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무아와드 전쟁 비극 삼부작의 종막
와즈디 무아와드는 열 살 때 내전 중인 고국 레바논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했다. 나중에야 레바논에서 벌어진 내전의 참혹한 실상을 전해 들은 무아와드는 죄의식과 부채감에 사로잡혀 전쟁, 테러, 폭력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전쟁 비극 삼부작’이라고도 부르는 ≪연안 지대≫, ≪화염≫, ≪숲≫은 그 결과다. 무아와드는 2006년 프랑스 아비뇽 연극제에서 세 작품을 한 편의 연극으로 구성해 11시간 동안 공연했고, 프랑스 관객은 긴 공연에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숲≫은 삼부작을 닫는 마지막 작품이다.
십대 소녀 루가 어머니 에메의 죽음을 계기로 가족사에 얽힌 비밀을 풀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루는 몬트리올 폴리테크닉 대학 총기 난사 사건에서 시작해 제1차 세계대전까지, 15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복잡하게 얽힌 가계도를 파헤치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간다. 어린 시절, 자신을 방치한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 여정의 끝에서 루는 비로소 어머니와 할머니, 조상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루의 이런 변화는 전쟁으로 상처 입은 모두에게 무아와드가 건네는 연대와 위로다. 무아와드는 ≪연안 지대≫와 ≪화염≫에서 현재 진행형인 전쟁을 비춘 뒤 ≪숲≫에서 반복되는 비극을 멈출 루의 성장을 보여 주며 드라마를 닫고 있다.
무아와드 세계관의 완성
무아와드는 삼부작에 걸쳐 전쟁의 본질에 다가간다. 근친상간, 복수의 이미지를 반복해서 사용한 것은 전쟁의 본질과 관련 있다. 대의와 명분은 실제 전쟁에 내몰린 개인에겐 공허한 구실일 뿐이다. 사실은 “누구를 향해 왜 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무차별한 공격을 계속해야 하는 게 전쟁이다. 총부리는 어느새 형제와 부모를 향하고, 천륜이 그렇게 무너진다. 무아와드는 전쟁이 인간성을 완전히 앗아 가 버린 경악할 순간으로 독자를 이끈다. 그리고 전쟁의 참상과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무너진 인간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 무아와드의 주인공들은 전쟁 때문에 증오와 복수, 폭력과 근친상간으로 뒤엉킨 가계도의 끝에서 아름다운 사랑과 위대한 희생을 보게 된다. 이를 통해 내전, 테러, 전쟁에는 가공할 증오와 폭력만 들어차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 또한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숲≫은 ≪연안 지대≫에서 시작해 ≪화염≫을 거치며 확장된 이런 무아와드 세계관의 종지부다.
200자평
≪숲≫은 ≪연안 지대≫, ≪화염≫과 함께 와즈디 무아와드의 전쟁 비극 삼부작으로 꼽힌다. 다른 두 작품이 중동, 특히 무아와드의 고국인 레바논 내전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면, ≪숲≫은 1차 세계대전부터 최근의 총기 난사 사건에 이르기까지 폭력이 난무한 현대사의 시간, 공간이 배경이 된다. 십대 소녀 루가 꽁꽁 뭉친 실타래를 풀 듯 150년에 걸친 가문의 역사에서 복잡하게 얽힌 가계도의 비밀을 풀어 가는 여정을 그렸다.
미스터리에 접근하는 추리 방식은 독자가 몰입과 긴장을 유지하며 주제에 공감하게 만드는 무아와드만의 전략이다. 무아와드가 이끄는 대로 미스터리를 추적하다 보면 폭력과 증오, 배신과 복수로 얼룩진 전쟁의 기원에 아름다운 사랑과 위대한 희생이 있음을 보게 된다. 국내 초역이다.
지은이
와즈디 무아와드는 1968년 레바논 데이르 엘 카마르(Deir El Kamar)에서 태어났다. 내전으로 열 살 되던 해에 고국을 떠나, 가족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다. 1983년에는 영주권 문제로 또다시 퀘벡으로 떠나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고등학교 연극반에서 활동하던 중 프랑스어 선생님 권유로 캐나다 국립연극학교에 입학해 1991년 연기 전공으로 졸업한다. 1990년에는 배우 이자벨 르블랑(Isabelle Leblanc)과 첫 극단인 ‘오 파를뢰르(Théâtre Ô Parleur)’를 창단해 공동 운영한다(1990∼1999). 2000년에는 몬트리올 서푼짜리 극단(Théâtre de Quat’Sous) 예술 감독을 지낸다(2000∼2004). 2005년부터 프랑스에 정착해 활동 무대를 넓힌다. 아비뇽 연극제, 낭트 그랑테(Grand T) 극장에서 활동했으며 현재는 파리 콜린국립극장을 이끌고 있다.
무아와드는 셰익스피어, 피란델로, 체호프 등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연안 지대>, <화염>, <숲>, <하늘> 등 자신이 쓴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매해 한두 작품을 무대에 올릴 만큼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희곡 외에도 ≪되찾은 얼굴≫, ≪심장 속의 포탄≫, ≪아니마≫ 등의 소설을 발표했고, 프랑스 정부, 프랑스 학술원, 프랑스 극작가협회 등이 수여하는 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임재일은 프랑스 샤를 뒬랭 및 스튜디오 연극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으며, 파리8대학에서 공연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에 국내 희곡 ≪밥≫, ≪진동아굿≫, ≪낙하산≫(아르마탕 출판사)을 번역해 아시아 현대 민중극을 소개한 바 있다. 주요 저서 및 역서로는 ≪Théâtre populaire coréen et Brecht≫(프랑스 PAF 출판사), ≪몰리에르 단막극선≫, ≪화염≫, ≪건축 마스터 마놀레≫(이상 지만지드라마)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에메의 뇌
레오니의 피
뤼스의 턱뼈
오데트의 배
엘렌의 몸
뤼디빈의 성(性)
루의 마음
부록 : 켈레르 가문의 가계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바티스트 : 그 애한테 뭐라고 전해 줄까, 그 애가 커서 물어보면 그 애한테 어떤 이야기를 전할까? 예전에 살인범이 있었다고? 열네 명의 여학생들이 강의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고? 그 애의 삶이 총격범한테 달렸었다고, 그 사람이 여학생들을 아래로 내려보내기 위해 남학생들로부터 떼어놓았다고? 총격범이 없었다면 그 애는 결코 태어나지 못했을 거라고? 그 애의 출생으로 엄마의 생명이 반으로 줄었다고 말할까?
-37쪽
사뮈엘 : 다미앙의 아버님이 모든 걸 얘기해 줬습니다. 그분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멀리서 나치에 의해 다미앙이 거리로 끌려나오는 걸 봤죠, 다미앙을 때리고 벽에 밀어붙였어요. 행인들이 지나가다 멈추는 걸 봤죠, 그분은 행인들 사이에서 태연하게 행동했습니다, 호기심에 우연히 멈춰 선 것처럼, 아들이 머리를 드는 걸 봤죠, 입에서 쏟아진 피를 닦는 걸 봤어요, 자기 앞에 시선이 멈추는 걸 봤죠, 그러다 갑자기 이런 흐름이 멈춘 것처럼 똑딱거리는 한순간에 두 사람 시선이 마주친 겁니다. 아버지와 아들. 믿기지 않는 1월의 햇살 아래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보고 웃었죠. 그렇지만 모든 걸 잃었어요, 두 사람 다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말 한마디, 어떠한 제스처, 구해 주려는 시도조차 필요 없었죠. 두 사람은 그걸 알고 있었어요,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 다 무엇을 보호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보다,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장교가 다시 때리기 시작했어요. 계속 때렸죠, 아들한테 아버지와 어머니의 암호명, 은신처, 기밀, 지하 조직, 조직원들의 이름과 우회로를 대라면서. 아들은 멀리서 계속 미소를 지었죠,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아버지, 여러 가지로 고맙습니다, 이 멋진 삶, 이 고통스런 삶, 빛으로 가득 찬 삶을 주셔서. 아시죠? 저는 아버지를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장교가 지근거리에서 총을 세 방 쐈어요. 한 발은 가슴에, 다른 한 발은 복부, 마지막 한 발은 다미앙의 미소를 향해 쏘고 싶었나 봐요, 그 어린애 같은 함박웃음을 향해, 아들은 구석에 쓰러지기 직전, 고문 기술자의 얼굴에 침을 뱉어 버렸어요, 그리고 영원히 아버지의 슬픔 속으로 쓰러져 갔죠,
-178-179쪽
루 : 폭풍우가 우리 삶에 거칠게 몰아쳐.이제 막 시작된 내 삶에서끝나 버린 엄마의 삶에서.내 피가 조상들의 피와 연결되었다고 생각해내가 약속들로 이어져 온 걸 알게 됐어조상님들이 했던 약속들로 이어져 온 걸.조상님들이 지킨 약속과.구원받은 삶, 잃어버린 삶, 주어진 삶.내가 고통에 빠지게 되면,불행을 막아 줄 부적처럼 조상님들의 이름을 되뇔게.오데트, 엘렌, 레오니, 뤼디빈, 사라, 뤼스, 에메, 루
-2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