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안녕하세요. 북레터 인텔리겐치아입니다.
검열의 명분은 공공의 안녕과 치안 유지입니다. 하지만 수시로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하고 사상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문화 예술에 대한 검열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특정 시대에 특정 권력이 어떤 사상과 표현을 두려워했는지 드러납니다. 지금은 고전 반열에 든 작품들도 그때는 검열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담긴 자유와 평등, 인간 해방의 사상이 당시 권력에겐 위험하고 불온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고전, 그때는 금기였던 희곡을 모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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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되자마자 외설 시비에 휘말린 ≪룰루≫
프랑크 베데킨트는 독일 현대 연극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작가입니다. 대표작 <룰루>는 거리에서 꽃을 팔던 소녀가 상류사회에 편입된 뒤 남자들의 뒤틀린 욕망에 의해 순수한 열정을 짓밟히고 다시 거리로 내몰리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베데킨트는 주인공 룰루를 비극의 희생자, 혹은 냉소적인 팜파탈로 묘사하는 대신 이브와 같은 신화적이고 원초적인 존재로 형상화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발표와 동시에 외설 시비에 휘말려 오랫동안 공연되지 못했습니다. 베데킨트가 재판정에서 직접 작품의 예술성을 입증해야 했고, 결국 여러 번의 수정과 개작을 거쳐 현재의 구성과 내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프랑크 베데킨트 지음, 이재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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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검열로 영영 묻힐 뻔했던 ≪왕은 즐긴다≫
베르디는 빅토르 위고의 이 희곡에 곡을 붙여 오페라 <리골레토>를 완성했습니다. 실존 인물인 프랑수아 1세와 트리불레가 모델이 되었습니다. 광대의 익살이라는 희극적 요소로 가벼운 분위기에서 시작된 극은 제 손으로 딸을 죽인 아버지의 통곡 가운데 처절한 비극으로 막을 내립니다. 베르디는 이 작품을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이자 아름다운 희곡”이라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발표 당시에는 엄격한 검열로 출판조차 어려웠습니다. 끝내 잊힐 뻔했던 작품은 곧 불멸의 걸작으로 재평가됩니다.
빅토르 위고 지음, 이선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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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검열에 시달린 불가코프가 울분을 담아 쓴 ≪적자색 섬≫
불가코프는 1932년 이후 죽을 때까지 <투르빈가의 나날들> 단 한 편의 희곡만을 상연할 수 있었습니다. 당국의 검열 때문이었습니다. <적자색 섬>에는 당시 작가의 답답하고 절박한 심정이 배어 있습니다. 희곡은 연극 <적자색 섬>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리허설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불가코프는 극장의 부조리하면서도 코믹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보여 줍니다. 불가코프의 작품 중에서도 세태 비판 의도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희곡입니다.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심지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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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검열로 공연이 가로막힌 ≪소≫
유치진의 <소>는 1935년 도쿄 축지소극장에서 도쿄학생예술좌가 초연했습니다. 그해 11월로 예정돼 있던 국내 공연은 일제 검열로 불발되었고 대신 1937년에 <풍년기>라는 개작본을 부민관에서 상연했습니다. 주인공 국서는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선량한 농민입니다. 그에게는 좋은 혈통을 타고난 소가 한 마리 있는데, 이 소를 둘러싼 갈등이 극을 이끌어 갑니다. 일제 강점기에 삶의 터전과 희망을 상실한 채 몰락해 가는 조선 농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 냈던 유치진은 희비극 기법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검열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 극작술이었습니다.
유치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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