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가시 돋친 ‘손님에게 주는 선물’ 크세니엔
초대한 손님들이 돌아갈 때 주는 선물이라는 뜻인 ≪크세니엔≫은 괴테와 실러가 함께 작업해서 1796년에 실러가 발행하던 ≪문예연감(Musen-Almanach)≫에 발표한 2행으로 된 풍자시 모음집이었다. 이 풍자시들은 재치 있게 “적들의” 핵심을 찌르는 논쟁적이고 공격적인 형태로 당시 문화계와 문학계의 문제점들에 대한 괴테와 실러의 입장을 담고 있었다(≪괴테 시선 4 크세니엔≫ 참조). 게다가 수많은 풍자시로 상대를 가리지 않고 공격함으로써 이 ≪크세니엔≫은 새로운 시도였지만 스캔들로 여겨졌고, 당시 사람들은 ‘야만적인 문학적 혁명’이 질서 정연했던 독일 예술계로 확산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크세니엔≫은 실제로 당시에 평판이 좋지 않았다.
온순한 크세니엔
괴테는 그 후에 쓴 이런 풍의 시들을 “온순한 크세니엔”이라고 부르면서 이전의 날카로움을 제거했다. ≪온순한 크세니엔≫은 형태적으로 얼핏 보아도 고대를 흉내 내는 2행시들이 아니라, 라임을 갖춘 자유로운 운율에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크세니엔≫과 구분된다. 주제 면에서도 이전 ≪크세니엔≫과는 달리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노리는 대상이 더는 인물이나 잡지 등이 아니라, 대체로 집단적인 흐름이나 유행 또는 독특한 개성에 관한 것들이다. 이러한 대상들은 자신이 늙어 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던 시인의 주관적 생각과 연결되어, 그런 시인의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다. ≪온순한 크세니엔≫에서 주관적 관점을 강조하거나 반대 의견을 허용하는 것은 괴테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기서 “농담과 진담으로” 말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여기에 덧붙여서 전혀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 격언과 성찰, 삶의 지혜도 추가된다. 1796년에 ≪문예연감≫에 실렸던 “진지하고 호의적인” 2행시들에도 이런 부류의 시들이 있었지만, 공격적인 크세니엔 시들과는 구분되어 수록되었다.
여러 군데 산재해 있는 노년 괴테의 지혜를 담은 전형적인 시들을 수용하거나 해석할 때는 항상 어떤 근거에 따라 특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개별적인 격언으로 선별해서 마치 독립된 시들처럼 다루고 있다.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이렇게 모은 시들은 본래의 의미대로 사용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의의는 이 격언들을 전체적으로 묶었을 때 그 가치가 나타난다. 즉, 격언들 가운데 어느 개별 격언도 최종 진술이 아니고, 각 격언은 주변의 격언들로 보충하거나 상대화할 필요가 있다. 괴테는 이 격언들의 순서뿐만 아니라 페이지 배분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노년의 괴테 문체를 특징짓는 간결한 표현 경향, 다의적인 의미를 분명한 의미로 파악하려는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경향은 ≪온순한 크세니엔≫의 경우 계속해서 텍스트 이해의 문제로 이어진다. 당시 독자들의 반응은 ‘크세니엔을 모두 이해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데 수수께끼 같은 말이 너무 많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 격언을 이해하는 출발점만을 간략하게 제시함으로써 이 격언들의 이해를 전적으로 독자들에게 맡기고자 한다. <온순한 크세니엔 1∼6>은 괴테가 1827년에 마지막으로 직접 편집한 텍스트를 소개한다. <온순한 크세니엔 7∼9>는 ≪바이마르 전집(Weimarer Ausgabe)≫의 편집을 따랐다.
지식을만드는지식 ≪괴테 시선 VIII≫에는 괴테의 생전에 출간된 <온순한 크세니엔 1∼6>과 괴테의 유고에서 나온 <온순한 크세니엔 7∼9>를 모두 수록했다. 한국괴테학회 회장을 지낸 임우영 교수는 정확한 번역과 함께 당시 시대 상황과 작품의 배경, 인간관계, 작품이 풍자하는 대상 등을 자세한 해설과 주석으로 제시해 작품을 좀 더 정확하고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200자평
독일의 시성(詩聖) 괴테의 시를 모은 ≪괴테 시선≫ 제8권은 <온순한 크세니엔>이다. 초대한 손님들이 돌아갈 때 주는 선물이라는 뜻인 “크세니엔”은 괴테와 실러가 함께 작업해 1796년 ≪문예연감≫에 발표한 2행으로 된 풍자시 모음이었다(≪괴테 시선 4 크세니엔≫ 참조). 노년의 괴테는 이 크세니엔에서 이전의 날카로움을 제거하고 구체적인 인물이나 잡지 등을 노리는 대신 집단적인 흐름이나 유행, 독특한 개성과 같은 일반적인 대상을 주제로 좀 더 “온화한 크세니엔”을 써 나간다. 라임을 갖춘 자유로운 운율의 대화체로 구성된 이 2행시들에는 괴테 특유의 재치 있는 신랄함과 노년의 지혜가 듬뿍 담겨 있다.
지은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을 비롯한 각종 문학 서적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
괴테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1765년부터 1768년까지 당시 “작은 파리”라고 부르던 유행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고 졸업 후에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쓴 작품은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초고 파우스트≫와 같은 드라마와, 문학의 전통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찬가들을 쓰게 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인 ≪괴츠 폰 베를리힝겐≫이 1773년 발표되자 독일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독일에서 드라마의 전통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지 않고 최초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을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왕까지 가세한 이 논쟁으로 인해 괴테는 독일에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9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 괴테는 일약 유럽에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몰려들었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괴테를 18세에 불과했던 바이마르(Weimar)의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 공작이 초청했다. 처음에는 잠시 체류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이미 유럽에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로 그곳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빌란트(Wieland)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바이마르의 예술적 분위기와 첫눈에 반해 버린 슈타인 부인의 영향으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괴테에 대한 공작의 신임은 두터웠고 공국의 많은 일들을 그에게 떠맡기게 되었다.
여러 해에 걸친 국정 수행으로 인한 피로와 중압감으로 심신이 지친 괴테는 작가로서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바이마르 궁정을 벗어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감행했다.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괴테가 느꼈던 고대 예술에 대한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고대 미술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절도와 절제의 정신을 자기 문학을 조절하는 규범으로 삼아 자신의 고전주의(Klassik)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1788년부터 실러가 죽은 1805년까지를 독일 문학의 최고 전성기인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괴테와 실러는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전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유형(類型)”을 통해 “유형적인 개성”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추구했다. 괴테와 실러의 상이한 창작 방식은 상대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어 결과적으로 위대한 성과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실러의 격려와 자극으로 괴테는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1796년에 완성하고, 프랑스 혁명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을 소재로 한 ≪헤르만과 도로테아≫를 1797년에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완성 상태의 ≪파우스트≫ 작업도 계속 진행해 1808년에 드디어 1부를 완성하게 된다. 실러는 지나친 의욕과 격무로 인해 1805년 5월 46세의 나이로 쓰러지는데, 실러의 죽음은 괴테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 ≪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 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 ≪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1832년 3월 22일 낮 1시 반, 괴테는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그는 죽을 때 “더 많은 빛을(Mehr Licht)” 하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3월 26일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이 누워 있는 왕릉에 나란히 안치되었다.
옮긴이
임우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독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교수로 있으며, 한국괴테학회 회장을 지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기획조정처장과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학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대학생을 위한 독일어 1, 2≫(공저), ≪서양문학의 이해≫(공저), ≪세계문학의 기원≫(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 ≪크세니엔≫, ≪빌헬름 마이스터의 연극적 사명≫, ≪괴테 시선 1∼6≫, 바켄로더와 티크의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와 ≪예술에 관한 판타지≫, ≪브레히트의 영화 텍스트와 시나리오≫(공역), 오토 바이닝거의 ≪성과 성격≫,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괴테. 예술 작품 같은 삶≫(공역), ≪괴테 사전≫(공저),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낭만주의≫(공역), 라테군디스 슈톨체의 ≪번역 이론 입문≫(공역), 니콜라스 보른의 ≪이별 연습≫, ≪민중본. 요한 파우스트 박사 이야기≫, ≪미학 연습. 플라톤에서 에코까지. 미학적 생산, 질서, 수용≫(공역), ≪괴테의 사랑. 슈타인 부인에게 보낸 괴테의 편지≫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원초적인 말. 오르페우스 풍으로> : 괴테가 후세에 남기는 인간의 운명과 삶에 대한 유언>(2021), <괴테의 자연시 <식물의 변형>과 <동물의 변형> : 萬法歸一의 법칙으로서 식물과 동물의 “변형”>(2020), <독자적 소설로서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연극적 사명≫>(2018), <1775년 가을에 흐르는 괴테의 눈물−사랑의 고통 속에서 솟아나는 활기>(2016), <괴테의 결정적인 시기 1775−“릴리의 시”에 나타난 스물여섯 괴테의 고민>(2015), <흔들리는 호수에 비춰 보는 자기 성찰. 괴테의 시 <취리히 호수 위에서>>(2014) <괴테의 초기 예술론을 통해 본 ‘예술가의 시’ 연구. <예술가의 아침 노래>를 중심으로>(2013), <‘자기 변신’의 종말? : 괴테의 찬가 <마부 크로노스에게>>(2011), <“불행한 사람”의 노래 : 괴테의 찬가 <겨울 하르츠 여행>(1777)>(2008), <영상의 문자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단편 소설에 나타난 ‘겹상자 문장’ 연구>(2007), <괴테의 ≪로마 비가(Römische Elegien)≫에 나타난 에로티시즘>(2007),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에 나타난 ‘체념(Entsagung)’의 변증법>(2004), <괴테의 초기 송가 <방랑자의 폭풍 노래> 연구. 시인의 영원한 모범 핀다르(Pindar).>(2002), <괴테의 초기 시에 나타난 신화적 인물 연구>(2001), <새로운 신화의 창조−에우리피데스, 라신느, 괴테 그리고 하우프트만의 ≪이피게니에≫ 드라마에 나타난 그리스의 ‘이피게니에 신화’ 수용>(1997) 등이 있다.
차례
온순한 크세니엔 1
온순한 크세니엔 2
온순한 크세니엔 3
온순한 크세니엔 4
온순한 크세니엔 5
온순한 크세니엔 6
온순한 크세니엔 7
온순한 크세니엔 8
온순한 크세니엔 9
시 찾아보기
원제 찾아보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누가 다수에게 저항하려 하겠는가?”
나는 다수에게 저항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
다수는 떠돌며 움직이고, 흔들리다 황급히 사라진다.
다수가 마침내 다시 하나가 될 때까지.
해가 거듭될수록
사람들은 여러 낯선 일들을 경험해야 한다.
그대는 그대가 살아가는 방식대로 살려고 하는데,
그래서 그대는 언제나 그냥 그대로 머무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바라건대 오래 살 수 있는가?”
항상 가장 훌륭한 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일을 많이 행해라.
그런 일에는 시간과 영원함의 기한이 없다.
수천 권의 책에서 진실이나 우화로
그대에게 보이는 것이 무엇이든,
그 모든 것이 사랑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바벨탑에 불과하다.
젊은이는 관심이 나누어져 있어서
잘 잊어버리고,
노인은 관심이 부족해서
잘 잊어버린다.
그대는 삶에서나 지식에서나
철저하고 순수하게 항해하려고 노력해라.
폭풍과 조류가 부딪치고, 잡아당겨도,
이것들은 그대의 주인이 되지 않는다.
나침판과 북극성, 정교한 시계
그리고 태양과 달을 그대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그대 방식에 따라 조용히
기뻐하며 그대의 항해를 완료해라.
특히, 그대가 꺼리지 않는다면,
길이 그 자리에서 맴도는 곳에서
세계를 항해하는 사람은 자신이
출항했던 항구를 만나게 되리라.
재산을 잃어버리면 − 약간 잃어버린 것이다!
그대는 재빨리 심사숙고해 보고
새로운 재산을 얻어야 한다.
명예를 잃어버리면 − 많이 잃어버린 것이다!
그대는 명성을 얻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용기를 잃어버리면 −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면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