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오래된 도시는 구질구질하고 낡은 도시가 아니다. 신도시, 대도시, 현대 도시의 대응 개념이다. 1980년대 이후 탄생된 신도시들을 제외한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들이 여기에 속한다. 새로운 미래의 참된 가치를 품고 있는, 빛나는 보석의 원석에 가깝다. 그래서 오래된 도시는 엄청난 비용과 큰 변화 없이도 조금만 가공하면 보석처럼 빛날 수 있다. 오래된 도시는 사랑하면 할수록, 지키고 가꾸려 하면 할수록 그 가치가 살아난다. 이 책에서는 오래된 도시의 요소 열 가지를 선택해 살펴보았다. 토지, 길, 자연, 집, 가게, 폐산업지, 항구, 기찻길, 풍경, 장소 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보석 같은 오래된 도시’에 대한 우리의 시선에 작은 변화가 나타나길 기대한다.
지은이
강동진
경성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에서 역사 환경 보전에 중심을 둔 도시설계(Historic Conservation in Urban Design)를 배웠다(석사·박사).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에서 실무를 했고, 대구한의대학교 건축학부를 거쳐 미국 오레곤대학교 방문학자를 지냈다. 현재 역사, 문화, 경관 등을 키워드로 하는 도시설계를 가르치고 있고 학생들이 도시의 창의적인 재생을 실천하며 도시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2001년부터 부산에 정착해 산업유산, 근대문화유산, 세계유산 등을 주제로 하는 각종 시민보전운동과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영도다리, 남선창고, 하야리아부대, 북항, 산복도로, 대청로, 동천, 동해남부선폐선부지 등이 주 대상들이며, 근자에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역사마을(하회와 양동), 남한산성 등과 등재 추진 중인 가야고분군, 피란수도부산에 대한 연구 활동에 참여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국제신문≫ ‘강동진 칼럼’을 통해 시민과 지역 중심의 도시에 대한 글을 싣고 있다. 주요 저서로 『부산을 알다』(공저, 2015), 『도시설계의 이해』(공저, 2014), 『황금빛 양동마을, 그 풍경 속에 담긴 삶』(2012), 『빨간벽돌창고와 노란전차: 산업유산으로 다시 살린 일본 이야기』(2008) 등이 있으며, “근대 관련 세계유산의 등재 경향 분석”(2017), “지속가능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개념 정의와 전개과정 분석(2017). “역사문화환경을 활용한 부산 도시재생의 특성과 지향”(2015) 등 50여 편의 논문이 있다.
차례
오래된 도시, 다시 보기
01 토지, 정교한 조각보를 닮다
02 길, 새롭게 도시 이야기를 쓰다
03 자연, 아직도 살아 있다
04 집, 기억과 마음을 담다
05 가게, 지역의 향취를 전하다
06 폐산업지, 도시의 미래를 보여 주다
07 항구, 삶의 희망을 노래하다
08 기찻길, 자율과 창의를 더하다
09 풍경, 그대로여서 더 정겹다
10 장소, 도시의 숨결이 머물다
책속으로
재난으로 변화를 멈춘 폼페이(Pompei)와 같은 도시들, 완벽한 이상 도시를 꿈꾸었던 팔마노바(Palma Nova)와 같은 계획도시들, 그리고 강력한 제도하에서 단기간에 건설된 신도시 등을 제외하면 오래된 도시들의 토지 구성은 대부분 자생적이고 매우 자유롭다. 원생의 자연을 따라 움직이는 구불구불한 길과 부정형의 필지, 오목한 땅에 저장된 물과 볼록한 땅에 지어진 낮은 집들의 자연스러운 조화는 오래된 도시의 기본 속성이다. 도시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그 속성들은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_“01 토지, 정교한 조각보를 닮다” 중에서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나 어르신들의 쉼터로서 골목길이 담당했던 근린 기능들이 사라지면서 아이들은 학원, 피시방, 후미진 집안의 개인 공간으로 내몰렸고, 할아버지 할머니들마저도 집이나 경로당에 갇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동네 입구의 골목시장, 골목길 전봇대의 노란 불빛, 도란도란 얘길 나누던 골목계단과 평상,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동네를 지켜 주는 골목 어귀의 반찬가게와 문방구들. 골목은 이렇게 사람 사는 모습들을 드러내던 친밀함의 상징이었는데, 오래된 도시의 골목길에서 이뤄졌던 공동체 이야기들은 급하게 우리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다.
_“02 길, 새롭게 도시 이야기를 쓰다” 중에서
폐허가 된 모든 산업지들이 저절로 산업유산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산업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국가 산업과 지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거나, 산업지의 규모가 지역 랜드마크로 인식될 정도로 크거나 특별하여 공간·경관 차원에서 차별적인 가치를 가져야 하고, 또한 타 용도로의 대체나 해체를 거부하는 지역민들의 묵시적 동의도 필요하다. 이처럼 폐산업지가 산업유산으로 인정받는 일은 제법 까다롭다. 그러나 인증을 받기만 하면 산업유산은 여러 모습으로 변신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체로 다가올 수 있다.
_“06 폐산업지, 도시의 미래를 보여 주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