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존 웹스터는 셰익스피어에 비견되는 영국의 극작가다. 셰익스피어가 30여 편의 비극, 희극, 역사극을 통해 극작가로서 입지를 굳건히 한 반면 존 웹스터는 <하얀 악마>와 <말피의 공작부인> 단 두 편으로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극작가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말피의 공작부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존 웹스터의 대표작이자 최고 걸작이다.
이탈리아 아말피의 공작부인이 가문의 명을 따르지 않고 비밀리에 집사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다는 소문이 퍼진다. 이 일로 공작부인은 형제들에게 살해당한다. 이탈리아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 사건은 소설로, 야사로 각색되어 후대에 전해졌고, 번역되어 영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웹스터는 이 사건을 모티프로 <마피의 공작부인>을 썼다.
아말피 공작부인 사건은 그 내용이 충격적이고 끔찍했던 만큼 당대 작가들에게 인기 있는 소재였다. 하지만 존 웹스터는 누구와도 다른 특별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공국의 통치자라는 권위와 책임을 뒤로하고 신분이 천한 집사와 통정해 아이까지 낳은 공작부인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여러 소설과 야사에서 공작부인은 성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유혹자, 악녀로 비하된다. 웹스터는 그녀를 지위와 신분으로부터 분리해 사랑과 결혼이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갈망에 충실했던 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그 결과 존 웹스터의 희곡에서 신분을 초월한 공작부인의 사랑은 낭만적이고 순수한 감정의 결정으로 비쳐진다. 또한 모든 걸 희생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택한 공작부인의 결정은 고전 비극의 영웅적인 주인공으로서 손색없는 고결함을 보여 준다.
동시에 존 웹스터는 인간적 본능에 충실했던 공작부인의 비극적인 말로를 통해 종교, 가문, 명예, 관습과 도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극단적인 폭력을 고발한다. 폭력의 주체는 가톨릭 교회의 지도자, 고귀한 가문 출신인 공작부인의 형제들이다. 앞에서는 명예, 도덕, 양심을 내세우면서 뒤에선 세속적인 욕망을 드러내며 저주와 복수, 마지막엔 살인이라는 악덕을 쌓는다. 역설적으로 이들이 ‘불명예’의 죄목으로 단죄했던 공작부인은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명예’로운 종말로 비극의 주인공다운 면모를 보인다. 결국 <말피의 공작부인>은 사악한 인간의 실체와 동시에 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무력한 운명을 매우 냉정하게 보여 주는 웹스터식 비극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200자평
이탈리아 아말피에서 공작부인이 가문의 명을 어기고 집사와 비밀리에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다가 형제들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료는 가문의 명예를 저버린 공작부인을 욕망의 화신으로 묘사했다. 재커비언 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 존 웹스터는 이 사건을 모티프로 작품을 구상하면서 공작부인을 고귀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그려 낸다. 군주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모든 걸 포기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는 공작부인은 고전 비극의 영웅적인 주인공으로서 손색없는 고결함을 보여 준다.
존 웹스터의 대표작이다.
지은이
존 웹스터(John Webster)는 영국 재커비언(Jacobean) 시대의 대표적인 극작가로 동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출생 연도가 정확하지 않다. 다만 그의 부모가 1577년 11월에 결혼한 사실에 근거하여 런던에서 1578년에서 1579년 혹은 늦게는 1580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작가와 같은 이름의 그의 아버지는 마차와 수레 제조업자였으며 어머니 엘리자베스 코츠(Elizabeth Coates)는 대장장이의 딸이었다. 웹스터의 사적인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오로지 그가 남긴 글이나 작품을 통해서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가족이 살았던 런던의 성묘교구(St. Sepulchre’s parish)에 보관되었을 작가의 호적이 1666년 런던 대화재로 소실되어 그의 출생뿐만 아니라 사망에 대한 기록도 찾을 수가 없다.
옮긴이
이영주는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와 경희대, 성균관대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장안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영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고전·르네상스영문학회, 한국현대영미드라마학회, 한국 셰익스피어학회의 편집이사 총무이사, 재무이사를 지냈고, 현재 한국고전중세르네상스영문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브라이언 프리엘의 Dancing at Lughnasa: 여성을 통한 아일랜드적 특수성과 보편성 다시 읽기>. <≪탬벌레인 대왕≫: 르네쌍스 휴머니즘 정신과 그 딜레마>, <알프레드 유리 극의 남부와 인종주의: Driving Miss Daisy와 The Last Night of Ballyhoo를 중심으로>, <셰익스피어와 르네상스 극에 나타난 남녀 마법사의 재현의 차이와 그 의미>, <Comic Vision in the Absurd World: The Homecoming>, <The Goat, or Who Is Sylvia?와 올비의 성담론> 등으로 주로 영미 드라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공저로는 ≪영국 르네상스 드라마의 세계 2 : 스튜어트 왕조편≫, ≪영문학으로 문화읽기≫, ≪뉴 밀레니엄시대의 영미 극작가 동향≫, ≪미국 현대 드라마 : 수전 글래스펄부터 마거릿 에드슨까지≫, ≪21세기 영미희곡, 어디로 가는가?≫, ≪퓰리처상을 통해 본 현대 미국연극≫, ≪영어독서교육과 서평≫ 등이 있고 ≪아가멤논≫, ≪불출들의 달≫, ≪오셀로≫, ≪베이컨 수사와 번게이 수사≫, ≪말피의 공작부인≫ 등을 번역 출간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과] 배우 이름
1막
2막
3막
4막
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공작부인 : 그런다고 날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 왕가의 내 친척 모두
이 결혼을 방해한다 해도,
난 그들을 내 발밑 징검다리로 만들 테다. 그리고 바로 지금처럼,
이렇게 증오에 찬 상태에서도, 대단한 전투에 참여한 남자들이,
위험에 맞섬으로써, 거의 불가능한 전과를
성취했던 것처럼, 군인들이 그리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으니,
그렇게 난 두려움과 협박을 뚫고
이 위험한 모험을 시도할 테다. 내가 눈을 감고 남편을 골랐다고
늙은 아낙네들이 떠들어 대라지 뭐. − 카리올라,
너도 아는 비밀이지만 나는 내 목숨보다도
더한 것을 포기했단다.− 내 명성 말이야.
-37-38쪽
공작부인 : 저세상에서는 아주
훌륭한 벗들을 만나는 것으로 아는데,
누가 죽음을 무서워하겠느냐?
보솔라 : 그렇지만, 제 생각에,
부인이 죽는 방식은 많이 괴로울 겁니다.
저 밧줄이 무서울 겁니다.
공작부인 : 조금도.
내 목을 다이아몬드로 자른다 한들 좋을 게
뭐겠느냐? 혹은 계피로 질식사를
시킨다 한들? 아니면 진주로 쏴서 죽인다면?
난 죽음이 수만 개의 문을 갖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리로 퇴장한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문들은
아주 기이한 기하학적인 경첩으로 움직여서,
양쪽으로 열 수 있다더군. 어쨌거나, 제발이지,
그래서 네놈 귀엣말에서 벗어나면 좋겠구나. 오라버니들에게는
내가 죽음을, 이제 난 완전히 깨달았으니, 그것이 그들이 줄 수 있거나
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인식한다 전하거라.
난 이제 기꺼이 여자의 마지막 결함을 버리겠다.
너희들을 지루하게 하진 않을 것이야.
-1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