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완성판으로 문학성이 가장 높은 B버전을 번역
≪농부 피어스의 꿈≫은 세 번에 걸친 개작으로 A, B, C 버전이 존재하지만 A와 C 버전은 미완성이고 B 버전만이 완성판으로 가장 문학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문과 12장으로 이루어진 A 버전은 1362∼1363년에, 서문과 20장으로 이루어진 B 버전은 1376∼1377년에, 서문과 23장으로 이루어진 C 버전은 1393∼1398년에 각각 쓰였다. 이 번역의 텍스트로는 ≪The Vision of Piers Plowman: A Complete Edition of the B-Text≫와 스텔라 브룩이 편집한 ≪Piers Plowman: Selections from the B-text as found in Bodleian MS. Laud Misc. 581≫을 참조했다. B 텍스트의 7247줄이나 되는 긴 분량의 작품을 약 1000줄로 줄이면서 원작의 내용을 최대한 손상시키지 않고 잘 전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따르면서 가장 흥미 있고 역동적인 장면을 발췌해 번역했다. 첫 번째 꿈에서 프롤로그와 1, 2장, 두 번째 꿈에서 5장, 네 번째 꿈에서 13, 14장, 다섯 번째 꿈에서 15장, 여섯 번째 꿈의 18장, 일곱 번째 꿈의 19장, 여덟 번째 꿈의 20장을 번역했다. 발췌 번역의 한계성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기 위해 줄거리 요약을 참고로 실었다.
구원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의 주제는 구원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탐구다. 제프리 초서가 영시의 아버지로 불리며 수사학적 기교, 문체, 도시민의 일상어 사용, 재미와 교훈적 내용 등으로 당대 인기를 얻었다면, 랭글런드는 당시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두운 시의 형식을 사용했고 시적 언어의 모델보다는 사회와 종교의 부패를 비판하는 개혁자로 각인되었다. 랭글런드는 초서와 달리 가난한 자의 삶을 작품 속에서 다루었고 당시 시대적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작가는 마치 구약에 나오는 선지자처럼 꿈이란 기제를 통해 세상에 경고를 했다. 중세에 유행하던 드림 알레고리란 장르로 작가는 자신이 꿈을 꾸었다는 가정하에 꿈 내용을 서술한다. 꿈이란 장치가 비사실적, 환상적이지만 숨겨진 형태로 진리를 전달할 수 있는 유용한 장치로 보았다.
200자평
국내 초역. 중세 영문학의 걸작인 ≪캔터베리 이야기≫에 버금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14세기 영국 평민들의 삶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고, 종교적·사회적 정의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순례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 ≪캔터베리 이야기≫가 런던에서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순교자 베켓 성인을 찾아가는 순례 여행을 그리고 있다면, 이 책에서는 ‘성 진리’를 찾아 순례에 오른다. 그러나 여기서의 순례는 지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속, 내면세계로의 순례 여행이다.
지은이
윌리엄 랭글런드는 중세 영국의 대표적 작가인 제프리 초서와 동시대를 살았다. ≪캔터베리 이야기≫ 말고도 많은 작품을 남긴 초서와 달리 랭글런드는 ≪농부 피어스의 꿈≫ 단 한 편의 작품을 썼을 뿐이지만 이는 당시 매우 인기 있던 작품으로 50∼60개의 원고가 전해오고 있다. 랭글런드는 일생을 통해 이 작품 하나를 계속 다시 써서 세 개의 판본인 A(2567행), B(7247행), C(7357행) 텍스트가 전해온다.
랭글런드에 대해서는 개인적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오직 작품을 근거로 추측해 볼 수밖에 없다. 랭글런드는 1331년 혹은 1332년에 맬번 힐 근처에서 로케일의 유스타스의 서자로 출생했다. 그는 베네딕트 수도원 혹은 시스테리안 수도원에서 몇 년간 수업을 받은 뒤 말단 성직자로 부임한다. 얼마 동안은 런던의 콘힐에서 아내 키트와 살면서 죽은 자의 명복을 빌어주는 사제로 봉직했고 1387년 혹은 1389년에 죽었다. 랭글런드는 이 작품의 장르로 꿈의 내용을 전하는 드림 알레고리, 특히 의인화 알레고리를 채택해 주인공인 화자가 꾸는 꿈의 내용을 이야기한다. 꿈이라는 장치가 갖는 비현실성, 예언성, 추상성 등을 활용해 현실에 대한 비판, 직언, 풍자를 한다. 랭글런드 자신은 보수주의자였던 것으로 보이나 후대의 독자들은 이 작품이 진보적·개혁적 성향을 띤 것으로 읽었다.
옮긴이
김정애는 현재 경희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로 중세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캔터베리 이야기 연구: 아리스토텔레스적 접근>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재직 기간 중 중세영문학 분야의 작가 및 작품들, 제프리 초서, 윌리암 갱랜드, 존 가워, 중세 드라마를 강의하고 연구했다.
차례
첫 번째 꿈
프롤로그
제1장
제2장
두 번째 꿈
제5장
네 번째 꿈
제13장
제14장
다섯 번째 꿈
제15장
여섯 번째 꿈
제18장
일곱 번째 꿈
제19장
여덟 번째 꿈
제20장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진리라고 불리는 성인에 대해 아십니까?
그가 사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해 줄 수 있습니까?
아니오! 그 남자가 말했다.
이곳 말고는 진리에 대해 묻는
지팡이와 보따리를 든 순례자는 만난 적이 없소.
이 때 한 농부가 나서며 말했다. 성 베드로의 이름으로 말하건대
학자가 책에 대해 알듯이 내가 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양심과 지혜가 나에게 그가 사는 곳을 알려 주었고
내가 일할 수 있는 한 그를 위해 씨 뿌리고 가꾸며
영원히 그를 위해 살 것을 맹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