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전세는 우리나라 주택 임대차 시장의 핵심 계약 형태다. 임차인이 주택 가격의 상당 부분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임대인에게 제공하고 계약 기간 동안 거주할 수 있다. 서민들에게는 주거 상향 이동의 디딤돌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강제 저축 효과를 내 목돈 마련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전세가 우리나라 주택 시장에 등장한 지 백년, 그 기원과 발전 과정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해 전세의 미래를 가늠해 본다. 전세의 역사를 우리나라와 서양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전세 시장에서 쓰이고 있는 기본 용어와 개념들을 정리했다. 전세 시장과 연결된 매매 시장이나 월세 시장도 함께 다루어 전세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조명했다.
지은이
김진유
경기대학교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다.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은 후 도시계획 엔지니어링회사에서 도시기본계획 및 관리계획 수립, 미니신도시 개발계획 수립 등에 참여했다. 한양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소, 대한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 등을 거쳐 경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시아부동산학회,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한국주택학회, 한국부동산분석학회, 한국감정평가학회 등 도시계획과 부동산, 주택관련 학회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세의 역사와 한국과 볼리비아의 전세 제도 비교분석”(2015), “아파트 실거래가와 거래량이 시세에 미치는 영향”(2012) 등 주택 및 부동산 관련 다수의 논문과 『주거복지, 길을 묻다』(2012), 『정직한 내집마련』(2007) 등의 저서가 있다.
차례
전세는 임대계약이자 금융이다
01 안티크레시스
02 전세의 역사
03 볼리비아와 인도의 전세
04 전세와 월세
05 전월세 전환율
06 전세와 매매
07 주택금융과 전세
08 전세의 권리와 의무
09 주택정책과 전세
10 전세(傳貰)와 전세(專貰)
책속으로
전세는 비공식적인 주택금융 시스템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소유한 주택의 점유 및 사용권을 내주고 보증금을 받아 필요한 목적에 사용하는 일종의 사금융 제도다. 전세가 주택 담보대출과 다른 점은 전세 보증금 형태로 대출을 받으면서 대출 이자 대신 소유 주택에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자를 내는 대신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전세는 비주택 부문에서도 나타나므로 사무실 임대나 상가 임대를 전세로 할 경우에는 그 공간을 점유해서 누릴 수 있는 서비스의 가치만큼을 대출 이자 대신 제공하는 셈이 된다. 실제로 주택금융 전문가들은 전세 계약의 본질을 금융거래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전세의 원류라고 볼 수 있는 가사 전당(家舍典當)이나 안티크레시스(antichresis)가 임대차의 목적보다는 원래 집을 제공하고 대출을 받는 제도였다는 사실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_“전세는 임대계약이자 금융이다” 중에서
나바로(Navarro, 2008)는 퍼브스(Purves, 1945)의 연구를 인용해 세계 최초의 전세(antichresis)가 기원전 15세기 수메리언 및 아카디언 메소포타미아문명(Sumerian and Akkadian Mesopotamian cultures)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누지(Nuzi)라는 고대 도시에서 발견된 점토판에 현재의 안티크레시스와 똑같은 형태의 계약이 이루어졌음을 증명해 주는 계약 내용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세 계약으로 추정되는 이 점토판에 새겨진 내용은 아버지(Uqari)가 아들(Taena)을 6년 동안 다른 사람(Tulpunᐨnaya)에게 빌려주고 보리를 빌려 오는 것이었다. 계약에 따르면 6년이 지나면 아들을 돌려받으면서 원래 빌려 온 양만큼의 보리를 갚아야 한다. 만약 빌려 온 남의 집 아들이 일터에 나타나지 않으면 하루당 구리 동전 한 닢을 아들의 아버지가 지불하기로 되어 있다. 하단에는 계약 내용을 보증하는 증인 14명의 이름이 부기되어 있다.
_“01 안티크레시스” 중에서
전세와 월세가 공존하는 우리나라 임대 시장에서 보증부 월세와 전세의 상호 전환 필요성은 전월세 전환율이라는 새로운 지표를 탄생시켰다. 이는 전세 시장이 없고 월세 시장이 압도적인 외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증금이 내포하고 있는 자본의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의 크기를 나타낸다.(중략) 전월세 전환율은 연리(年利)로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이며 보증금에 전환율을 곱하면 연세(월세×12개월)를 도출할 수 있다. 보증금 2억 원에 월세 100만 원인 보증부 월세 계약에서 보증금을 1억 원으로 낮추고 나머지 1억 원을 월세로 전환하려고 하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때 전월세 전환율이 6%라면 연세는 600만 원이 되고 월세는 50만 원이 된다. 이 경우 새로운 계약은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150만 원이 된다.
_“05 전월세 전환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