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세계 서간문학의 결정판
≪편지≫는 그 분량에서 루소, 볼테르, 괴테의 서간집보다 많으며 생트뵈브와 위고의 서간집을 훨씬 능가한다. 조르주 상드는 평생 4만여 통의 편지를 썼고 2000여 명에게 쓴 1만 8000통이 남아 있다. 이재희 교수는 30년 넘게 조르주 상드를 연구했고, 20년 동안 ≪편지≫를 연구하고 우리말로 옮겼다. 그가 가려 뽑은 510통의 ≪편지≫를 6권의 책에 담았다. 이재희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편지를 이보다 잘 쓸 수 있는 작가는 없다. 많은 작가들이 편지를 남겼고 책으로 묶여 나왔지만 양에서, 다양성에서, 진실성에서 조르주 상드의 편지는 압도적이다.”
살아 있는 19세기 인명 백과사전
그녀의 편지에는 리스트, 하이네, 발자크, 보들레르, 쇼팽, 뮈세, 플로베르, 고티에, 들라크루아, 투르게네프, 마르크스 등 19세기 유럽의 지성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들은 상드의 가족이고 친구다. 문학가, 음악가, 화가, 연극배우, 철학가, 정치가, 사상가, 종교가, 법률학자, 혁명가, 역사학자, 식물학자, 노동자… 그들과 사소한 가족 이야기에서부터 문학, 예술, 사상, 사회적 이슈, 정치적 사건, 사랑, 슬픔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나눈다.
이것이 조르주 상드의 매력이다
“산다는 것은 멋지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괴로움, 남편, 권태, 부채, 가족 그리고 가슴이 미어지는 고뇌와 끈질긴 중상모략에도 불구하고 산다는 것은 도취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며, 행복입니다. 천국입니다. 아! 나는 맹세코 예술가의 생애를 살고 싶습니다. 나의 좌우명은 자유입니다.”
– 1830년, 어느 여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1권 43번,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남편에게 고백하는 편지
전 세계의 조르주 상드 독자들에게 일명 ‘고백 편지’로 불리는 편지다. 오렐리앙 드 세즈와 사랑에 빠진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되자, 상드는 자신의 심경을 기나긴 편지로 남편에게 고백한다. 이때 상드의 나이 21세다. 21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성숙함과 솔직함, 현명함과 열정이 흘러넘친다. 당대의 지성이라는 남자들이 상드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편지≫ 1권 43번의 일독을 권한다.
키도 작고 예쁘지 않은 그녀가 당대 지성을 사로잡으며
‘사랑의 여신’이란 칭호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다 보니 그녀는 어느새 ‘스캔들의 여왕’이 되었다. ‘사랑의 여신’이란 칭호도 얻었다. 뮈세, 쇼팽과의 세기적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다. 키도 작고 예쁘지도 않은 그녀가 당대 지성들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린 이유가 뭐였을까? 그녀는 살롱에 출입하며 사교만 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정치혁명가였으며 사랑과 결혼, 교육에서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회개혁가였다. 예술지상주의자로서 ‘정열의 화신’이었으며 코즈모폴리턴, 여행가, 식물학자, 열렬한 음악 애호가이자 화가이기도 했다. 이런 조르주 상드의 진면목을 ≪편지≫에서 만날 수 있다.
≪편지≫에 대한 정보가 더 궁금하다면,
≪편지≫ 1권 v쪽, 옮긴이와의 인터뷰 <내 인생의 연인, 조르주 상드 그리고 그녀의 편지>에 번역과 출간 배경, 조르주 상드에 대한 인물 소개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편지≫의 정수를 짧은 시간에 맛보고 싶다면,
1권 43번(211쪽), 오렐리앙 드 세즈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남편에게 고백하는 편지
2권 91번(141쪽), 알프레드 드 뮈세에게 보내는 편지
138번(478쪽), 쇼팽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건지, 쇼팽의 친구에게 묻는 편지
3권 173번(214쪽), 민중시인 샤를 퐁시에게 보내는 편지
199번(376쪽), 외젠 들라클루아에게 보낸 편지
4권 226번(65쪽), 남자 친구 에마뉘엘 아라고에게 보낸 편지
5권 358번(336쪽),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에게 보낸 편지
377번(399쪽), 딸 솔랑주 클레쟁제에게 보낸 편지
6권 418번(54쪽) 빅토르 위고에게 보낸 편지
423번(78쪽), 평등에 대하여, 에두아르 로드리그에게 보낸 편지
483번(332쪽), 귀스타브 플로베르에게 보낸 편지
200자평
<편지>는 그 분량에서 루소, 볼테르, 괴테의 서간집보다 많으며 생트뵈브와 위고의 서간집을 훨씬 능가한다. 조르주 상드는 평생 4만여 통의 편지를 썼고 2000여 명에게 쓴 1만 8000통이 남아 있다. 이재희 교수는 30년 넘게 조르주 상드를 연구했고, 20년 동안 <편지>를 연구하고 우리말로 옮겼다. 그가 가려 뽑은 510통의 <편지>를 6권의 책에 담았다.
그녀의 편지에는 리스트, 하이네, 발자크, 보들레르, 쇼팽, 뮈세, 플로베르, 고티에, 들라크루아, 투르게네프, 마르크스 등 19세기 유럽의 지성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들은 상드의 가족이고 친구다. 문학가, 음악가, 철학가, 정치가, 노동자… 그들과 사소한 가족 이야기에서부터 문학, 예술, 사상, 사회적 이슈, 정치적 사건, 사랑, 슬픔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나눈다.
지은이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 아버지는 폴란드 왕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귀족적인 가문 출신이고, 어머니는 파리 세느 강변의 새장수의 딸로 가난한 서민 출신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윈 상드는 프랑스 중부의 시골 마을 노앙에 있는 할머니의 정원에서 루소를 좋아하는 고독한 소녀 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으나 순탄치 못한 생활 속에 이혼하고, 두 아이와 함께 파리에서 문필 생활을 시작하여 <피가로>지에 짧은 글들을 기고하며 남장 차림의 여인으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다. 이때 여러 문인,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었는데, 특히 6살 연하인 시인 뮈세와 음악가 쇼팽과의 모성애적인 연애 사건은 그 당시 상당한 스캔들을 일으켰다. 또한 화가 들라크루아, 소설가 플로메르와의 우정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상드는 이처럼 72년의 생애동안 우정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이 이천 명이 넘는 신비와 전설의 여인이었으며 ‘정열의 화신’이었고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사랑의 여신’이었다.
남녀평등과 여성에 대한 사회 인습에 항의하여 여성의 자유로운 정열의 권리를 주장한 데뷔작으로 ≪앵디아나≫(1832)를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발랑틴≫(1832), 90여 편의 소설 중에서 대표작인 자서전적 애정소설 ≪렐리아≫(1833)와 ≪자크≫(1834), ≪앙드레≫(1835), ≪한 여행자의 편지≫(1834∼36), ≪시몽≫(1836), ≪모프라≫(1837), ≪위스코크≫(1838)등 연이어 나온 소설들도 호평을 받았다.
다음으로 장 레이노, 미셸 드 부르주, 라므네, 피에르 르루 등과 교제하여 그 영향으로 인도주의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소설을 썼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 ≪프랑스 여행의 동료≫(1841), ≪오라스≫(1841∼42), ≪앙지보의 방앗간 주인≫(1845), ≪앙투완 씨의 죄≫(1845), 대표작이며 대하소설인 ≪콩쉬엘로≫(1842∼43), ≪뤼돌스타드 백작 부인≫(1843∼44), ≪스피리디옹≫(1838∼39), ≪칠현금≫(1839), ≪테베리노≫(1845) 등이 있다.
상드는 다시 1844년 ≪잔느≫를 필두로 해서 일련의 전원 소설들을 발표했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전원소설 ≪마의 늪≫(1846), ≪소녀 파데트≫(1848∼49), ≪사생아 프랑수아≫(1849), ≪피리부는 사람들≫(1853) 등이 있다.
노년에는 방대한 자서전인 ≪내 생애의 이야기≫(1847∼55), 손녀들을 위한 동화 ≪할머니이야기≫를 쓰면서 초기의 연애 모험소설로 돌아가 ≪부아도레의 미남자들≫(1857∼58)과 ≪발메르 후작≫(1860), ≪검은 도시≫(1861), ≪타마리스≫(1862), ≪캥티니양≫(1863), ≪마지막 사랑≫(1866), ≪나농≫(1872)등을 발표했으며 25편의 희곡과 시, 평론, 수필, 일기, 비망록, 기행문, 서문, 기사 등 180여 편에 달하는 많은 글을 남겼다.
특히, 그녀가 남긴 편지들은 파리의 클라식 가르니에 출판사에서 조르주 뤼뱅이 26권으로 편집 완성한 방대하고 기념비적인 서간집으로 세계 문학사에서 서간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다.
그 동안 교환 서간집으로는 ≪상드와 플로베르≫(1904), ≪상드와 뮈세≫(1904), ≪상드와 아그리콜 페르디기에≫, ≪상드와 피에르 르루≫, ≪상드와 생트 봐브≫, ≪상드와 마리 도르발≫, ≪상드와 폴린 비아르도≫등이 간행되었다.
옮긴이
이재희는 경남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 불어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에서 조르주 상드 연구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와 유럽의 상드 문학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했고, 노앙에서 개최된 상드와 쇼팽 애호가 모임이나 상드 국제회의에 여러 번 참가했다. 뉴욕 상드 협회 ≪상드 연구≫지 국제 편집인이었고, 프랑스 파리, 에시롤, 노앙 상드협회 회원이었다.
저서로는 자서전 연구서로 ≪조르주 상드, 문학 상상력과 정원≫, 편저 ≪상드 연구 1, 2, 3≫이 있고, 상드 번역서로는 자전적 애정 소설 ≪렐리아≫, ≪상드 편지≫(전 6권, ‘문체부 우수교양도서’ 2011년), 전원 소설 ≪마의 늪≫, ≪소녀 파데트≫, ≪사생아 프랑수아≫ 등과 동화 ≪용기의 날개≫, ≪픽토르뒤성≫, ≪장밋빛 구름≫, ≪개와 신성한 꽃≫, ≪말하는 떡갈나무≫가 있으며, 그 밖에 ≪쇼팽과 상드≫, ≪상드 전기≫, ≪상드 문학 앨범≫ 등이 있다. 2008년 ≪문학나무≫ 등단, 2015년 장편소설 ≪아름다운 무지개≫를 발간했다. 현재 한국외대 명예교수다.
차례
214 피에르 쥘 에첼에게, 1846년 12월 30일
215 위르쉴 조스에게, 1846년(?)
216 오귀스트 네프체르에게, 1847년 1월 11일
217 쥘 뒤프레에게, 1847년 4월 14일
218 외젠 들라크루아에게, 1847년 5월 6일
219 가브리엘 팔랑팽에게, 1847년(?) 5월 8일경
220 알베르 그지말라에게, 1847년 5월 12일
221 피에르 쥘 에첼에게, 1847년 5월 12일(?)
222 오르탕스 알라르에게, 1847년 6월 22일(*)
223 장 바티스트 클레쟁제에게, 1847년 6월 25일
224 테오도르 루소에게, 1847년 6월 26일
225 외젠 들라크루아에게, 1847년 7월 19일(?)
226 에마뉘엘 아라고에게, 1847년 7월 18일에 시작해서 26일까지
227 프레데리크 쇼팽에게, 1847년 7월 28일(*)
228 가브리엘 팔랑팽에게, 1847년 8월 19일
229 샤를 퐁시에게, 1847년 8월 27일
230 위르쉴 조스에게, 1847년 10월(?)
231 피에르 보카주에게, 1847년 10월 4일
232 마리 드 로지에르에게, 1847년 11월 22일
233 샤를로트 마를리아니에게, 1847년 11월 말
234 폴린 비아르도에게, 1847년 12월 1일
235 프랑수아 뷜로즈에게, 1847년 12월 7일 혹은 8일(*)
236 샤를 퐁시에게, 1847년 12월 14일
237 샤를로트 마를리아니에게, 1847년 12월 22일
238 주세페 마치니에게, 1847년 12월 24일(*)
239 미하일 바쿠닌에게, 1848년 1월 1일
240 르네 발레 드 빌뇌브에게, 1848년 1월 6일
241 주세페 마치니에게, 1848년 1월 25일
242 모리스 뒤드방 상드에게, 1848년 2월 3일
243 모리스 뒤드방 상드에게, 1848년 2월 7일
244 르네 발레 드 빌뇌브에게, 1848년 2월 8일
245 모리스 뒤드방 상드에게, 1848년 2월 23일
246 장 레노에게, 1848년 3월 25일경
247 장 레노에게, 1848년 3월 29일
248 르드뤼 롤랭에게, 1848년 4월 초(*)
249 모리스 뒤드방 상드에게, 1848년 4월 16일 밤부터 17일까지
250 샤를 퐁시에게, 1848년 5월 5일
251 마르크 코시디에르에게, 1848년 5월 20일
252 샤를 퐁시에게, 1848년 5월 24일
253 르드뤼 롤랭에게, 1848년 5월 28일
254 테오필 토레에게, 1848년 5월 28일(*)
255 아르망 바르베스에게, 1848년 6월 10일(*)
256 오르탕스 알라르 드 메리탕스에게, 1848년 6월 12일
257 마르크 뒤프레스에게, 1848년 6월 14일
258 프랑수아 롤리나에게, 1848년 6월 19일과 20일경, 1848년 6월 22일
259 외제니 뒤베르네에게, 1848년 7월 15일
260 카를 마르크스에게, 1848년 7월 20일
261 셰 데스탕주에게, 1848년 7월 25일
262 피에르 쥘 에첼에게, 1848년 7월 27일
263 샤를 퐁시에게, 1848년 8월 1일
264 뤼지 칼라마타에게, 1848년 9월 6일(*)
265 샤를로트 마를리아니에게, 1848년 9월 15일
266 주세페 마치니에게, 1848년 9월 30일
267 귀스타브 파페에게, 1848년 10월 19일
268 오귀스틴 브로앙에게, 1848년 10월 29일
269 아르망 바르베스에게, 1848년 11월 1일
270 에밀 오캉트에게, 1848년 11월 10일(?)(*)
271 주세페 마치니에게, 1848년 11월 22일
272 샤를 뒤베르네에게, 1848년 12월 2일
273 폴린 비아르도에게, 1848년 12월 8일
274 피에르 쥘 에첼에게, 1848년 12월
275 아르망 바르베스에게, 1849년 3월 14일
276 루이 블랑에게, 1849년 4월 5일
277 그리유 드 뵈즐랭 부인에게, 1849년 7월 19일
278 루드비카 예체예비치에게, 1849년 9월 1일
279 피에르 보카주에게, 1849년 10월 20일(?)
280 주세페 마치니에게, 1849년 11월 5일
281 샤를 뒤베리에에게, 1850년 6월 3일
282 피에르 보카주에게, 1850년 8월 7일
283 아르망 바르베스에게, 1850년 8월 27일
284 캐럴라인 스탠스펠드에게, 1850년 8월 27일
285 주세페 마치니에게 1850년 10월 5일
286 주세페 마치니에게, 1850년 10월 15일
287아르망 바르베스에게, 1850년 10월 28일
조르주 상드 부분 연보(1838∼1845)
참고 자료
책속으로
난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어. 그건 자네도 알잖아! 아직 젊고 정열이 뜨거울 나이에 열정과 욕구를 잠재우고 절제하는 생활에 묻혀 지내면서도 그것을 늘 기쁘고 후회 없이 받아들였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특히 초기에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격렬한 갈망을 여러 번 억누르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을 줄은 자네도 생각 못했겠지? 의사들이 내게 도가 지나친 금욕주의로 자신을 죽이고 있다고 말한 적이 얼마나 여러 번이었는지 모르지? 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른 성격이지만, 나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력만큼은 강해.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힘이고, 외로운 밤마다 그 이면에서 그것을 신 앞에 입증해 보였어. 그렇지만 여론을 의식해서 그런 금욕적인 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었어. 알다시피 난 여론이란 것에 지나치게 맞대결했던 것 같아. 그렇다고 어떤 개인적인 신념이 있어서도 아니었어. 난 내 자유권을 믿어. 나로 하여금 여자로서의 내 삶을 희생하도록 했던 것은 바로 모성애였어. 난 어떤 한 사회에서 평판을 되찾고 싶었어. 그래서 내 딸이 온화한 사랑과 견식 있는 존경이 가득한 그 사회에서 밝고 당당하게 피어나기를 바랐어. 모든 시선이 그 애에게 집중되기를 또한 바랐지. 나는 최대한 늙고 못난 모습으로 변해 갔어. 딸애가 내 옆에서 눈밭 위의 별처럼 더욱 빛을 발하도록 말이야. 한편으로는 딸애가 땀 흘려 일하는 것과 세상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을 좋아했으면 했지. 하지만 그 애의 화려함에 대한 욕구와 찬사에 대한 시기심 섞인 동경 때문에 나는 내가 만약 한순간이라도 모든 추억과 모든 삶의 욕구에 대해 마음에 빗장을 걸고 한편으로 물러나 있는 것을 잊는다면 그것은 그 애에게서 뭔가를 훔치는 짓이라고 믿었지.
-226번(65쪽), 남자 친구 에마뉘엘 아라고에게 보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