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근대 한문학자 후산 정재화의 문집 ≪후산졸언≫에서 시 108제 170수를 완역하고 문 세 편을 뽑아 옮겼다. 일제 강점기부터 광복과 6·25 전쟁, 유신 등 격변의 시대를 살면서 근대화를 거부하고 전통을 지켜 나간 올곧은 유학자의 고뇌를 살펴볼 수 있다.
수많은 만사에서는 함께 일제에 항거하고 유학의 전통을 이어 나가던 동지들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깊이 스며 있으며, 학문을 주제로 삼은 시에서는 마음을 갈고닦아 성리학의 도를 되살리려는 마음공부의 길을 밝힌다. 노년기의 시에서는 자연 속에서 우주적 화해를 깨달은 초탈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개화기 이후 단절된 근대 한문학의 맥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퇴계학파, 남명학파, 성호학파를 잇는 영남 지역의 학통과 각 학자들의 교유 관계를 살필 수 있다.
200자평
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
근대를 넘어선 현대에 한문학이 가지는 의미
후산(厚山) 정재화(鄭在華, 1905∼1978)가 활동한 시대는 20세기,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시점이다. 조선 시대가 마감되고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발발했으며,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을 하고 다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을 거쳐, 세계화 시대로 들어섰다. 농업 사회는 몰락하고, 기계, 전기, 컴퓨터로 이어지는 산업 혁명이 급속히 전개된 시점에 한문학이란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정재화는 근대를 살았지만 근대를 거부했다. 일제에 저항했고 창씨개명과 단발령에 저항했으며, 산간벽지까지 들어온 전기를 거부하고 한글 전용 시대에 한자로 의사소통을 했다. 저자 정재화를 비롯해 이 책에 언급된 유림들은 모두 어떻게 보면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낙오한 이들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흔적은 오늘날에 이어진다. 이들은 대학의 1∼2세대 한문학과 교수들을 직·간접적으로 배출했으며, 이들이 남긴 아직 정리되지 못한 자료들이 오늘날 지역학 연구의 중요한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다.
퇴계학파와 남명학파, 성호학파를 잇다
후산 정재화의 학문의 연원은 13대조인 한강 정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구는 영남의 양대 거두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을 스승으로 섬기며 양대 학파를 회통했다. 정재화는 한강 정구로부터 한훤당 김굉필,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으로 이어지는 학통을 이어받는다. 또한 정재기와 정종호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밀양을 중심으로 한 성호학파와도 깊은 교유를 나누게 되니 영남의 주요 학파를 수렴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이러한 영남의 주요 학자들과의 교유 관계가 잘 나타나 있다.
전통 문화와 학문을 통해 고도(古道)를 회복하다
근대의 문명과 이기를 거부하면서 정재화가 지키려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전통적 가치, 고도(古道)다. 그는 혼란과 고통의 시대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옛 도를 되살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전통 문화와 학문을 지켜 나갔던 것은 지나간 시대의 습관에 천착한 것이 아니라, 옛 선인들이 추구한 올바른 도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또한 유림단이 벌인 파리 장서 운동은 그에게 도를 바탕으로 한 “행의(行義)”를 깊이 자각하게 했다. 그의 스승 정재기는 일제에 항거해 파리 장서에 서명 후 자결했고, 정종호는 장서를 전달해 옥고를 치렀다. 이러한 스승들의 모습을 본 정재화는 일경의 단발령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두 차례에 걸쳐 만주 망명을 기도하기도 한다. 심학으로 자신의 심성을 수양하고, 예학으로 사회적 질서를 회복하는 한편, 의를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책에는 정재화의 시 108제 170수와 문 세 편을 실었다. 전체 시 중 만사가 70% 이상을 차지하는데, 도의를 함께하고 교유를 나눴던 동지들과의 이별을 특히 안타까워했기 때문이다. 이 만사들을 통해 당대 영남 지역 학자들의 교유 관계를 살필 수 있으며 그의 시문을 통해 그의 지향 의식과 자세를 살필 수 있다. 세상과 어긋난 자신을 절감하며 전통 학문을 고수하는 것으로 불화의 시대를 극복하고자 했던 한 전통 지식인의 발자취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도와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정재화(鄭在華, 1905∼1978)는 자가 자실(子實), 호는 후산(厚山)으로 정복용(鄭福容)과 서흥 김씨(瑞興金氏)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영민할 뿐만 아니라 뜻이 견고했다고 한다. 족형 정재기의 문하에 나아가 ≪한사(漢史)≫를 읽었으며, 이후 정종호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아 가학 및 근기학적 전통을 이었다. 일제의 단발령에 따라 경찰이 그의 상투를 자르려 하자 일경(日警)을 벼루로 타격하고, 두 차례나 만주로 피신해 자정(自靖)의 장소로 삼고자 했다. 정종호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한 여기동(呂箕東)은 이러한 사실을 전하며, 세속를 초극한 자질과 꺾을 수 없는 기절을 들어 그의 인품을 ‘강개(剛介)’와 ‘인영(人英)’으로 요약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독서와 양성(養性)으로 소일했으며 1978년 음력 1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정우락(鄭羽洛)은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경상북도 문화재위원, 남명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등을 겸하고 있다. 그동안 영산대학교 동양문화연구원장,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남명 문학의 철학적 접근≫(박이정, 1998), ≪남명 설화 뜻풀이≫(남명학연구원출판부, 2001), ≪남명 문학의 현장≫(경인문화사, 2006), ≪남명과 이야기≫(경인문화사, 2007), ≪남명과 퇴계 사이≫(경인문화사, 2008), ≪문화 공간, 팔공산과 대구≫(글누림, 2009), ≪남명학파의 문학적 상상력≫(역락, 2009), ≪조선의 서정시인 퇴계 이황≫(글누림, 2009), ≪영남의 큰집, 안동 퇴계 이황 종가≫(예문서원, 2011), ≪삼국유사, 원시와 문명 사이≫(역락, 2012), ≪영남을 넘어, 상주 우복 정경세 종가≫(예문서원, 2013), ≪한강 정구와 무흘구곡 이야기≫(경인문화사, 2014), ≪남명학의 생성 공간≫(역락, 2014), ≪모순의 힘, 한국 문학과 물에 관한 상상력≫(경북대학교출판부, 2019)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탈초역주, 영총≫(경상북도·영남문화연구원, 2007, 공역), ≪역주 고대일록≫(태학사, 2009, 공역), ≪국역 흑산일록≫(경북대학교출판부, 2019) 등이 있다.
차례
시(詩)
1. 삼종숙의 만취정 시운에 차운함
2. 죽음으로 편안한 어른의 덕−이덕후 만사
3. 북망가 속의 한 3수−노상직 만사
4. 안으로 온축한 옥빛 3수−김형모 만사
5. 다음에 만나자 하시더니 2수−김영학 만사
6. 이수정 시에 차운함
7. 내 슬픔 타인보다 특별해−허채 만사
8. 한결같은 마음이여 3수−허채 만사
9. 문장은 행실의 나머지−허채 만사
10. 세의는 산처럼 무겁고−최성형 만사
11. 가난했지만 3수−박창진 만사
12. 천지가 긴 밤 속으로−이병희 만사
13. 세상살이 어려운 길 3수−최우동 만사
14. 소매 속에 넣어 둔 경륜 3수−장상학 만사
15. 해운정 낙성에 차운함
16. 말세에도 중도 지킨 이−송준필 만사
17. 숲속에 남긴 자취 3수−송홍눌 만사
18. 도덕과 문장으로 뛰어난 이 4수−이정기 만사
19. 동남 제일의 큰 문장 3수−이기형 만사
20. 일생 동안 남긴 성효−여상문 만사
21. 짐짓 예봉을 감추고 3수−정묵용 만사
22. 한결같은 참된 마음−정재봉 만사
23. 이 부자의 사손 3수−이충호 만사
24. 나의 곡을 공은 아시는가−이규형 만사
25. 책상 위에 남은 옛 편지 2수−장하석 만사
26. 백당 박 공의 운엽정에 차운함
27. 왕희지 필법에 두보 시−송홍래 만사
28. 상매 문중에서 추중한 선비 3수−이상기 만사
29. 오와 족장 정경호를 축수함
30. 비어 있는 한 자리 3수−김수응 만사
31. 순수한 마음 가진 이 2수−우규상 만사
32. 회연에서 오암으로 2수−최성욱 만사
33. 허열수의 시에 차운함
34. 실천은 가법의 근본 3수−이주후 만사
35. 도석구의 효행에 차운함
36. 저승이 어찌 그리 멀다던고 2수−최영철 만사
37. 오래된 집안의 후손 2수−최승동 만사
38. 예송의 은미한 말씀−허 참봉 만사
39. 세속에서 빼어난 의표−이돈영 만사
40. 문채 될 바탕이 있었지만−이수인 만사
41. 웃으며 하시던 정담 2수−이성훈 만사
42. 만년에는 자취마저 감추어 2수−이영석 만사
43. 영남에서 맺은 인연−최봉곤 만사
44. 어진 집 객이 되어 2수−이영우 만사
45. 부질없이 배운 옛 학문 2수−장진영 만사
46. 김정태가 왔다가 돌아가서 시를 보내와 화답시를 청하거늘 이에 시 한 수를 지어 보내 줌
47. 정묘한 필법−정원호 만사
48. 우연히 읊음
49. 비 온 후 밤에 홀로
50. 벽초 정사에 차운함
51. 전쟁 통에 아들마저 잃고 2수−이경석 만사
52. 회연의 송단 모임
53. 부지런히 학문하던 때 2수−김종식 만사
54. 여름날 즉흥시
55. 처서 다음 날
56. 강직하고 방정한 성품 2수−이원태 만사
57. 마음 곧바로 통하던 이 2수−정주화 만사
58. 공손한 위의에 진실한 말씀 2수−여주연 만사
59. 발자취를 숨기고 4수−노근용 만사
60. 일생 동안 지닌 자강의 마음 3수−정지린 만사
61. 단표누항을 즐기며−이휘기 만사
62. 매화 아래 함께한 자리 2수−이만환 만사
63. 문 앞의 거리
64. 옥산 서원의 문원공 사당을 배알하고
65. 매화
66. 솔잎 먹고 산 반평생 2수−김인식 만사
67. 섬돌 가에 핀 꽃을 노래함
68. 기계에서 여러 벗들과 함께 짓다
69. 기계에서 이별한 후 앞의 운에 따라 이훈수에게 주다
70. 봄날 우연히 읊음
71. 봄 시름 깨우고자 지팡이 짚고 야외로 나오다
72. 스스로 경계함
73. 꽃을 감상하며
74. 우연히 읊음
75. 박영수 선조의 효행에 대해 차운함
76. 어짊으로 쌓은 복−최준 만사
77. 서로 믿으며 한 공부−이경환 만사
78. 복과 선은 하늘의 뜻−이장여 만사
79. 새로운 인연 맺고자 했더니−장인섭 만사
80. 순수한 마음 적은 말수 2수−이규순 만사
81. 서씨의 경남재 시운에 차운함
82. 예호기의 회혼을 축하함
83. 편액에 새긴 굳센 글씨 2수−이기윤 만사
84. 장인섭의 유거에 차운함
85. 불어난 물을 보며
86. 강양 제일의 품행−윤우여 만사
87. 곧은 글씨와 정결한 모습−곽동건 만사
88. 밭 갈며 책 읽으며−송주선 만사
89. 모명재에 차운함
90. 부모 두고 떠난 사람 2수−김태석 만사
91. 동도[경주]에서의 가을 회포
92. 함께 글 읽던 그 겨울−정순화 만사
93. 유거
94. 후산당
95. 젊은 날은 얼마던가
96. 분수 밖의 한가로움
97. 수륜동을 지나며 대나무와 잣나무가 푸르른 것을 보고 판윤 박 공의 굳은 절개를 생각하며
98. 망년의 정으로 사귄 친구 2수−장문여 만사
99. 침몰하는 영남의 운수 3수−이원각 만사
100. 둘이 나눈 정성 어린 편지−신억 추만
101. 응천 제일의 문장 2수−허섭 만사
102. 기국헌에 차운함
103. 요강
104. 문방사우
105. 마을에는 모두 전기를 쓰지만 나는 홀로 기름 등불이라네
106. 봄날 시냇가에서 읊조림
107. 여자정이 은후의 시를 차운해 나에게 줘서 내가 그 운을 사용해 화답하다
문(文)
1. 사종형 성재 공 묘도비명(四從兄省齋公墓道碑銘)
2. 뇌헌공 행장(磊軒公行狀)
3. 후산기(厚山記)
부록
발후산기(跋厚山記)
정후산 자실 행장(鄭厚山子實行狀)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천지가 긴 밤 속으로−이병희 만사
성헌 선생을 뵙고자 했더니
오늘 성헌의 부고를 받았네
뵙지도 못하고 말도 듣지 못했으니
사문은 어찌하여 하나같이 잘못되어 가는고
성헌 선생에게 도를 들었나니
학술은 장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했네
급변하는 세상을 사절하고
성품과 마음을 가슴 깊이 연구했네
천 가닥으로 나누어진 것을 거두어들여
이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했네
도는 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평탄한 길이라네
선학을 이어받아 정성이 간절하고
후학에 넉넉해 업을 공고히 했다네
편안하고 고요한 경지에 실지로 거닐어
사물과 내가 서로 어긋남이 없었네
뜻을 보존해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었고
문을 걸어 닫고 홀로 경계하며 두려워했네
조심하고 더욱 조심해
팔순의 저물녘까지 이르렀네
오래된 도덕과 명망으로
남방의 선비들을 인도해 주시길 바랐더니
돌아가신 날이 일찍이 언제였던가
상여가 장차 떠나려고 하는구나
아아! 지금은 어떤 세상인가
천지가 긴 밤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네
어르신의 덕도 함께 떠나니
나의 눈물이 강물처럼 쏟아지누나
挽李省軒 炳熹
欲見省軒子 今見省軒訃
不見且莫說 斯文一何誤
聞道省軒子 學術非章句
謝絶俯仰世 性心究肺腑
收這千縷分 歸此一原做
道非難行者 日用平坦路
述先誠懇到 裕後業鞏固
脚踏恬靜地 物我無相忤
志存無愧怍 閉門獨戒懼
戰戰復兢兢 以至八旬暮
庶幾宿德望 導率南士趨
奠夢曾幾日 柳車行將駕
嗟嗟今何世 地天入長夜
丈德幷與逝 我哭淚河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