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교회는 하나다>에 관해
이 글의 대전제는 교회는 단일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듯, 교회도 하나라는 것이다. 호먀코프는 이 글에서 프로테스탄티즘과 가톨릭교회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먼저, 성경만을 받아들이고 교회의 기초를 성경에만 두려는 사람을 비판하면서 프로테스탄티즘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주장에 맞서 교회가 자신의 것으로서 인정하는 모든 글은 성경이라고 진술한다. 다음으로, 그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고백이 완전한 교회의 신앙 고백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아들에게서’라는 뜻의 라틴어 필리오케(filioque)의 첨가는 거짓 교리를 담은 것이다. 교회와 그리스도가 분명히 고백해 온 것은, 성령이 아버지로부터 나오신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는 가톨릭교회의 주장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참된 교회는 하나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을 교회로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서구 신앙 고백에 대한 정교 그리스도인의 몇 마디>에 관해
이 글은 <교회는 하나다>와는 달리 상당히 논쟁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교리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교회가 분열한 본질에 대해 천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프로테스탄티즘을 참된 내용이 결여된 주관적인 종교이며, 엄밀히 말해서 종교가 아니라고 말한다. 겉으로 볼 때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공격의 성격을 띠고 있는 이 글은 프로테스탄티즘의 뿌리를 가톨릭에서 찾음으로써 결국 다시 가톨릭에 대한 공격의 성격을 띤다. 결국 그가 로마주의로 명명하는 가톨릭에 대한 공격이 이 글의 요지라고 할 수 있다.
호먀코프가 가톨릭과 그 연장으로서의 프로테스탄티즘을 비판하는 주된 근거는 그 양자가 모두 합리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데 있다. 합리주의는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에 대립되는 정교회의 정통성을 담보하는 원리로서 중요한 개념인 ‘전(全) 교회적’ 원칙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과 개인의 판단에 의존한다.
그는 독자들에게 합리주의에서 벗어나 불의로부터 비롯된 모든 결정들을 거부하며 다시금 교회의 하나 됨을 회복하라고 촉구한다.
이와 같이 호먀코프가 정교와 가톨릭, 프로테스탄티즘의 차이를 날카롭게 의식할 수 있었던 것은, 정교에 대한 깊고 온전한 헌신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또 보기에 따라서 다소 과격하게 느낄 수 있을 호먀코프의 주장은, 그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하여금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200자평
슬라브주의의 창시자이자 그 교의를 체계화한 사상가로 불리는 호먀코프. 러시아 신학에 새로운 흐름을 제시한 그의 대표적인 글 두 편을 한 권에 담았다. 두 글은 모두 정교 신학자의 입장에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을 조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두 기독교 세계에 대한 보다 명료한 이해와 더불어, 지금껏 낯설었던 기독교 세계의 또 다른 반쪽인 정교를 접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지은이
알렉세이 스테파노비치 호먀코프(Алексей Степанович Хомяков, 1804∼1860)는 19세기 러시아의 시인이자 슬라브주의의 교의를 체계화한 사상가, 그리고 대표적인 러시아의 정교 신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모스크바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 가정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수학할 당시 그는 독일 이상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았던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군 복무와 잠깐의 외국 생활 후 그는 러시아·터키 전쟁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으며 이 시기 역사극 <예르마크>(1832)를 집필했다. 전쟁이 끝난 후 호먀코프는 영지 경영에 몰두하며 183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슬라브주의 사상의 전파에 힘쓰기 시작했다. 슬라브주의 교의의 기본적인 입장은 그의 유명한 논문 <옛것과 새것에 관하여>(1839)에 서술되어 있다. 호먀코프는 1850년대 초반부터 점점 종교의 문제에 열중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 쓰인 대표적인 글 가운데 하나가 본서에 그중 일부가 번역된 <서구 신앙 고백에 대한 정교 그리스도인의 몇 마디>(1853∼1858)다. 호먀코프의 신학적 유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인 <교회는 하나다> 역시 본서에 그 전문이 번역되었다. 호먀코프는 1860년에 갑작스럽게 콜레라로 사망했다.
호먀코프의 초기 시들은 낭만주의적인 경향을 띠었으며, 1930년대 이후에는 슬라브주의의 정신 아래 시를 창작했다. 1854년에 창작된 <러시아>는 당시 진보 진영에서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호먀코프는 서구인들의 정교에 대한 판단에 매우 큰 관심을 기울였으며 동시대 서구의 종교적·철학적인 문학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러한 관심이 그로 하여금 몇 편의 주목할 만한 신학적인 글을 쓰도록 자극했으며 그 결과, 그는 러시아 신학의 역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옮긴이
허선화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노어노문학과에서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대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성서의 상호텍스트성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을 떠나 러시아문학연구소(일명 푸시킨 연구소)에서 도스토옙스키 연구의 권위자인 V. E. 베틀롭스카야의 지도 아래, 도스토옙스키 미학의 문제들을 정교 콘텍스트 속에서 연구한 박사 논문을 썼다. 귀국 후에는 고려대학교와 부산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과 역사 등을 주로 강의해 왔다. 러시아의 기독교 문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과 함께 ‘러시아기독문화연구회’를 만들어 매달 독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공동으로 ≪바흐친과 기독교 : 믿음의 감정≫(부산대학교출판부, 2009)을 번역했다.
허선화는 기독교 신자로서 학문과 신앙의 통합에 관심이 많다. 도스토옙스키는 서구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기독교 작가로서,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그의 작품들에 나타난 심오한 기독교적 주제들을 연구하려 한다. 이 주제와 연관하여 그동안 발표한 논문들로는 <조시마 장로의 형상에 나타난 정교 이콘화 특성의 연구>, <도스또예프스끼 창작에 나타난 미 인식의 문제>, <도스또예프스끼 후기 소설 속의 그리스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타난 신 인식의 변화>, <도스또예프스끼 후기 소설 속의 수도원 공간> 등이 있다. 또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나타난 다양한 인간 심리의 양상에도 관심이 많다. 도스토옙스키 작품에 나타난 자기 비하, 공상, 공포, 수치심 등의 심리적 테마를 다룬 논문을 쓴 바 있고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더욱 확장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를 통한 문학과 신학, 심리학의 통합적 연구를 꿈꾸고 있다.
차례
교회는 하나다
서구 신앙 고백에 대한 정교 그리스도인의 몇 마디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교회는 하나의 사도적인 거룩한(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공회라고 불린다. 교회는 하나이며 거룩하고 어느 지역이 아닌 모든 세상에 속하며 교회에 의해 어느 한 민족이나 한 나라뿐 아니라 모든 인류와 모든 땅이 거룩해진다. 교회의 본질은 모든 땅에서 교회를 인정하는 모든 지체들의 삶과 영의 일치와 단일성에 있다. 교회의 믿음과 소망, 사랑의 충만함은 성경과 사도들의 가르침 안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