕망, 배타성과 비밀스러움이 문학적 특성과 잘 맞아
연애편지부터 미봉인편지까지 10개 유형의 문학작품 비교
외국 고전문학부터 한국 대중문학까지, 편지체 문학의 진수 담아
문학작품에는 수많은 편지가 등장한다. 어떤 편지는 결정적인 인물처럼 서사를 이끌고 뒤흔든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영혼을 뒤흔든 사랑을 매순간 생생하게 기록하면서 사랑의 절정과 파국을 맞는다. 『이토록 긴 편지』에서 라마툴라이는 자신과 다른 여성들이 겪은 고난과 억압의 서사를 편지에 담는다. 이 편지는 그녀들을 옭아매던 악습을 부수기 위한 연대의 편지다. <와이셔츠>의 주인공은 집요하게 표면에 대해 쓰고, 상담가는 집요하게 이면을 응시한다. 익명의 이메일로 주고받는 Q&A는 삶을 뒤덮은 위선의 장막을 열어젖힌다. 이처럼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중요한 편지들의 목록은 무한히 이어진다.
이제 편지는 ‘레터(letter)’가 아니라 ‘메일(mail)’이 됐다. ‘레터’가 ‘쓰다’에 가깝다면, ‘메일’은 ‘보내다’에 가깝다. 문장 수정과 삭제는 펜과 지우개가 아니라 기계가 한다. 그럼에도 편지의 본질은 여전히 글쓰기다. 세상의 편지들이 사라져 가도 편지의 고유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편지의 고유함은 문학의 특성과 닮았다. 문학은 변함없이, 강력하게 편지를 불러온다. 편지는 문학과 마찬가지로 자기 존재를 확인하며 타자와 소통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편지는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인문학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이 책에서는 총 22편의 편지체 소설을 열 개의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각 유형마다 대표적인 작품을 2∼3편씩 소개한다. 편지의 유형에 따라 1700년대 작품부터 2000년대 작품, 한국문학과 외국문학, 장편과 단편, 고전명작과 대중문학을 교차하면서 읽는다. 편지체 소설은 편지가 지닌 고유한 속성을 파생하면서 외연을 확장한다. 독백성, 고백성, 대화성이라는 내적 장치와 편지의 종류, 매체의 특성, 시간적 공간적 거리, 발신과 수신 양상, 통신 방식 등 편지의 특성들이 다양한 작품에서 어우러진다.
200자평
편지체 문학은 발신자의 고백과 독백, 수신자와의 답장과 교환 등 발신과 수신의 양상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된다. 편지는 사라져 가지만 편지체 문학은 시대를 거듭하며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이 책은 편지체로 쓴 22편의 문학작품을 10개의 유형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1700년대 작품부터 2000년대 작품까지 한국문학과 외국문학, 장편과 단편, 고전명작과 대중문학을 교차하며 읽는다. 익숙한 작품은 새로운 시선으로, 낯선 작품은 친숙한 방식으로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지은이
이은정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교수다.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다. 인문고전과 현대문학, 한국문학과 외국문학, 정통문학과 대중문학, 단편과 장편, 시와 소설 등을 엮어서 함께 읽는 ‘A Beautiful Mix’의 읽기와 쓰기 수업을 지향한다. 저서로는 『김수영 혹은 시적 양심』(2006), 『현대시학의 두 구도』(1999), 공저로 『고전멘토』(2015), 『나를 쓴다-꽃띠들을 위한 자전적 글쓰기』(2014), 『한국어문학 여성주제어사전』(2013), 『명작의 풍경』(2010), 『공감-시로 읽는 삶의 풍경』(2007), 『명작 속에 숨어 있는 논술』(2005) 등이 있다.
차례
문학, 편지로 쓰다 – 손편지에서 이메일까지
01 연애편지, 독백과 고백 사이
02 우정편지, 자기내면과의 대화
03 다성적 편지, 욕망과 풍속의 기록
04 답장과 회답, 너와 나의 내력
05 옥중편지, 세계와의 불화와 화해
06 유서편지, 주체로 서기 위한 선언
07 위장편지, 거짓과 진실의 교차
08 디지털편지, 언제 어디든 일렉트로닉메일
09 타임슬립편지, 월경의 교신
10 미봉인편지, 사신과 문학의 경계
책속으로
편지의 고유함은 문학적 특성과 흡사하다. 문학은 변함없이 강력하게 편지를 불러온다. 문학 안에서 편지는 낡은 듯해도 가장 신선한 글쓰기다. 인간은 타인을 경유하지 않고는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느낄 수 없기 때문에, 편지는 여전히 자기 존재를 확인하며 타자와 소통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편지는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인문학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렇게 편지의 존재 이유는 문학의 존재 이유와 닮았다.
_ “문학, 편지로 쓰다 – 손편지에서 이메일까지” 중에서
이 편지가 소설 속 그녀에게 전해졌을지는 알 수 없다. 연애편지란 꼭 수신자를 향해서 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편지는 소중한 것이 지나가고 남아있는 빈터의 표상 같은 것이다. <상춘곡>의 긴 연애편지도 어느 한 시절 그녀가 있었지만 지금은 텅 빈 그 장소로 보내진 고백이다. 그들은 이제 ‘화톳불’ 같았던 사랑과 진실하게 이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시간과 연애편지를 쓰는 시간 사이에는 늘 시차가 존재하기에 연애편지와 이별편지는 종종 편지지의 앞뒷면으로 쓰인다.
_ “01 연애편지, 독백과 고백 사이” 중에서
어떤 편지는 매우 길고 어떤 편지는 메모처럼 짧다. 답장과 회신을 천천히 이어가면서 두 사람은 연인과 부부로 사는 동안 말하지 못한 이야기와 10년 전 겪은 사건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날의 고통이 흐려질 만큼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들은 침묵을 깰 용기를 낸다. 금수(錦繡)는 아름답게 놓은 수 혹은 아름다운 시문을 뜻하며 이 글에서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가 마치 수놓은 씨줄날줄처럼 쓰인 글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_ “04 답장과 회답, 너와 나의 내력” 중에서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주인공은 줄리엣이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엘리자베스가 있다. 이 소설은 나치 수용소의 실상과 나치 생존자들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 편지들의 분량은 많지 않으나 내용의 비중은 묵직하다. 엘리자베스가 보여 준 인간의 품위와 행동 뒤에는 강제수용소의 잔혹한 폭력과 고문, 강제노역자와 위안소의 처참한 실상, 인간의 광기와 악한 본능 그리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투쟁이 있었음을 전한다.
_ “05 옥중편지, 세계와의 불화와 화해” 중에서
“내 인생이 내 뜻과는 무관하게 흘러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무조건 면죄부를 주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십대 여성에 대한 통념과 편견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사랑하고 연애하며 성장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기에, 존대어가 욕설로 바뀌고 마침내 진심을 폭로하는 그녀의 편지는 연애의 위선을 벗어던진 가열한 선언이 된다.
_ “08 위장편지, 거짓과 진실의 교차” 중에서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 이 소설의 인상적인 문장이다.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선형적 시간이 휘어진 타임슬립으로 만나 인간의 보편적인 고민에 골몰하면서 편지를 주고받는다. 이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기도 하고 삶에 내재된 운명과 인연에 대한 대화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에 시공을 월경해 답장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과거의 그들도 현재의 우리도 함께 말하고 있다.
_ “09 타임슬립편지, 월경의 교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