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잡은 물고기의 정체
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안녕하세요. 북레터 인텔리겐치아입니다.
책에서 삽화는 빠른 이해를 돕지만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좋은 삽화는 작가의 의도를 새롭게 해석하여 제안하거나, 독자의 한계를 너머 보고 느낄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어 줘요. 특히 고전 문학만큼 삽화가 제 기능을 하는 장르도 없을 거예요. 당대의 생활과 사회상을 보여줘, 그야말로 구름 위를 딛고 뛰어다닐 수 있게 해주거든요.
p.11 돛대를 짊어진 노인과 작살을 손에 쥔 소년, 찰스 터니클리프, 레이먼드 셰퍼드 그림
p.54 큰 물고기와 싸우는 노인, 찰스 터니클리프, 레이먼드 셰퍼드 그림
최고의 헤밍웨이 번역
황동규가 번역한 ≪노인과 바다≫는 한국영미문학연구회가 49개의 판본을 비교하여 “가장 잘된 번역”으로 꼽은 책입니다. 20세기 영미문학 전문가 서주희 박사가 헤밍웨이와 ≪노인과 바다≫를 102쪽에 걸쳐 심층 해설한 글이 추가되었으며, 화가인 찰스 터니클리프와 레이먼드 셰퍼드가 그린 삽화 34장이 담긴, 그야말로 ≪노인과 바다≫의 ‘결정판’입니다. 가장 정확한 고증으로 그린 삽화를 통해 노인이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마치 영상을 보듯 생생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조각배, 낚싯줄, 작살 등을 비롯한 어구들, 청새치, 만새기, 고깔해파리, 바다거북 등의 바다 생물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해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1954년 헤밍웨이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작품입니다. 질 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싸우는, 인간이기에 가능한 행위와 가치가 감동적으로 그려집니다.
p.15 바둑 두는 여성들을 보고 있는 겐지, 源氏物語画帖(土佐光吉筆, 桃山時
代, 京都国立博物館蔵) p.41 단풍놀이 중 춤을 추는 겐지, 源氏物語色紙貼付屏風(伝土佐
光則筆, 江戸時代初期, 個人蔵) 일본문학의 정수를 맛보는 지름길
일본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겐지 이야기’로 불립니다. 완독이 어려운 현대의 독자들을 위한 책입니다. 방대한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권마다 본문 앞에 장소와 인물, 줄거리를 먼저 소개하고 본문 뒤에는 작품 해설을 달았습니다. 수십 년 간 이 작품을 연구해 온 권위자, 한국외국어대학교 김종덕 교수가 작품의 정수만 뽑아 옮겼기 때문에 이 한 권으로 전체의 내용을 짐작하는 데 무리가 없어요.
또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각 권마다 실려 있는 원색 그림입니다. 번역자 김종덕 교수가 제공한 것인데, 여러 화첩과 미술관에 소장된 ≪겐지 모노가타리≫관련 그림 중에 54컷을 골랐습니다. 1000년 전의 고전 작품을 눈으로도 보고, 가슴으로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p.3 중세 음유 시인들, 프랑스국립도서관
p.41 중세 중글뢰르들, 프랑스국립도서관
가벼움의 미학
파블리오(fabliau)는 중세(12~13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한 8음절 시구로 ‘웃음을 주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우화와 다르게 인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재미있고 특이한 짧은 모험 이야기죠. 이 문학이 주는 즐거움은 이야기 속에 산재되어 있는 사실적인 묘사에 있습니다. 다양한 인물들의 옷, 음식, 행동, 심리 상태를 접하면서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있던 중세 서민과 부르주아 가정의 일상생활과 삶의 파편들을 만나게 됩니다. 파블리오에는 신성의 영역이 없습니다. 잔혹하고 우스꽝스러운 성직자들이 사랑의 모험에서는 의기양양한 주인공이 됩니다. 솔직하고 가볍고 노골적이죠.
옮긴이들은 프랑스와 영국 전역의 도서관에서 이야기의 등장인물에 해당하는 삽화를 찾아 소개하여 이해를 돕습니다.
p.28 암사자와 자칼 편, 14~16세기 경 아랍에서 출판된 필사본
p.66 물개와 안카 편, 14~16세기 경 아랍에서 출판된 필사본
≪천일야화≫에 버금가는 아랍문학의 걸작
아랍의 탈무드라 불릴 만한 아랍의 대표적인 산문이자 우화집입니다. 네발짐승이나 새의 혀를 빌려 삶의 지혜와 교훈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통치자의 폭정과 만행을 신랄하게 풍자했습니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여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습니다.
지만지판에서는 독자들에게 흥미와 교훈을 가져다줄 수 있는 개별 이야기를 선별하여 소개했습니다. 특히 14~16세기 아랍 필사본의 삽화를 실었어요. 철저한 유일신 신앙에 우상숭배를 엄격히 금지하는 이슬람 문화에서는 인물이나 동물을 그린 그림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례적으로 ≪칼릴라와 딤나≫만 삽화가 포함된 필사본이 여럿 전해지는데, 대중에게 널리 읽히기 위함으로 짐작됩니다. 이 책의 그림은 영국 옥스퍼드 보들리언 도서관, 독일 바이에른 주립도서관에 디지털 소장된 13~16세기 필사본 중 완성도가 높고 보존 상태가 좋은 그림이 실린 원본에서 골라낸 것입니다.
본문 중,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아이헨베르크
p.141 말라깽이 말을 부리는 미콜카 꿈을 꾸는 라스콜니코프, 아이헨베르크
도스토옙스키가 인간 심리 묘사의 대가라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실제 주요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도 그리 많지 않죠. 많은 분량이 라스콜리니코프의 범행 전후의 심리 상태와 부활의 행로를 위해 작가가 세심히 그려 놓은 상징적인 사건, 만남, 그리고 예언적인 꿈들로 가득합니다. 그 흑백의 극단적인 조화가 삽화로 태어났습니다. 인물들의 기괴한 혹은 음울한 기저에 깔린 심리들이 세계적 일러스트 작가인 프리츠 아이헨베르크의 목판화 29점으로 묘사되어 작품의 몰입을 돕습니다.
도스토옙스키와 영혼의 친구를 자처하는 번역자는 해설에서 ≪죄와 벌≫에 나타난 숫자의 상징들, 성서와의 연관성, 19세기 나사로 라스콜니코프, 예수의 현신인 소냐, 많은 도스토옙스키 비평가들이 사족이라고 하는 에필로그에 대한 변호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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