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체코 낭만주의 대표작
1853년에 초판이 출판된 카렐 야로미르 에르벤(Karel Jaromír Erben)의 ≪민담의 꽃다발(Kytice z pověstí národních)≫은 19세기 전반 체코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일 뿐 아니라 체코 문학 3대 고전 중의 하나이고 체코 문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다. 13편의 발라드들로 구성된 ≪민담의 꽃다발≫은 1834년부터 약 20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으로 시인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며 그의 필생의 작품이다.
유럽에 낭만주의가 퍼진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체코는 합스부르크 군주국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민족 부흥 운동이 한창이었다. 이에 따라 체코 낭만주의는 자연히 애국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에르벤도 한때는 애국 낭만주의에 경도되었으나 1830년대 중반 민속 발라드에 관심을 가지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 혹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라는 실존의 문제로 방향을 전환한다.
체코 문학 발라드
≪민담의 꽃다발≫은 발라드 모음집이다. 발라드는 중세 유럽에서 널리 퍼졌는데 처음에는 민속 문학 형태로 구전되다가 작가들이 이에 관심을 가지면서 문학 발라드로 발전했다. 에르벤은 민속 발라드의 주제와 형식을 차용해 이 발라드 모음집을 만들었다. 서정, 서사, 드라마를 특징으로 하는 민속 발라드의 예술 기교와 전통을 십분 활용해 극적인 전개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다양한 운율과 각운을 도입하고 민속어를 활용해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 에르벤은 이 작품으로 ≪5월≫의 시인 마하와 더불어 체코 시의 “”위대한 창시자”가 되었다. 이 작품은 네루다, 브르흘리츠키, 볼케르 등 많은 후배 시인들이 발라드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게 만들었고 마네스, 알레시, 즈르자비 같은 화가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드보르자크가 이를 바탕으로 교향시 <물의 정령 보드니크>, <정오 마녀 폴레드니체>, <황금물레>, <비둘기>, 칸타타 <혼례복>을 작곡했고, 피비흐는 멜로드라마 <성탄전야>, <물의 정령 보드니크>를, 노바크가 칸타타 <혼례복>을, 마르티누가 성악곡 <꽃다발>을 발표했으며, <혼례복>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 외에도 연극, 영화, 드라마 등 많은 예술 분야가 영감을 얻고 영향을 받음으로써 ≪민담의 꽃다발≫은 체코 예술의 영감의 보고가 되었다.
체코 민중에게 바치는 꽃다발
첫 작품인 <꽃다발>에는 어머니의 무덤을 찾는 아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꽃으로 환생한 어머니라는 전설의 마테르지도우슈카라는 꽃이 나온다. 엄마 잃은 아이를 위로하는 이 꽃은 넓은 의미로 보면 나라를 잃은 국민을 위로하는 민족의 어머니 혼을 의미한다. 체코 부흥 운동에 평생을 바친 에르벤은 조국의 혼이 깃든 민담들을 꽃다발로 엮어 나라 없이 타관을 떠도는 동포들에게 전하고 위로하려 한다. 이에 따라 수록된 작품은 1861년판에 추가된 <백합>을 제외하고는 앞뒤의 작품이 각각 주제별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첫 작품인 <꽃다발>과 마지막 작품 <여예언자>는 당시의 정치 상황에 대한 대응의 결과물로서 액자를 이루고, 그 속에 민족의 신화와 전설을 담은 11편의 이야기들을 넣어 민족정신을 함양하려 한 것이다.
200자평
19세기 체코 낭만주의의 대표작이자, 체코 문학 3대 고전의 하나로, 마하의 ≪5월≫과 함께 체코 근대시의 창시이자 효시가 된 작품이다. 마하가 저항과 반역, 염세주의와 회의주의를 기반으로 한 개인적 서정시를 썼던 데 비해, 단결과 연대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에르벤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이고 초개인적인 가치에 주목한다. 체코 부흥 운동에 평생을 바친 그는 조국의 혼이 깃든 민담을 발라드 형태로 엮어 나라 잃은 동포들을 위로한다. 권재일 교수의 상세한 해설과 필라 퓌르스토바의 삽화가 작품의 맛을 한층 더한다.
지은이
카렐 야로미르 에르벤(Karel Jaromír Erben, 1811∼1870)은 시인, 동화 작가, 민요 및 민화 수집가, 민속학자, 역사가, 언어학자, 번역가 등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다.
1811년 체코 중북부의 소도시 밀레틴에서 태어난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허약해 평생 폐혈관 장애와 이로 인한 발성 및 언어 장애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공부에 대한 열의와 재능을 보였다. 김나지움 시절부터 문학 지망생으로서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카렐 대학교에서 철학, 법학, 문학, 문헌학 등을 공부했고 여기서 틸(J. K. Tyl)이나 마하 등 당시 체코 민족 부흥 운동과 낭만주의 운동의 대표자들을 만나 ‘시인−애국자’라는 전형적인 길을 걸었다.
체코 민족 부흥 운동 제3기의 대표자 중 한 사람으로서 체코 민족 부흥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에르벤은 평생 동안 체코의 민요, 동요, 동화, 설화, 전설, 신화, 속담 등의 수집과 연구에 진력함으로써 체코 민속학과 체코 민속지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 되었고 체코 중세 문학의 연구와 출판에도 크게 공헌했다. 이처럼 학자로서 민족에 대한 봉사를 우선시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창작 활동은 뒷전이었지만 중간중간 발표한 발라드들을 한데 모은 ≪민담의 꽃다발≫은 체코 문학사에 길이 빛나는 고전이 되었다.
옮긴이
권재일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학교 슬라브어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체코 마사리크대학교 체코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체코 카렐대학교 극동학과 교환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체코·슬로바키아어과 학과장, 동 대학 동유럽대학장, 동 대학 도서관장, 한국동유럽발칸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역서로 밀란 쿤데라의 ≪농담≫, ≪히치하이킹 게임≫, 바츨라프 하벨의 ≪접견≫, 카렐 차페크의 ≪호르두발≫, 카렐 히네크 마하의 ≪5월≫, 저서로 ≪체코어ᐨ한국어사전≫(공동), ≪기초 체코어 강독≫(공동), ≪체코어 회화≫(공동), ≪체코.슬로바키아사≫, ≪Komparativní studie o proletářské poezii české a korejské v období 1920∼1930(1920∼1930년대 체코와 한국의 프롤레타리아 시 비교 연구)≫ 외 다수가 있다. 논문으로 <카렐 차페크의 소설 ≪호르두발≫의 이미지 체계>, <하셰크의 소설 ≪착한 병사 슈베이크≫의 구조와 인물>,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의 다성성>, <밀란 쿤데라의 초기 소설들의 우스꽝스러운 사랑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제 연구>, <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의 전기 문학의 특징>, <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의 후기 문학의 특징>, <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의 문학과 노벨 문학상>, <1920년대 체코 포에티즘(Poetism) 문학의 시인들>, <이르지 볼케르의 시와 체코 프롤레타리아 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전환기의 체코 아나키즘 시> 외 다수가 있다.
차례
꽃다발
보물
혼례복
정오 마녀 폴레드니체
황금 물레
성탄 전야
비둘기
자호르시의 침대
물의 정령 보드니크
버드나무
백합
딸의 저주
여예언자
해설
지은이에 대해
그린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꽃다발
어머니 죽어 무덤에 묻히고
고아로 남은 어린 아이들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고
엄마 찾았지.
어머니는 아이들이 하도 가여워
혼(魂)으로 돌아와
작디작은 꽃이 되어
자기 무덤 덮었지.
무덤 찾은 아이들
향기로 엄마 알아보고 몹시 기뻐했지.
위안 주는 꽃, 들에 핀 야생화
사람들은 엄마 혼 꽃, 마테르지도우슈카라 불렀지. −
우리 사랑하는 조국의 마테르지도우슈카여,
우리의 소박한 민담이여!
내 옛 무덤 위에 핀 그대 찾아 모았지 −
내 그대 누구에게 전해 주랴?
내 그대 엮어 자그마한 꽃다발 만들리라.
예쁜 리본으로 장식도 하리라.
내 그대에게 동포들 살고 있는 머나먼 땅
타국 땅으로 가는 길도 알려 주리라.
머나먼 타국에서 조국의 딸 만나면
그대 숨결 들려주고
조국의 아들 만나면
그대 마음 열어 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