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조용만의 텍스트에는 회의주의적 지식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시대적 우울 속에 유약한 인텔리의 표정으로 세계를 읽어 낸다. 그리하여 모순적인 현실을 극복하려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표피적으로 관찰할 뿐이다. 그들의 내면을 위로하는 위안의 대상이자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는 여성이다. 하지만 그 여성들은 심약한 남성 주인공과 달리 적극적으로 현실의 모순에 개입해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존재이거나 사상적 실천을 감당하는 타자들로 그려진다.
그의 1930년대 소설은 식민지 조선의 대도시 경성에서 취업 예비군이나 실업자로 살아가는 20대 청춘의 자화상을 핍진한 현실로 그려 낸다. 그 모습은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20대의 초상과 겹친다. 조용만은 짙은 허무주의적 색채로 식민지 조선의 도시를 채색하며 댄디보이의 시선으로 식민지 현실의 표면을 표현한다. 소설 내부에서 인텔리 남성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위안의 여성을 낭만적 구원의 존재이거나 동정과 위로의 대상으로 상정해 서사가 전개되는 구조적 유사성을 보여 준다.
조용만 소설의 안타까움은 1930년대에 보여준 문제의식을 식민지 시대와 식민지 시대를 넘어 분단 시대에까지 지속하지 못한 점이다. 1930년대 소설이 당대의 현실적 모순에 당면한 노동운동가의 모습과 허무주의적 지식인의 우울한 표정을 통해서라도 식민지 조선의 엄혹한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의 현실을 작품 면면에서 독해할 수 있도록 배치하고 있었다면 1940년대의 소설들은 ‘하나의 위안’ 거리를 찾는 식민지 조선의 인텔리이자 우울한 댄디보이의 무기력한 표정을 보여 준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육화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표피적 인상으로 피상적으로만 접근해서 그려냈을 뿐이다.
200자평
‘구인회’의 창립 회원이었던 조용만은 1930년대 식민지 경성을 무대로 현실 세계를 해부하고 묘파하기보다는 지식인 주인공의 내면 고백을 통해 모더니즘적 세계 인식을 보여 준다. 문학적 개인으로는 모더니스트였고 역사 앞에서는 반민족적 기회주의자가 된 그의 대표 단편 11편을 소개한다.
지은이
조용만(趙容萬, 1909∼1995)은 1909년 서울에서 부친이 영어 교사인 집안에서 태어난다. 일찍이 영문학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한 뒤 1930년 ≪비판≫에 <사랑과 행랑>을 발표하고 같은 해 ≪동광≫에 희곡 <가보세>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한다. 이후 희곡 작가와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1933년 김기림, 정지용, 이상, 김유정 등과 함께 순수문학을 표방했던 ‘구인회’를 조직해 활동한다.
대학 졸업 후에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영어를 강의했으며 1931년 ≪매일신보≫의 학예부 기자로 입사해 활동한다.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로 대표적인 친일 언론이었으며, 1945년 해방 무렵에는 학예부장 겸 논설위원을 지내고 있었을 정도로 오래 근무했다. 특히 기자 생활을 하면서 친일 문학인들이 결성한 ‘조선문인협회’에 발기인으로 참가하고, 태평양 전쟁을 지원하는 각종 기고 활동에 참여하며, 대표적 친일 문학잡지인 ≪국민문학≫에 일본어로 쓴 희곡 <광산의 밤(鑛山の夜)>(1944) 등을 발표하는 등 일제 말기에 지속적인 친일 창작 활동을 병행한다.
해방 이후에는 영자 신문인 ≪코리아타임스≫의 주필과 ≪서울신문≫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전쟁 종전 무렵인 1953년부터 20년 동안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의 교수로 재직한다. 한국전쟁 직전에 첫 창작집을 내기 위해 원고를 인쇄소에 맡겼으나 이 원고가 전쟁 중 소실되었다는 일화가 있으며, 이 사건과 함께 절친하던 구인회 시절의 동료들인 정지용, 박태원, 이태준이 전쟁 중 월북한 이후로는 창작 활동에 소극적으로 임한다. 반면에 이상, 정지용, 염상섭 등 근대 문학사의 유명 인물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초상≫, 자전 소설인 ≪구인회 만들 무렵≫ 등과 다수의 번역 작품들을 남긴다. 그는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을 주로 쓴 것으로 평가받는다. 단편집에 ≪북경의 기억≫, ≪만찬≫, ≪고향에 돌아와도≫, 수필집에 ≪세월의 너울을 벗고≫, 번역에 ≪두시선역(杜詩選譯)≫, ≪인간의 굴레≫, ≪포 단편소설≫, 기타 저서에 ≪문학개론≫, ≪육당 최남선≫, ≪일제하의 문화운동사≫ 등이 있다.
2002년 공개된 친일문학인 42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선정되었다. 2002년까지 밝혀진 친일 작품 수는 소설 3편과 기타 기고문 5편 등 총 8편이었다. 2005년 고려대학교 교내 단체인 일제잔재청산위원회가 발표한 ‘고려대 100년 속의 일제 잔재 1차 인물’ 10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엮은이
오태호는 1970년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서 태어났다. 1989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이후 1993년 졸업한 이래로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 과정을 마쳤다. 1998년 <황석영의 ≪장길산≫ 연구>로 석사 학위 논문을 쓴 뒤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적 삶에 대해 성찰을 하게 된다. 박사 과정을 수료한 2000년부터 경희대학교 등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비롯한 다양한 교양 과목과 전공 수업을 진행했다.
200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에 <오래된 서사, 중첩의 울림−황석영의 ≪오래된 정원≫론>이 당선된 이래로 현장 비평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2004년 <황석영 소설의 근대성과 탈근대성 연구>로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문학평론집으로 ≪오래된 서사≫(2005), ≪여백의 시학≫(2008), ≪환상통을 앓다≫(2012), ≪허공의 지도≫(2016), ≪공명하는 마음들≫(2020) 등을 출간했으며, 연구서로 ≪문학으로 읽는 북한≫(2020)을 상재했다. 2021년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례
사랑(舍廊)과 행랑(行廊)
방황
연말의 구직자
허희(歔欷)
로마에서의 첫날 밤
배신자의 편지
초종기(初終記)
북경의 기억
여정
만찬
이 두 사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벌써부터 이야기할려고 했는데 거기 앉게.”
마님은 책을 옆에다 엎어놓고 천천히 담배 서랍을 끌어당겼다. 이마에 내 천 자가 없고 눈을 흡뜨지 않는 것을 보아서 야단날 듯싶지는 않았다. 은동 어머니는 적이 마음을 놓고 윗목에 쪼그리고 앉았다.
“저 딴 게 아니라 자네 방을 내놓아야겠네.”
“네?”
마님은 청천벽력 같은 의외의 소리에 놀라서 떨리는 소리로 대답하는 어멈을 보면서 유유히 담배를 빨았다.
“자네도 아다시피 영감마님이 이번에 벼슬로 시골을 가시게 되어서 이 집은 세를 주고 다 내려갈 테니까 뭐 급하지는 않지만 차차 구해보란 말야.”
그래도 아무 말이 없이 실신한 사람같이 멍하니 앉아 있는 어멈을 보고 말을 이었다.
“자네 사정도 딱한 줄 알지만 어떡하나!”
−<사랑(舍廊)과 행랑(行廊)>에서
계집을 카페의 여급으로 넣어서 웃음과 아양을 팔게 하여 그것으로 하루하루를 먹어가는 젊은 실업자의 생활−용서는 매일 밤마다 참을 수 없는 굴욕과 우울을 느끼면서도, 그리하여 때때로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 자기도 없어지고 싶은 반역의 불길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목을 매어 끌리는 개돼지같이 모래를 씹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오는 것이었다.
−<연말의 구직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