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유의 서간문은 현존하는 문집 내에 50여 편이 남아 전한다. 이 책에서는 한유의 문집 원본에 들어 있는 서간문 50편 전부를 번역하고 간단한 작품 해설과 주석을 붙였다.
한유의 서간문은 수신인에 따라 각기 다른 말투와 형식을 사용했고, 주제의 설정이나 편장(篇章)의 구성 또한 작품마다 달라 변화의 묘미를 극도로 추구해 예술성이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용 면에서는 통상 세 부류로 분류한다. 첫째는 문학에 관한 견해를 피력한 것이고, 둘째는 친구나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서를 터놓고 이야기한 것이며, 셋째는 정계의 유력 인사에게 발탁 또는 천거를 요청한 것이다.
문학에 관한 견해를 피력한 서간문은 대부분 후학들이 가르침을 요청한 데 답하기 위해 쓴 것이다. 한유는 서간문을 통해 자신이 제창한 고문운동의 취지를 천명하고, 자신이 고문 학습과 창작 과정에서 겪은 소중한 체험을 청년들에게 일러 줌으로써 그들의 고문 창작을 지도하고 있다. 스승의 위치에서 후학의 물음에 답하는 글이면서도 한 수 가르쳐 준다는 거드름 피우는 태도가 아니라 대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진솔하고도 정성스럽게 일러 주고 있다.
막역한 친구나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글은 깊은 우정이 흘러넘치는 한편, 현실에 대한 강한 불만과 억울한 심정이 드러나 있기도 하다. 자신의 포부를 이야기하든, 회재불우(懷才不遇)의 정서를 토로하든, 친구에게 위로와 권면 또는 비판을 하든, 가식적인 언사가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정계의 유력 인사에게 발탁 또는 천거를 요청한 편지글은 자기 자신을 천거한 것과 제자나 친구를 천거한 것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자신을 천거한 편지글에는 고관인 수신인을 과도하게 추켜세우고 관직을 구하기에 급급한 작자의 심정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고 글의 표현 또한 절박한 작품도 있어 후대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성심을 바탕으로 정계의 유력 인사에게 논리 정연하고 정정당당하게 접근한 흔적도 적지 않다. 자신의 제자나 친구를 천거한 작품들은 글에 힘이 있고 언어가 간절하며 솔직한 심정을 담고 있어서, 재주를 품고도 실현할 기회를 만나지 못해 실의에 빠진 지식인들을 진정으로 돕고자 하는 바람을 잘 표현했다. 특히 이 부류의 글들은 곧이곧대로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뜻을 전해야 하는 관계로 문학적 기교가 높은 수준에 달해 글의 구상이나 언어 구사에 예측불허의 우여곡절과 변환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인간사는 날로 복잡다단해지고 세상살이 또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럴수록 장고를 거듭하며 한 글자 한 글자 고심해서 가려 쓴 옛사람들의 편지글이 더욱 그립지 않은가? 대문호 한유가 긴 호흡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고심해 쓴 편지글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200자평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자 고문운동(古文運動)을 펼친 것으로 유명한 한유. 그의 편지에는 문학에 대한 깊은 성찰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가난에 괴로워하고 과거 낙방에 좌절하며 친구의 불행에 슬퍼하고 제자를 아끼는 한 인간으로서의 한유의 모습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당대의 명문가답게 유려하고 섬세한 문장과 함께 인간 한유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 보자.
지은이
한유(韓愈, 768∼824)는 중국의 중당(中唐) 시기를 산 사상가요 정치가인 동시에 걸출한 산문 작가이며 특색 있는 시인으로, 사상계, 정계, 문단 등 다방면에서 걸출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자가 퇴지(退之)이고, 하양 사람이다. 본인이 본관을 창려로 자칭한 관계로, ‘한창려(韓昌黎)’로 부르기도 한다.
한유는 위진남북조를 거치면서 쇠퇴한 유학을 부흥시키고 불교와 도교를 배척하는 주장을 전개했으며, 군벌들의 지방 할거(割據)를 반대해 토벌 전쟁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고 당시의 정치적 폐단을 공격하는 데 용감했으며, 지방관으로 있을 때 백성들을 위해 많은 치적을 남겼다
산문 방면에서 그는 육조(六朝) 이래 문단을 풍미해 온 변문의 폐단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선진(先秦)과 양한(兩漢) 이전의 고문 전통을 회복할 것을 힘써 주장하면서 유종원 등 뜻을 같이하는 무리들을 이끌고 당대(唐代) 고문운동을 주도했으며 시가(詩歌) 방면에도 창조 정신을 발휘해 신기하고 웅건한 풍격의 독창적인 일가의 경지를 이룩했다.
옮긴이
이종한(李鍾漢)은 1958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1981년 계명대학교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1983년과 1992년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계명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국립대만사범대학(國立臺灣師範大學)과 미국 미네소타대학교(University of Minnesota)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일찍이 시로써 시를 논한 비평 양식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중국문학에서 연구가 미진한 분야인 산문 연구로 방향을 전환한 바 있으며, 중국 고전산문과 경서를 주로 강의하고 있다. ≪한유 산문의 분류와 의론산문≫, ≪한문 문법의 분석적 이해≫, ≪두보 시선≫, ≪당송 산문선≫, ≪중국산문간사≫(공역) 등의 저·역서와 <역대논시절구연구(歷代論詩絶句硏究)>, <한유 산문의 분석적 연구>, <한국에서의 한유 평가에 관한 연구>, <한중 양국의 ≪논어≫ ‘지(之)’ 자 해석에 관한 비교 연구>, <전문 문인으로서의 한유>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제1부 올바른 글쓰기
문장을 논하여 풍숙에게 보내는 편지(與馮宿論文書)
이익에게 답하는 편지(答李翊書)
재차 이익에게 답하는 편지(重答翊書)
울지분 군에게 답하는 편지(答尉遲生書)
이사석 수재에게 답하는 편지(答李秀才書)
진상 군에게 답하는 편지(答陳生書)
진상에게 답하는 편지(答陳商書)
유정부에게 답하는 편지(答劉正夫書)
제2부 친구야 제자들아
친구
후계에게 답하는 편지(答侯繼書)
최입지에게 답하는 편지(答崔立之書)
장적에게 답하는 편지(答張籍書)
재차 장적에게 답하는 편지(重答張籍書)
이고에게 보내는 편지(與李翶書)
맹동야에게 보내는 편지(與孟東野書)
위중행에게 보내는 편지(與衛中行書)
최군에게 보내는 편지(與崔羣書)
풍숙에게 답하는 편지(答馮宿書)
악주자사 어사중승 유공작에게 보내는 편지(與鄂州柳中丞書)
재차 악주자사 어사중승 유공작에게 보내는 편지(再與鄂州柳中丞書)
화주자사 이강 상서께 보내는 편지(與華州李尙書書)
공부상서 맹간에게 보내는 편지(與孟尙書書)
여의 산인에게 답하는 편지(答呂毉山人書)
제자
두존량 수재에게 답하는 편지(答竇秀才書)
양경지 군에게 답하는 편지(答楊子書)
기타
감찰시어사 원진에게 답하는 편지(答元侍御書)
시어사인 은유에게 답하는 편지(答殷侍御書)
경조윤이 어사대에 인사하러 가지 않는 것에 관해 친구에게 답하는 편지(京尹不臺參答友人書)
유주자사 이방고에게 답하는 편지(答渝州李使君書)
제3부 인재를 뽑아라
자천(自薦)
관리 임용 시험을 치를 때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應科目時與人書)
봉상절도사 형군아 상서께 보내는 편지(與鳳翔邢尙書書)
재상께 올리는 편지(上宰相書)
열아흐레 뒤에 다시 재상께 올리는 편지(後十九日復上書)
스무아흐레 뒤에 다시 재상께 올리는 편지(後廿九日復上書)
양양에 주재 중이신 우적 상공께 보내는 편지(與于襄陽書)
이실 상서께 올리는 편지(上李尙書書)
급사중 진경에게 보내는 편지(與陳給事書)
병부시랑 이손께 올리는 편지(上兵部李侍郞書)
양양 우적 상공께 올리는 편지(上襄陽于相公書)
상서 정여경 상공께 올리는 서계(上鄭尙書相公啓)
유수 정여경 상공께 올리는 서계(上留守鄭相公啓)
다른 사람의 대필로 천거를 요청하는 편지(爲人求薦書)
타인 천거(薦人)
호직균 군에게 답하는 편지(答胡生書)
사부원외랑 육참에게 보내는 편지(與祠部陸員外書)
장적을 대신해 절동관찰사 이손에게 보내는 편지(代張籍與李浙東書)
원자 상공께 보내는 편지(與袁相公書)
기타
서주 장건봉 복야께서 흰 토끼를 잡은 것을 하례드리는 편지(賀徐州張僕射白兎書)
우복야 장건봉 각하께 올리는 편지(上張僕射書)
우복야 장건봉 각하께 올리는 두 번째 편지(上張僕射第二書)
정여경 상공께 보내는 편지(與鄭相公書)
위박절도사 전홍정 복야께 답하는 편지(答魏博田僕射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문장의 기세는 물이요, 글은 물 위에 뜨는 물건입니다. 물살이 드세면 뜨는 물건은 크고 작고를 막론하고 다 뜹니다. 문장의 기세와 글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문장의 기세가 왕성하면 어구의 장단과 성조의 높낮이가 모두 잘 어울리게 됩니다.
<이익에게 답하는 편지>에서
그대와 헤어진 지 오래되었는데, 제가 그대를 생각하는 마음을 통해 그대가 늘 저를 잊지 않고 생각하고 있음을 압니다. 서로가 제각기 일에 얽매여 함께 모이지를 못하는데, 주위 다른 많은 사람들과는 그대를 대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매일같이 함께 생활하고 있으니, 그대는 내 마음이 즐거운지 즐겁지 않은지를 아실 것입니다. 내가 말을 하면 들어 주는 사람이 누구이며, 내가 시를 읊으면 화답하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말을 해도 들어 주는 사람이 없고, 시를 읊어도 화답하는 이가 없으며, 홀로 다닐 뿐 뜻이 맞는 벗이 없고, 옳고 그름도 저와 일치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대는 제 마음이 즐거운지 즐겁지 않은지를 아실 것입니다.
<맹동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현명하고 유능한 것과 어리석고 못난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고, 부귀와 빈천이나 화와 복은 하늘에 달려 있으며, 명성이 좋거나 나쁜 것은 타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은 제가 장차 힘써 할 것이고, 하늘에 달려 있고 타인에게 달려 있는 것은 제가 장차 그들에게 맡기고 저의 힘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위중행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저의 결점을 일러 주신 서신을 받았는데, 그대의 저에 대한 우정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지 않았다면 제가 어찌 이런 말씀을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친구 교제의 참된 도리가 끊어진 지 오래되어 서로 올바르게 타이르고 절차탁마하는 방식이 없어진 판이니, 제가 그대와 같은 친구를 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요! 저는 지금 세상 사람들이 귀가 있어도 자기들의 잘못을 듣지 못하는 것을 늘 가련하게 생각해 왔는데, 오직 황송하고 떨리는 심정으로 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듣지 못할까 두려워합니다. 지금 이후로 저는 그대에게 희망을 걸고자 합니다!
<풍숙에게 답하는 편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