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굴복하지 않는 인간
이 소설 속에서 노인은 이미 지도록 마련된 싸움을 최선을 다해 싸운다. 그리고 결국 패배한다. 그러나 그는 굴복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그는 승리의 상징인 사자 꿈을 꾼다.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것은 승패와 관계없이 패배를 뛰어넘는 인간 행위라는 헤밍웨이의 명제가 이 작품에서처럼 투명하고 감동적으로 표현된 곳은 없을 것이다.
1960년 11월, 그는 쿠바를 떠나 미국 중서부의 아이다호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두 차례 크게 앓았다. 1961년 7월 2일 아침, 치매 증세를 느끼고 엽총을 입에 대고 발사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은 병을 포함해서 그 무엇에고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자기 주인공들에게 돌려준 충실한 상징적인 행위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황동규 해설 중에서)
헤밍웨이와의 대화
헤밍웨이는 사실 굉장히 큰 인물이다. 현대사를 뒤흔든 양차 대전을 겪는 동안 그는 전장에 있었고, 냉전시대에는 쿠바에 있었다. 살아생전 그가 세계를 누비며 남긴 족적이 너무도 커서 헤밍웨이라는 인물이 그의 작품 세계에 드리운 그림자가 너무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작품은 계속해서 읽히고 있다. 어쩌면 오늘날의 독자들은 그의 그림자가 다소 걷힌 덕에 그의 작품들을 있는 그대로 오롯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문학을 읽는 즐거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시선들, 우리가 가 보지 못한 장소들, 우리가 살아 보지 못한 시대를 접할 수 있는 경험이 그 무엇보다 값진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헤밍웨이가 남긴 작품들을 통해서 그가 보았거나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헤밍웨이에게 동의할 필요는 없다. 소설 속 인물들과도 동의할 필요가 없다. 다만 20세기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한 사람이자 작가인 헤밍웨이가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들어보면 어떨까. 거기서부터 헤밍웨이와의 대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서주희 해설 중에서)
영미문학연구회에서 선정한 가장 잘된 번역
2004년 영미문학연구회에서는 당시 출간된 ≪노인과 바다≫ 총 49개 판본을 비교, 황동규의 번역을 “가장 잘된 번역”으로 선정했다. “원작의 작품성을 잘 살려냈고 헤밍웨이 문장의 함축적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 책은 한국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가장 헤밍웨이다운, 가장 문학적인 번역이다.
고전과 독자를 잇는 다리, 서주희 박사의 심층해설
고전 작품과 현대 독자 사이에는 시공간과 문화의 넓고 깊은 골이 생긴다. 간략한 문학적 해설만으로는 이 골을 메울 수가 없다. 이를 위해 20세기 영문학을 연구한 서주희 박사가 헤밍웨이와 ≪노인과 바다≫를 무려 102쪽에 걸쳐 상세히 설명한다. 헤밍웨이의 삶, 문학세계, 그가 사랑한 쿠바, 등장인물 분석, 최근의 젠더 ․ 생태주의에 입각한 비평, 마놀린이 소년이 아닌 청년이라는 근래의 새로운 입장까지 소개한다.
펄펄 뛰어오르는 34장의 삽화
찰스 터니클리프(Charles F.Tunnicliffe)와 레이먼드 셰퍼드(Raymond Sheppard), 두 화가가 그린 수려한 삽화는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삽화를 통해 노인이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마치 영상을 보듯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조각배, 낚싯줄, 작살 등을 비롯한 어구들, 청새치, 만새기, 고깔해파리, 바다거북 등의 바다 생물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200자평
헤밍웨이는 1952년 ≪라이프≫에 중편소설 ≪노인과 바다≫를 발표한다. 기존의 소설들과 달리 쿠바에 거주하는 스페인인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 쿠바와 낚시에 대한 그의 애정이 고스란히 담긴, 상당히 담담하면서 강렬한 문체와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노인과 바다≫는 저물어 가던 헤밍웨이의 명성을 되찾아 준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54년 노벨상을 수상한다. 헤밍웨이는 단순히 유명 작가에서 나아가 미국문학사의 정전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노인과 바다≫는 그의 원숙함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평가받았다. 노쇠함과 죽음에 직면한 노인 산티아고가 청새치를 잡고 귀환하는 이야기는 마치 아프리카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를 극복하고 살아 돌아온 헤밍웨이 자신, 혹은 작가로서의 명성을 되찾은 ‘노인’ 헤밍웨이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히기도 한다.
지은이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1899년 일리노이 주 시카고의 교외 지역인 오크 파크(Oak Park)에서 차남으로 태어남. 아버지 클라렌스 헤밍웨이(Clarence Edmonds Hemingway)는 의사, 어머니 그레이스(Grace Hall Hemingway)는 음악 선생님. 위로 연년생 누나 마셀린(Marcelline)이 있었음.
1917년 고등학교 졸업. 10월에 ≪캔자스 시티 스타(Kansas City Star)≫에 수습기자로 취직.
1918년 5월 23일, 이탈리아에서 적십자 앰뷸런스 기사 일을 시작함. 7월 8일 포살타(Fossalta)에서 부상당한 뒤, 밀라노 병원에서 만난 간호사 아그네스(Agnes von Kurowsky)와 사랑에 빠짐.
1919년 아그네스로부터 거절당한 뒤 미국으로 돌아감.
1921년 9월 3일, 해들리 리처드슨(Hadley Richardson)과의 결혼. 연말 파리로 이주, ≪토론토 스타(Toronto Star)≫의 해외특파원으로 활동 시작.
1922년 파리 거주 중인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와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과 교류 시작. 같은 해 12월, 로잔(Lausanne)에서 과제 수행 중이던 헤밍웨이에게 가던 중, 해들리가 헤밍웨이의 출간되지 않은 원고가 들어 있는 가방을 잃어버림.
1923년 스페인 팜플로나(Pamplona)에서 투우 경기 관람. 10월, 토론토에서 첫째 아들 존 해들리, 일명 범비(Bumby) 출생.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단편집 출간.
1924년 소설가 포드 매덕스 포드(Ford Madox Ford)와 함께 ≪트랜스애틀란틱 리뷰≫편집. 단편소설 <인디언 캠프>를 비롯한 여러 초기 작품들 발표.
1925년 첫 단편소설집 ≪우리들의 시대에(In Our Time)≫ 발표. 같은 해에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와 교류 시작.
1926년 피츠제럴드를 통해 출판사 스크리브너(Scribner’s)와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Maxwell Perkins)를 소개받아 평생 동안 지속될 인연이 시작됨. 중편소설 <봄의 급류(The Torrents of Spring)>와 장편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 발표.
1927년 두 번째 단편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Men Without Women)≫ 발표. 해들리와 이혼하고 폴린 파이퍼(Pauline Pfeiffer)와 결혼.
1928년 파리를 떠나 미국 플로리다주 키웨스트로 이주. 아들 패트릭(Patrick) 출생. 아버지의 자살.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 발표.
1931년 아들 그레고리 핸콕(Gregory Hancock) 출생.
1932년 투우에 관한 논픽션 ≪오후의 죽음(Death in the Afternoon)≫ 발표.
1933년 세 번째 단편소설집 ≪승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Winner Take Nothing)≫ 발표. 훗날 발표할 많은 작품들, 가령 <킬리만자로의 눈>등의 배경이 될 아프리카로 사파리를 떠남.
1935년 사파리의 경험을 다룬 논픽션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Green Hills of Africa)≫ 발표.
1937년 스페인 내전의 종군기자로 활동. ≪유산자와 무산자(To Have or Have Not)≫ 출간.
1938년 헤밍웨이의 희곡 <제5열(The Fifth Column)>이 포함된 작품집 출간.
1939년 폴린과 결별. 쿠바 아바나 근처에 위치한 집 핀카 비히아(Finca Vigía)에 정착.
1940년 작가 마사 겔혼(Martha Gellhorn)과 결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발표.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특파원으로 활동,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 주요 전투 취재. 언론인 메리 웰쉬(Mary Welsh)와 교제 시작.
1945년 12월 마사와 이혼.
1946년 3월에 메리와 결혼. 쿠바와 아이다호주 케첨(Ketchum)을 오가며 생활.
1950년 ≪강을 건너 숲속으로(Across the River and into the Trees)≫를 출간, 비평가들로부터 혹평.
1952년 ≪라이프(Life)≫에 ≪노인과 바다≫를 발표.
1953년 메리와 함께 아프리카 사파리를 떠남.
1954년 아프리카에서 비행기 사고를 당하여 사망 오보가 남. 노벨문학상 수상.
1959년 건강 악화 중, 스페인에서 투우 경기 관람. 60세 맞이함.
1961년 우울증으로 쇼크 치료 받음. 7월 2일 총으로 자살. 아이다호주 선밸리(Sun Valley)에 묻힘.
1964년 1920년대 파리 생활을 다룬 회고록 ≪부정기 축제일(A Moveable Feast)≫이 사후 출간됨.
1970년 소설 ≪만류 속의 섬들(Islands in the Stream)≫이 사후 출간됨.
1972년 허구적 인물 닉을 중심으로 이미 발표된 단편소설들과 발표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모은 작품집 ≪닉 애덤스 이야기(The Nick Adams Stories)≫가 사후 출간됨.
1981년 헤밍웨이가 살아생전 주고받은 서신들(Ernest Hemingway: Selected Letters)이 헤밍웨이의 전기작가 카를로스 베이커(Carlos Baker)의 편집으로 출간됨.
1985년 투우에 관한 논픽션 ≪위험한 여름(The Dangerous Summer)≫과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의 기사들을 모은 ≪데이트라인 토론토(Dateline Toronto: The Complete Toronto Star Dispatches)≫가 출간됨.
1986년 소설 ≪에덴의 정원(The Garden of Eden)≫이 사후 출간됨.
1987년 이전에 발표된 단편소설들과 미발표 단편소설들을 모은 단편소설집(The Complete Short Stories of Ernest Hemingway) 출간됨.
1999년 1950년대의 아프리카 사파리를 다룬 자전적 소설 ≪여명의 진실(True at First Light)≫이 아들 패트릭의 편집으로 사후 출간됨.
2005년 자전적 소설 ≪여명의 진실≫이 다시 헤밍웨이 학자들에 의해 수정보완되어 ‘킬리만자로 아래(Under Kilimanjaro)’라는 제목의 논픽션으로 출간됨.
해설자
서주희는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19세기 미국소설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미국 노예제와 인종 문제를 중심으로 19세기, 20세기 미국 소설과 미국 문화를 연구하고 있고, 허먼 멜빌, 마크 트웨인, 제임스 볼드윈, 토니 모리슨 등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살아생전의 헤밍웨이처럼 고양이를 무척 사랑하여 현재 고양이 네 마리를 모시고 살고 있다.
옮긴이
황동규는 1958년 시 ‘시월’ ‘즐거운 편지’등으로 ≪현대문학≫의 추천을 통해 등단. 시집 ≪어떤 개인날≫(1961)로 시작해서 ≪풍장≫(1995), ≪겨울밤 0시 5분≫(2009), ≪사는 기쁨≫(2013), ≪오늘 하루만이라도≫(2020)에 이르기까지 17권의 시집을 냈다. ≪사랑의 뿌리≫(1976)에서 ≪삶의 향기 몇 점≫(2008)에 이르기까지 산문집 5권을 출간했다. 초기의 순수 서정시에서 출발해서 사회 참여를 거쳐 인간의 실존 문제, 죽음의 문제 추구로 옮겨 갔다는 평을 듣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뉴욕, 샌프란시스코와 채플 힐,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스웨덴 스톡홀름, 이탈리아 나폴리, 호주 시드니, 오스트리아 빈 등에서 영어 또는 한국어로 강연을 했다.
서울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과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수학했다. 국제창작계획 멤버로 1년간 아이오와대학 그리고 방문 교수로 뉴욕대학과 버클리대학에서 문학 연구를 했다. 1968년 서울대 교수로 들어가 2003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인문대 영문과 교수로 일했다. 보직으로는 영연방 연구소장과 대학신문사 주간을 맡았다. 현재는 서울대 명예교수.
차례
노인과 바다
굴복하지 않는 인간 / 황동규
해설 / 서주희
어니스트 헤밍웨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노인은 목덜미에 깊은 주름살을 지닌 몹시 여윈 사람이었다. 두 뺨에는 태양이 열대지방의 바다에 반사해 만들어 준 피부암의 갈색 반점들이 나 있었다. 그 반점들은 얼굴 양편 썩 아래까지 퍼져 있었고 그의 손은 낚싯줄에 걸린 무거운 고기들을 다루기 때문에 생긴 깊게 팬 상처 자국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생긴 상처는 아니었다. 고기 한 마리 없는 사막의 부식된 땅껍질처럼 오래된 상처들이었다.
눈을 제외하고 노인의 모든 것은 낡아 있었다. 바다와 같은 빛깔을 지닌 눈은 활기에 차 있었고, 패배를 모르는 눈이었다.
2.
그다음에는 기다란 금빛 해안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른 저녁 어스름을 타고 처음 몇 마리의 사자가 해안으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고 다른 사자들도 뒤따라왔다. 저녁 무렵 육지에서 바다로 부는 산들바람을 받으려 그는 닻을 내린 배의 이물 판자에 턱을 괴고 엎드려 사자들이 더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행복했다.
3.
상어는 아직 턱을 갈고리처럼 달고 고기에 매달려 있었다. 노인은 놈의 왼편 눈을 찔렀다. 상어는 아직 고기에 매달려 있었다.
“아직 해볼 테냐.” 노인이 말했다. 그리고 척추와 골통 사이를 내리찍었다. 이번에는 쉬웠다. 연골이 쪼개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노인은 노를 뒤집어 상어의 주둥이를 열려고 주둥이 사이에 노깃을 끼웠다. 노깃을 비틀어 상어가 떨어져 나갈 때 그는 말했다. “가라, 갈라노 놈아. 한 1마일 깊이까지 내려가라. 가서 친구를 만나 봐라. 혹시 네 어미 년인지는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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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작품 중 최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작품 중 단연 최고임을 시간이 증명하리. (윌리엄 포크너, ≪음향과 분노≫의 작가)
∙ 서사 기법에 정통하고, 독보적인 문체와 스타일로 현대 문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상 시상 이유)
∙ 헤밍웨이의 사전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그는 모두가 쓰고 이해하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말을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의 작가)
∙ 자신의 특장점을 누구보다 잘 살려 다시 한번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 장인의 귀환. (≪뉴욕 타임스≫)
∙ 사건과 묘사를 엮는 헤밍웨이의 오래된 재능이 빛을 발해 흔히 접하기 힘든 매력을 발산한다. (≪커커스 리뷰≫)
∙ 다른 어떤 작품보다 이 단순하고 비극적인 이야기에서 그의 상상의 나래가 활짝 펼쳐진다. (≪옵저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